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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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8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정아, 정은, 영진, 정화, 지윤, 화정, 수연, 숙이. 주인공들이 누군가와 사랑하며 피워내는 감정들이 책에서 8개의 에피소드로 펼쳐진다. 우울하고, 무겁고, 음침했다. 거리두기를 해야 겠다 생각할 정도로. 그러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요>의 수연을 보며, 전편들과 결이 다르게 따뜻하고 포근했던 이야기가 못내 어둡게 끝나는, 몇 해 전 뉴스에서 봤던 사건을 떠올리며 ‘아, 이건 실화구나. 한국 여성들의 모습이구나.’ 싶었다.


엄마, 결혼하지 마. (p.245)

시간 여행을 해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가장 해주고 싶냐는 설문에 1위를 차지한 말이 ‘엄마, 결혼하지 마’라고 한다. 저자 김현진은 <작가의 말>에서 ‘여성의 고통은 흔히 투정으로 읽힌다’면서, 그것이 유아적인 투정이었다면 저토록 많은 성인 여성들이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좋으니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고 어머니가 독자적인 삶을 살기를 바랄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그때부터 ‘만일 인간이 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영혼들이 여성과 남성 중 어느 성으로 태어날 수 있을지 결정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성을 선택할지 오래 생각했다. (p.246)’고 말한다. 그 결과가 연작소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일테다.

집을 나온 <정아>는 주유소 아르바이트생 건호 집에 살고 있다. 백 원 싼 커피 자판기를 발견해 기뻐하는 건호 대신, 정아는 캐러멜모카프라푸치노를 사주는, 자신을 지현으로 알고 있는 남자를 따라간다. <정정은 씨의 경우> 7년간 남자친구를 뒷바라지를 한다. 드디어 빛을 보나 싶을 때, 애인은 법무연수원에 들어가면서 ‘갈 길이 다른 것 같다.(p.45)’는 말한다. 남자친구의 청혼을 기다리던 <아웃파이터> 영진은 어떤가. 주말이면 왜 연락이 안되는지, 주중에 열심히 만나자는 저의는 왜 몰랐는지. 한 마디로 어이가 없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결혼에 대해 묻던 날, 남자친구가 되묻는다. “나 유부남인 거, 정말 몰랐어?(p.85)” 세상 억울한 정화는 또 어떤가. <공동생활>의 대가로 그녀는 김병권에게 ‘조질 대상 (p.127)’이 된다. <누구세요?>의 지윤은 공동통장을 만들어 데이트하고, 결혼자금을 만들자며 적금을 들게 했던 남자친구로부터 버림받는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이유로.

나를 낳지 않아도 되니까, 결혼하지 말고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p.245)

에피소드를 읽으며 언젠가 한번 들었던 혹은 봤던 일들이 떠올랐다. 사랑은 좋은 거라 했는데, 왜 사랑은 아름답게 결론 맺지 못한단 말인가. 사랑하지만 유부남이라서, 돈이 없어서, 직장이 변변치 않아서, 혹은 내가 그 사람 옆에있어서, 맞고 헤어지고 추락하는 8쌍의 이야기를 보며 씁쓸했다. 결국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저자는 ‘여성’으로서의 엄혹한 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특히 '한국'의 여성 말이다. <저자의 말>에서 김현진 작가가 물었다. ‘인간이 될 예정인 영혼들이 성을 고를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성을 선택할까?’라고. <에필로그>에서 저자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태아들은 자연유산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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