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푸른 눈의 증인 -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폴 코트라이트 지음, 최용주 옮김,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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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온 미국인 폴 코트라이트는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전남 나주 호혜원에서 한센 환자를 돌봤습니다. 타지에서, 너무나도 평범하게 건강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학생들과 경찰의 대치를 목격합니다. '위험'을 감지합니다. 한 할머니가 갑자기 팔을 잡습니다. "우리는 여기를 알릴 방법이 없어. 자네는 봤지? 자네가 본 것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꼭 알려주게." 푸른 눈의 미국인은 1980년 5월 그렇게 대한민국 광주민주항쟁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다시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중략) 그 순간부터 나는 '증인'이 되어야 했고, 그 할머니는 피할 수 없는 큰 과제를 내게 주었다. 나는 그 할머니가 주었던 과제를 하지 못했고 40년이 지난 이제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p.14)

책 <5.18 푸른 눈의 증인>은 폴 코트라이트의 회고록입니다. 책은 긴장과 저항의 에너지가 가득했던 1980년 5월 14일부터 26일까지의 일들이 일기형식으로 펼쳐집니다. 총에 맞은 어린이와 할머니, 총을 겨누고 대치하는 군인과 시민들, 시체보관소. 평화봉사단원에게는 파견된 국가의 정치 상황에 개입하면 안된다는 미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목에 카메라를 걸고 현장의 사진을 남기며 상황을 기록해 나갑니다. 저자는 '증인'이 되어야 했고, 부탁했던 할머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며 덧붙입니다. "광주항쟁은 실제로 있었다. 5.18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공산주의자의 반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누구는 폭력적 학생들에 의한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저자의 말)"고 말이죠.

저자는 당시의 노트, 편지, 사진 등의 자료를 꺼내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40년이 걸린 이유에 대해 '광주를 기억하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너무 큰 고통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심리적으로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이죠. 마치 당시의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상황을 빗댄 말 같기도 해 마음이 참담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년간 주동자로 지목받았지만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민간학살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는 올해에도 재판에 소환돼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죠. 사실을 밝히지 못해 고통을 겪었던 푸른 눈의 외국인, 사실을 아니라고 부인하는 우리나라 국민. 역사의 무게를 대신 짊어진 외국인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다가왔습니다.

서울에서 나는 1980년과 광주항쟁에 대한 전두환의 발언이 시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5.18과 관련된 수많은 연구가 있음에도 사건의 총체적인 진상은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p.181)

독자들은 책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당시의 실상에 대해서 말이죠. 책에서는 그간 알지못했던 내용들을 대거 등장합니다. 택시와 버스 기사들이 군인들로부터 시민들을 지키고자 했던 노력, 저항의 흔적을 깨끗히 청소하던 시민들. 그 모습에서 독자들은 알 수 있습니다. 누가 광주를 지키고자 했고, 누가 나라를 부수려고 했는지 말입니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기에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외국인을 통해 본 1980년 대한민국 모습으로 그 가치를 다시금 되새깁니다. 폴 코트라이트가 지킨 40년 전의 약속. 대한민국은 언제쯤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거의 고통이 해소되었다 말할 수 있을까요?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하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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