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벨 인형의 주인>이 8월 9일 어제 심야 시간대부터 개봉했다. 2014년에 개봉한 전작 <애나벨>은 컨저링 시리즈의 명성에 비하여 졸작이란 평이 많았는데, 이번엔 초록창 실시간 검색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호평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라이트 아웃>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서 개봉 전부터 기대가 많았다.

 

 

전작은 한 부부가 골동품상에서 악령이 깃든 인형 애나벨을 산 뒤로 벌어지는 미스테리 호러물이었다면, <애나벨 인형의 주인>은 인형 속에 왜 악령이 깃들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뤄서 관객들의 궁금증을 푸는 데 일조를 한다. 강력한 악령의 존재가 인형에 빙의된 탓에 우연히 얽힌 불특정 인물들에게 공포와 재앙을 선사하는데, 확실한 내막은 알려진 바가 없으니 당하는 입장에선 말 그대로 천청벽력같은 불행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영화가 주는 공포를 떠나 악마의 인형 애나벨이 탄생한 배경을 풀어준다. 이 점이 컨저링 시리즈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인형의 주인>은 전작에 비해 공포 장치나 서사가 한결 나아졌다. 오싹할 장치들을 많이 마련했다. 상영관 관객 분위기도 좋았고, 나오면서도 너 눈 감았냐, 눈 가렸냐 는 대화가 꽤 들렸다. 반면에, 장치들이 너무 고전적인 공식에 충실하지 않았나 싶다. 기괴한 음향효과와 함께 저절로 꺼지는 조명이나 움직이는 가구들, 사람이 다가가면 홀연히 사라졌다가 고개를 돌리면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형의 존재라든지. 고전적이긴 하나 장치들을 끊임없이 배치하여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전작이 루즈했다는 평가가 많아서인지 이를 보완한 듯하다.

 

 

특기할 점은 전작 <애나벨>이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는 딸과 남자친구에 의해 중년 부부가 살해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애나벨 인형의 주인>의 라스트 씬이 바로 그 장면을 연상케 한다. 전작과 연계하여 프리퀄 형식의 시리즈화를 시켰다. 마지막 장면을 언급하니 스포일러 같지만, 사실 본편의 스토리와 큰 상관이 없고 전작을 염두에 둔 일종의 쿠키 영상 같아서 큰 반전이나 놀랄 만한 전개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엔딩크레딧이 끝나고 쿠키 영상 2개가 기다리고 있다. 사실 나는 몰라서 못 보고 나왔다. 아쉽다. 검색한 바로는 컨저링과 관련된 영상이라고 한다. 요즘엔 마블, 저스티스리그, 그리고 올해 개봉한 미이라 같이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물이 많이 나온다. 아마 컨저링, 애나벨도 이러한 시리즈화가 은연중에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호러물, 구마의식을 다룬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선 반가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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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11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이 글을 읽어야 겠어요. 일단 지금은 ‘좋아요‘ 누르고 찜하겠습니다. ^^

캐모마일 2017-08-12 11:06   좋아요 0 | URL
아. 송구합니다. 글을 쓰다보니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 부분이 있네요. 대체로 이번 편은 평이 좋은 듯 합니다. 즐거운 관람 되세요. 감사합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가 어제 개봉했다. (7월 26일) 일제 말기 하시마 섬 탄광을 배경으로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의 열악한 삶과 대량 학살을 소재로 다뤘고, 개봉 전부터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았다.

 

 

영화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형에 가깝다. 남녀노소 관객을 노린 여름 시즌 작품이다. 개봉 이틀 만에 최단기 백만 관객을 돌파했고, 실제로 천만 관객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중장년층 관객분이 상영관에 많이 오셨다. 무난하게 흥행 기록을 세울 듯하다.

 

 

반면에 개봉 전부터 소재와 감독, 캐스팅에 기대가 큰 탓이었는지 혹평도 꽤 많다. 역사 고증과 감독의 개성을 살린 전개, 이 두 가지 모두를 바라고 티켓을 끊었는데, 막상 씨제이 엔터의 대형 자본, 스크린 독과점 논란 딱지가 붙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맞닥뜨리니 실망감을 토로하는 것이 아닐까. 감독의 개성이 묻혔다는 평도 이해가 간다. 개인적으론 클리셰 적절히 친 상업 영화에 반감이 없어서 재밌게 관람했다. 

 

 

아래는 아트 포스터인데, 옛스럽긴 하지만 주연 배우를 전면에 내세우는 기존의 한국 포스터 스타일이다.

