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선언
김정주 지음 / 케포이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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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틱 장애. 반복적으로 목을 삐쭉거리거나 한쪽 눈을 찡긋거리거나 코를 움찔거리거나 느닷없이 꽥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나가, 안 나가, 나가, 안 나가가 끝없이 들볶는다 나를. (p.31)

소설 <환>에서 김정주 작가는 한 남자의 의식으로 '인간의 존재'를 다뤘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감정의 결. 다소 혼란스러웠다. 그 후 8년이 지나 김정주 작가는 장편소설 <은밀한 선언>을 펴냈다. 의식과 행동이 정신없이 묘사되는 이번 작품은 한 마디로 '짧게 몰아쳐 엮어낸' 느낌이다. 개별적으로 떨어져있던 에피소드가, 하나의 구심점을 찾아 유기성을 갖는다. 서로 다른 열개의 에피소드가 '따로 또 같이 결국엔 하나'였다는 그런 소설이다.

책은 열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에피소드에는 서로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지닌 '욕망'을말한다. 드러내지 않는다. 은근히, 의식의 흐름대로, 간간하게 흘러간다. 배고프지만 배부르다 말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직장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린 한 기자는 한편으로는 섹스에 탐닉한다. 마치 열 편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이 '느꼈지만,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다. 그럼 주인공들은 어떠한가. 첫번째 <피스톨을 당겨>의 화자는 '두하'를 바라보는 누군가다. 두하는 두번째 <말에 말을 걸어>의 주인공이고, 그는 경마장에서 호피무늬 옷의 여자를 만난다. 세번째 <추격을 추격해>는 호피무늬 옷의 여자를 담는다. 네번째 <나의 나를 레이어드>에서는 호피를 입은 여자의 언니가 좋아했던 남자다... 마치 먹이사슬처럼 물고 물리는 구조. 연결고리를 찾으며 읽다가 독자들은 결국 첫번째 이야기 <피스톨을 당겨>의 화자가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산다는 건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짠 태피스트리의 무늬와도 같은 것. 거기서 누군가는 죽어 무덤이 되고, 누군가는 살아 무덤을 덮는다. (p.313)"

혼란스럽다.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이, 열개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다 마지막에 연결되는 구조가. 마지막 장을 덮으며 '김정주 작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장치를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공부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여 각 이야기들이 얼개를 갖춰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성취감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책은 친절하지 않다. 인물들에 대해 궁금증을 잔뜩 유발하지만 '그래서 뭐?' '결국 어떻게 됐다고?'에 대한 답은 주지 않으니까. 마치 독자들이 '욕망' 혹은 '바람'을 직접 답하도록 만들려는 듯하다. 의식의 흐름처럼 그려지는 기법이 내게는 다소 어려웠다. 책을 읽으며 인물별 관계도를 그릴까 고민했을 정도로. 책 <은밀한 선언>은 새로운 구성과 표현,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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