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7
윤흥길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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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으로 서울에 살던 외할머니가 시골 딸 네 집으로 피난오면서 할머니네와 함께 살게 된다.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외할머니에게 국군 소위로 전쟁에 나갔던 외삼촌의 전사 통지서가 날아든다.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빨치산은 모두 죽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할머니와 척을 지게 된다. 삼촌이 빨치산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맥고자를 눌러쓴 사람의 꼬임에 넘어가 삼촌이 집에 왔었음을 말해, 아버지가 고초를 겪게 된다. 이후 외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묘한 동료의식이 생긴다.

소설은 초반 외할머니에게 주목한다. “내 말이 틀리능가 봐라. 인제 쪼매만 있으면 모다 알게 될 것이다. 어디 내 말이 맞능가 틀리능가 봐라”(p.1)라며, 모든 것을 안다는 듯한 외할머니는 줄창 완두를 까고 간혹 손자의 사타구니를 더듬는다. 강단 있어 보이는 외할머니도 사실 속으로는 삼촌에 대해 걱정하는 눈치다. 어느 날 할머니는“그렇게 꾈 종 누가 알었냐. 내가 미쳤다고 그런 자리에 갔겄냐. 허기사 늙은이가 눈치코치도 없이 사둔네 일에 해자를 논 게 잘못은 잘못인지. 잘헌 일은 아니여. 잘헌 일은 아니지만, 그런다고 이 외할매만을 탓혀서는 못쓴다. 그날 저녁에 내가 아녔드라도 느네 삼촌은 오던 질을 되짚어서 떠날 사람이었어. 팔자를 그렇게 타고난 거여.” (p.34) 라며 삼촌이 새벽녘 작은 소리에 도망가듯 떠나던 날의 일에 대해 변명을 하기도 한다.

반면, 소설 후반에는 할머니에게 집중한다. 빨치산이 척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들은 삼촌이 죽었다 여기지만, 할머니는 점쟁이에게 ‘아무날 아무시’에 아들이 온다는 점괘를 받고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마침 그 날이 되어, 구렁이 한 마리가 집으로 온다. 이 모습을 본 할머니는 졸도하고, 외할머니는 구렁이를 어르고 달래 돌려보낸다. 졸도에서 깨어난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외할머니와 화해를 한 후 눈 감는다. 마치 삼촌의 혼령을 만나 한이라도 푼 것처럼.

손주인 ‘나’의 시점에서 묘사되는 소설 <장마>는 6.25 전쟁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를 암시한다. 빨치산인 삼촌, 그를 기다리는 할머니, 국군으로 활동한 외삼촌, 외삼촌의 죽음을 슬퍼하는 외할머니로 그 사상적 대립은 명확하게 표현된다. 인상깊은 점은 유일하게 이름이 등장하는 인물이 외삼촌 뿐이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내게 연신 외삼촌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며“그러지 않고서는 어디 가서 감희 권오문이가 우리 오삼춘이라고 말헐 자격이 없지. 암, 없다마다 (p.25).”고 말한다. 작가가 지지하는 사상에 대한 확신으로 읽히기도 하는 지점이다.

마지막 주목할 부분은 구렁이다. 삼촌을 기다리던 날 왔던 구렁이는 삼촌의 현신으로 보인다. 이는 외할머니의 달램에 따라 조용히 길을 떠나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높이고, 졸도에서 깨어난 할머니가 외할머니에 대한 미움을 거두고 화해하는 장면에서 확실해진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한국의 토속적인 샤머니즘의 발현으로 읽기도, 분단의 이념적 대결은 궁극적으로 민족의 혈연적 유대로 지양할 수 있다는 해결책을 제시한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만교 인하대 교수는 이 해석들이 <장마>를 동족상잔의 전쟁을 가족 구성원간에 벌어진 사건으로 치환했을 때 가능한 추론이라고 지적한다. 즉, <장마>가 가족사의 이야기를 너머 분단의 알레고리로 읽히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긴장과 짜임새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윤흥길은 왜곡된 역사현실과 삶의 부조리,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묘사하려는 작가로 유명하다. 작가는 작품 초기에 이데올로기 갈등을, 이후 산업화 과정의 노동현장에 대한 집중했고, 1980년대 들어서는 <완장(1982~1983)>과 같은 소설에서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에미(1982)>에서 여인의 수난사 등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1973년 작품인 소설 <장마>를 시작으로 문단은 그를 주목했다. 사투리가 걸쭉하게 이어지지만, 어린아이 시점의 서술로 어렵지 않게 읽힌다. 왜곡된 현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윤흥길 작가의 예리한 통찰을 느낄 수 있는 시작점이 곧 <장마>인 셈이다. 6.25 당시의 가정 모습을 생각해보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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