 

 

 

 

 

엔딩 크레딧 전에 군함도에 대한 설명이 화면에 나온다. 아마도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을 참고한 듯하다. 내용은 물론이고 문장까지 비슷하다. 참고 링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43498&cid=43667&categoryId=43667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하시마섬은 일본 메이지 산업시대 시설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우리나라 등에서 반발이 일자, 유네스코는 강제 징용을 비롯하여 시설과 관련한 모든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권고하였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일본 해군 군함을 닮아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섬. 일제 강제 징용 탄광 노동자의 피맺힌 역사. 알라딘에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이북 대여 이벤트를 하고 있다. 다음은 이벤트 링크.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66609

 

 

 

 

 

 

 

 

 

 

 

 

 

 

 

영화 개봉 소식에 맞춰서 한수산 작가의 장편 소설 <군함도>를 샀는데, 여지껏 놔두고 있다. 작가 스스로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참에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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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800782150093382&id=100004848126387 유명한 항소이유서를 이북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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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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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우리나라에 소신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일본 우익에 반대하여 평화 헌법을 수호하는 발언을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반면에 그의 사상과 명성에 비하여 작품은 원체 손이 가지 않았다. 특유의 문체가 낯설고 작품이 전반적으로 난해하다는 평이 많아서였다.



<만엔 원년의 풋볼>은 화자인 미쓰사부로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추한 외모에 아이들의 돌팔매질에 맞는 바람에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게다가 아내와의 사이에서 기형아를 낳았고, 아내는 알콜중독자가 되었다. 동생 다카시는 1960년 미일 안보조약에 반대하여 운동권으로 활약하다가 정부에 전향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 동생이 미국에서 돌아오자, 그들은 도시를 떠나 고향 마을에 정착한다.



그러나 마을은 일명 '슈퍼마켓 천황'이라는 조선인이 마을 상권과 권력의 정점에 있었고, 부락민들은 무기력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동생 다카시는 자신의 조상인 증조부의 동생이 주도했던 1860년 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를 떠올리며 마을 풋볼 팀을 결성하여 수퍼마켓 천황에 대항한다.



개인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작품이었다.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 쓴 채 항문에 오이를 꽂고 자살한 미쓰사부로의 친구, 형제의 여동생은 다카시와 근친관계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밝혀진다. 게다가 미쓰사부로의 아내, 형수와 관계를 맺는데, 이 경험을 계기로 아내는 알콜중독에서 벗어난다. 결국 다카시는 이러한 일들을 털어놓은 채 자살을 한다. 작품 내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극을 이끌어 나간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1860년 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와 백 년이 지난 1960년 미일 안보조약의 체결, 그로 인한 집단적 굴욕감,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지는 폭력과 수치심의 향연 속에서 과연 구원과 치유가 있는 건가 하고 말이다. 소설 말미에 미쓰사부로는 다카시의 '혼령'을 언급한다. 생각건대, 다카시는 전후 일본 공동체를 형상화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백년 전 만엔 원년의 농민봉기를 동경하고, 미일 안보조약 반대 시위에 참여하지만 결국 전향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겪는다. 슈퍼마켓 천황과 대항하던 중 근친 경험과 수치심을 토로하고 자살을 한다. 마찬가지로 슈퍼마켓 천황에 순응하고 방관했던 마을 주민들도 다른 한 축일 것이다.

그리고 남은 형 미쓰사부로는 다카시의 아이를 잉태한 아내와 함께 새로운 '기대'를 찾아 아프리카로 떠난다. 비록 다카시는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자살했지만, 그의 씨는 남아서 새로운 희망으로의 여정에 동참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미완의 결말이 크게 와닿진 않는다. 그러나 100년이란 장대한 시간을 거쳐 온 폭력과 대립,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치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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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삶의 의미를 수집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각종 피규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을 진열해 놓는 수집가가 있고, TV 프로그램 <세상의 이런 일이>에선 잡동사니와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생활하는 출연자가 심심찮게 소개된다. 때로는 짐스럽지만 차마 외면할 수 없고 버리지 못한다. 그들에게 수집은 단순히 무언가를 소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 삶의 위기 속에서 나를 달래주고 공허함을 채워주는 행위이다. 나아가 자아를 확장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연결고리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삶의 위기를 맞이한 중년 남성의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 윌리엄 데이비스 킹은 캘리포니아대 연극무용과 교수로, 이혼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 사회적 성취에 대한 회의감에 휩싸여 정신 상담을 받는 와중에 이 책을 집필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수집이다. 열여덟 살에 수집품이 이미 톤 단위를 넘었고, 이혼할 즈음엔 차고를 가득 채울 만큼 어마어마한 부피가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란 바로 그의 컬렉션을 일컫는 말이다.



