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오셀로 (양장) - 1622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민애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는 '질투'에 대한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승승장구 하고 있는 무어인 장군 오셀로.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 데스데모나, 충신인 캐시오, 기수 이아고가 있다. 이야기는 이아고의 불평으로 시작한다. "그 도시에서 내로라하는 세 사람이 그에게 직접 찾아가 나를 부관 삼아 달라고 머리까지 조아렸고, 내 분명 그만한 자격도 되고, 그만한 자리에 앉을 만한데도 건방지고 제 고집만 부리는 그놈이 군사 작전이 어쩌네, 저쩌네 하면서 어물쩍 피하려고 허세만 부렸다지 뭡니까? 그러더니 결국은, (중략) "내 벌써 부관으로 삼을 사람을 확실히 정해놓았소."라고 했다지요.(p.10)" 오셀로의 부관 자리를 원했지만 기수로 남게 된 이아고. 부관에 오른 캐시오가 싫고,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 오셀로가 밉다.

직장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알아차릴 때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좋으련만. 의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알게되는 누군가의 '목적'은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고 모든 행동의 진정성을 의심케한다. 자신의 방향성을 굳은 심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자라면 무관하지만, 여린 잎일수록, 그런 상황에 놓여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쉬이 흔들리고 조정당하는 것 같았다. 마치 오셀로처럼. 오셀로는 전장에서는 고귀하고 용맹스러운 장군이다. 투박하지만 사랑에 진실하다. 하지만 이아고에 의해 믿음이라는 전투에서는 철저히 패하고 만다.

공기처럼 가볍고 하찮은 단서도, 시기하는 자에게는 성서처럼 강력한 증거가 되지. 쓸모가 있을 거야. 무어 녀석이 내 독에 중독되어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위험한 생각이란 자고로 독과 그 본질이 같아. 처음 입에 넣을 때는 살짝 쓰던 것이 아주 조금의 양만 핏속을 파고들어도 뜨거운 용암처럼 타오르기 시작하지. (p.128)

이아고는 일을 벌인다. 로드리고에게는 캐시오를 죽이도록, 캐시오는 데스데모나에게 청을 하도록, 데스데모나는 오셀로를 설득하도록 꾄다. 작품 해설을 맡은 김민애는 이아고의 이런 행동을 '악'으로 규정했다. 더불어 악이 만든 덫에 걸려 스러져가는 주인공들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관객도 공범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아고의 행동이 극의 모든 파멸을 이끈거라고 할 수 있을까? 시작은 이아고였지만, 결말은 각자의 '불신'이 만들었다고 나는 보았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뜨겁게 사랑했다지만, 당사자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은 채 '확신'하고, 그녀를 '불신'한다. 데스데모나를 통해 오셀로에게 부탁을 하고 싶었던 캐시오도 마찬가지다. 그가 하고 싶은 부탁의 내용은 '부관자리로의 복귀'였다. 오해를 산 장군에게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 아니었다. 로드리고는 어떨까? 그는 딱히 이유도 없이 캐시오를 죽이려고 한다. 이아고의 허수아비에 불과한 그다.


확실한 비극이다. 그러나 이 비극은 종전의 세익스피어 작품과는 다른 결로 읽혔다. 모든 인물들은 충심, 사랑, 믿음 그 어떤 심리적 중심을 지키지 못했다. 어떤 것도 확실하게 지니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 약한 틈을 타 이아고라는 독이 퍼졌고, 독이 모든 사람을 파국으로 이끌고 말았다. <오셀로>는 주인공의 외적 행동과 내적 심리 사이의 괴리가 심층적으로 드러난 명작으로 셰익스피어의 창작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엄청난 몰입감으로 순식간에 빠져들고 말았다. 간약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의 '불신'의 이야기에. 그만큼 가장 안타까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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