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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치 - 밀과 토크빌,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
서병훈 지음 / 책세상 / 2017년 3월
평점 :
촛불 집회 후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이른바 '태극기 집회'로 불리는 반대 집회도 열렸다. 2017년 5월 9일 대선을 앞둔 시점에 각 당은 후보 경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민은 정치 뉴스와 시사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치란 무엇인가. 현 시국을 보면, 이스턴이 정의한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란 행태적 측면이나 혹은 "권력의 획득, 유지를 둘러싼 항쟁 및 권력을 행사하는 활동"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는 듯하다. 보다 공의롭고 정의로운 사회,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열망을 정치에 투사한다. 권력 놀음이나 배분적 측면을 넘어서 올바른 정치를 향한 기대가 한껏 부풀었다.
서병훈 교수의 신간 <위대한 정치>에 눈길이 간다. 저자는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존 스튜어트 밀 연구의 권위자이다. 개인적으로 책장에 저자가 번역한 밀의 <자유론>, <공리주의>가 꽂혀 있어서 낯익었다. 제목인 "위대한 정치"는 <미국의 민주주의>로 알려진 토크빌이 주창했던 구호이자, 밀 또한 나름의 위대한 정치(high politics, 하이 - 로우 개념이 아님)를 지향했던 것을 가리킨다. 밀과 토크빌은 서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해 나가던 격동의 시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동시에 그 폐해를 지적했다. 책은 정치사상사에 뛰어난 족적을 남긴 밀과 토크빌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한다. 그리고 정치와 민주주의가 뜨거운 화두가 된 요즘 시의적절한 담론을 제기한다.
서구 문명의 전진에 반비례해서 정치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쪼그라들고 있다. 오크숏의 개념 구분을 따라 말하자면, 정치를 통해 삶의 근본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신념의 정치"가 뒤로 밀리면서 정치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회의의 정치"가 주류가 된 지 오래이다. … 개인의 이익을 지키고 사회 질서를 잡아주는 차원으로 정치를 한정하면 그러한 정치 속에는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고뇌가 설 자리는 없다. 현대 사회는 정치를 그렇게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치를 끊임없이 욕하고 저주한다. 이는 정치에 대한 기대가 아직 살아 있다는 반증이다. (p. 267)
밀과 토크빌의 사상에서는 "신념의 정치"의 색채가 짙다. 그들은 정치를 존재의 근본과 결부시켰다. 따라서 그들은 정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들 자신이 그런 정치의 구현을 위해 현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론과 실천 양 측면에서 두 사람은 매우 닮았다. (p. 267)
밀과 토크빌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고민했고 신념과 실천이 일치된 삶을 살았다. 지식인으로서 책무에 민감했으며, 서로 사상을 나누고 교분을 쌓으면서 정치사상사의 고전이 된 역작을 남겼다. 비록 부침이 있었을지언정 이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현실 정치에 참여하였다. 책은 지식인으로서의 삶,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한 그들의 치열한 고민을 통해서 대한민국 현시대에 필요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정치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도 비슷했다. 두 사람은 정치를 수단이나 과정으로만 보지 않았다. 정치는 사람을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는 합목적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했다. 밀은 정치를 권력 놀음으로 치부하는 세태를 비판하며 도덕 정치를 주창했다. 인간의 자기 발전을 지향하는 큰 정치를 꿈꾸었다. 토크빌은 위대한 정치를 갈구했다. 인간으로서, 인간이기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번민으로부터 벗어날 출구를 정치에서 찾았다. 그는 물질적 탐닉이나 세속적 안락이 아니라 존재 가치의 구현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p.233)
그들에게 정치는 사회를 진보시키고 인간의 지성과 인격을 함양하는 전인격적 행위였다. 그래서 참여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민주 정체 하에서 밀은 '다수의 횡포'를, 토크빌은 공동선을 도외시한 '물질적 개인주의'를 걱정하였는데, 참여는 사회 구성원의 자질을 도야하여 이러한 폐해를 순치하여 위대한 정치를 향한 밑걸음이 된다고 보았다.
참여는 기성 정치 입문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치 참여다. 예컨대, 풀뿌리 민주주의를 체험하거나, 현실 정치에 주목하고 나름의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참여다. 서병훈 교수는 지식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현실을 오불관언하는 자세, 어설프게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행태를 비판한다. 예를 들자면 한때 비아냥거리가 되었던 폴리페서들이 떠오른다. 저자는 차라리 강단에 충실하라고 한다. 목숨을 던져 자유인의 도리를 지킨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고 일갈한다.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 밝혀지고 대통령이 탄핵된 후,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뜨겁다. 역사를 되돌아 보건대, 시민의 정치적 관심과 현명한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으나 군사 정변이 일어났고, 10.26 사건 이후 서울의 봄은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로 귀결되었다. 87년 6월 항쟁으로 호헌 철폐와 직선제를 이끌어 냈지만 군사 정권의 인물인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민주주의의 열망이 고조되었음에도 오히려 반동 세력 정권이 창출되었다. 과연 대한민국 정치는 어디로 향할까. 귀추가 주목된다. 밀과 토크빌이 지향했던 신념, '위대한 정치'와 성숙한 민주주의 담론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필요한 정신을 고민해 본다. 아울러 <위대한 정치>는 서병훈 교수의 밀과 토크빌 저작의 1부라고 한다. 2부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하다.
밀은 정치를 권력 놀음으로 치부하는 세태를 비판하며 도덕 정치를 주창했다. 인간의 자기 발전을 지향하는 큰 정치를 꿈꾸었다. 토크빌은 위대한 정치를 갈구했다. 인간으로서, 인간이기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번민으로부터 벗어날 출구를 정치에서 찾았다. 그는 물질적 탐닉이나 세속적 안락이 아니라 존재 가치의 구현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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