수집벽의 기원은 어렸을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덟 살 터울의 친누나 신디는 선천적 뇌성마비와 신경쇠약 탓에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했고, 잦은 신경질과 히스테리로 마치 집안의 여왕인 양 군림했다. 그는 누나와 부모를 이해하는 착한 아이 역할을 맡아야 했다. 마치 그것이 자유의지인마냥. 그 와중에 수집은 그에게 허락된 취미였고, 거기서 위안을 찾기 시작했다. 비교적 흔한 우표 수집부터였다. 가족들은 왜 우표를 비뚤게 붙이고 기준에 맞게 나열하지 않았냐며 참견했다. 일반적인 사람에게 수집이란 정리하고 분류하는 일련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이 원하는 질서가 아니었다. 자유와 스스로에 대한 가치였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했다. 수집광은 이렇게 탄생했다. 

컬렉션은 그가 말하듯 대부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다. '스타키스트 으깬 살 소형 참치. 광천수 포장' 같은 통조림 라벨, '리지스 피넛 퍼터 스윗 앤드 크런치 콘 퍼프' 시리얼 상자. 너트와 볼트를 비롯한 잡동사니 투성이자 '싸구려 백화점'이다. 일반적인 수집가는 소장가치를 분석하지만, 그는 잡동사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의미를 찾았다. "나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가 원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늘 아무것도 아닌 것을 소유함으로써, 현실에서는 결코 의미 있는 것을 갖지 못하는 나 자신의 마음을 달래줘야 했던 것 같다."(p.118)고 소회한다.



저자 윌리엄 교수는 말한다. "중산층의 삶은 그 자체가 컬렉션이다."라고. 번듯한 사회적 지위, 안정적인 경제력, 그리고 배우자, 아이들로 꾸려진 가정. 이 조건을 채우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간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질서와 안정을 상징하는, 이름하야 중산층이란 컬렉션이다. 그가 겪은 중년의 위기는 중산층 컬렉션의 붕괴이자 그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그럴수록 일반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수집품에 천착했다. 역설적으로 둥근 철물 잡동사니에서 더없는 행복을 발견하고, 전단지, 각종 상품 라벨 광고 문구에서 창조성을 느꼈다.

속사포처럼 터지는 수집 목록들, 수집과 수집가에 대한 단상에 웃음이 터졌다. 너무 흔한 나머지 오히려 독특하게 다가오는 것들. 어느새 잡동사니에서 자유와 의미를 찾는 기벽에 공감이 갔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가치 속에서 벌거벗은 나 자신의 실존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하지 않았는지. 그렇기에 저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으고 가치를 찾아나가며, 스스로의 가치를 재정립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컬렉션들은 그저 소유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수행된다. 그것들은 삶을 구조화하고 역할을 부여한다."(p.101)

 

"중산층의 삶은 그 자체가 컬렉션이다." - p.13

"나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가 원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늘 아무것도 아닌 것을 소유함으로써, 현실에서는 결코 의미 있는 것을 갖지 못하는 나 자신의 마음을 달래줘야 했던 것 같다." - p.118

"예술과 마찬가지로 수집은 세계의 낯섦을 받아들이고 배우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것은 방랑벽의 한 형식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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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9 0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게 책이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들입니다. 책장의 빈 공간만 봐도 못 참습니다.

캐모마일 2017-05-29 17:26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님의 공허함 덕분에 좋은 리뷰를 읽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허함에 감사 인사 드립니다. ㅎㅎㅎ

marcel13 2017-05-2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시껄렁한 걸 모으는 취미는 저만 있는 기벽은 저만 있는게 아니었군요~

캐모마일 2017-05-29 17:35   좋아요 0 | URL
저자는 상품의 각종 라벨들, 전단지, 시리얼 종이박스, 흔히 보는 공구 용품들, 유명 작가의 명작이 아닌 졸작 서적들....여타 잡동사니 같이 일반인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물건 속에서 가치를 찾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특히 연극무용과 교수라서 더 호소력있게 잘 표현한 거 같아요. 첨엔 왜 이런 걸 모으지? 하며 웃으면서 읽었는데 갈수록 오. 설득력이 있었어요. 아마 marcel13님께서도 이런 심미안이 있으셔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