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 나만 알고 싶은 백수 김봉철 군이 웅크리고 써내려간 이상한 위로
김봉철 지음 / 웨일북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스물여섯, 백조였던 나. 회사를 나왔다는 기쁨은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 그 후로는 '세상에 나를 어떻게 내놓을지' 고민하며 괴로워했다. 기죽기는 싫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자신감 없는 건 더 싫다, 따라서 나는 당당해야 했다. 그래서 누군가 "뭐하고 지내세요?" 라고 물으면 "잠깐 쉬고 있어요. 여기저기서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피곤하네요. 하하."라며 당치도 않은 거짓말을 내뱉었다. 속으로는 바짝 쪼그라들어 심장이 없어질 지경이면서.

 

숨자. 숨어 버리자.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을 때까지, 끝까지 숨어 버리자. 버틸 수 없으면 피하자. 지칠 것 같으면 포기하자. (p.5)

서른여섯, 백수, 김봉철은 다르다. 그는 "언제나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고 고개를 꼿꼿이 들자(p.5)"고 하는 말에 지쳤다면서 아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자신을 방에 가둔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생각이란 걸 하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방 안에 웅크린 채 써내려간 글들이 모여 책이 되었다. <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는 김봉철이 꾹꾹 눌러 써내려간 자신의 초상이자 자화상이다.

짧게 써내려간 그의 글을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어둡지' 궁금해진다. 이유는 금방 드러난다. 김봉철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가난했고 우울했다. 아버지에게 맞았고, 어머니는 눈물 흘렸으며, 친구들에게도 맞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마음을 받지 못했으니 마음을 주지도 못한다. 새벽에 일을 나가 탈수상태로 돌아온 엄마가 밥을 차려줄 게 분명함에도, 그는 홀로 방에서 곱창이나 치킨을 시켜먹는다. 엄마는 반찬이 맛이 없어서 그러냐며, 일을 해서 반찬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미안해하자 김봉철이 엄마에게 말한다. "핑계 대지 마. 사람은 하면 다 해.(p.161)"

이런 철부지가 있나! 화가날 때쯤, 김봉철의 사회생활 이야기가 등장한다. 백수인줄 알았던 그는 고객센터에서 상담일을 시작한다. 엄마에게는 꺼내겠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타인에게 반복한다. 팀장에게 혼나고 동료와 관계가 틀어지면서, 그 생활마저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김봉철은 자신이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며, 살아서 하는 모든 것에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어린시절, 학교, 직장,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툭툭 내려놓듯 써내려간 김봉철의 문장은 묘하다. 너무 어두워 같이 우울해질까 두려워지는 와중에 자꾸 그의 글을 읽게 만든다. 넋두리일까 싶은 이야기들은 나를 반성하게 한다. 특히,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속이 어지러울 지경. 김봉철은 연신 엄마를 함부로 대한다. 살가운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한번이 그리우셨을 엄마에게 세상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대한다. 가까워서 함부로 하는 건가, 엄마 돌아가시고 후회하려고 이러나 속으로 수백번 욕을 한다. 그러다 무릎을 탁 친다. 엄마에 대한 태도는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것 아닐까?

책을 읽고, 김봉철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쓰레기’라고 일컬어지고 있었다. 더불어 이 책은 두 번째 작품이고, 현재는 강연도 다니고, 독립출판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라고도 한다. 또, 작가들의 작가라고도. <숨싶사>로 김봉철을 처음 접한 나에게 그는 무능한 불효자식이었는데, 이제 제법 돈도 벌고 일도 한다는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그를 응원하게 된다. 이건 전적으로 그의 어머니를 위해서다. 김봉철과 그의 어머니가, 가족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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