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삶의 의미를 수집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각종 피규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을 진열해 놓는 수집가가 있고, TV 프로그램 <세상의 이런 일이>에선 잡동사니와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생활하는 출연자가 심심찮게 소개된다. 때로는 짐스럽지만 차마 외면할 수 없고 버리지 못한다. 그들에게 수집은 단순히 무언가를 소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 삶의 위기 속에서 나를 달래주고 공허함을 채워주는 행위이다. 나아가 자아를 확장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연결고리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삶의 위기를 맞이한 중년 남성의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 윌리엄 데이비스 킹은 캘리포니아대 연극무용과 교수로, 이혼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 사회적 성취에 대한 회의감에 휩싸여 정신 상담을 받는 와중에 이 책을 집필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수집이다. 열여덟 살에 수집품이 이미 톤 단위를 넘었고, 이혼할 즈음엔 차고를 가득 채울 만큼 어마어마한 부피가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란 바로 그의 컬렉션을 일컫는 말이다.



수집벽의 기원은 어렸을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덟 살 터울의 친누나 신디는 선천적 뇌성마비와 신경쇠약 탓에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했고, 잦은 신경질과 히스테리로 마치 집안의 여왕인 양 군림했다. 그는 누나와 부모를 이해하는 착한 아이 역할을 맡아야 했다. 마치 그것이 자유의지인마냥. 그 와중에 수집은 그에게 허락된 취미였고, 거기서 위안을 찾기 시작했다. 비교적 흔한 우표 수집부터였다. 가족들은 왜 우표를 비뚤게 붙이고 기준에 맞게 나열하지 않았냐며 참견했다. 일반적인 사람에게 수집이란 정리하고 분류하는 일련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이 원하는 질서가 아니었다. 자유와 스스로에 대한 가치였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했다. 수집광은 이렇게 탄생했다. 

컬렉션은 그가 말하듯 대부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다. '스타키스트 으깬 살 소형 참치. 광천수 포장' 같은 통조림 라벨, '리지스 피넛 퍼터 스윗 앤드 크런치 콘 퍼프' 시리얼 상자. 너트와 볼트를 비롯한 잡동사니 투성이자 '싸구려 백화점'이다. 일반적인 수집가는 소장가치를 분석하지만, 그는 잡동사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의미를 찾았다. "나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가 원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늘 아무것도 아닌 것을 소유함으로써, 현실에서는 결코 의미 있는 것을 갖지 못하는 나 자신의 마음을 달래줘야 했던 것 같다."(p.118)고 소회한다.



저자 윌리엄 교수는 말한다. "중산층의 삶은 그 자체가 컬렉션이다."라고. 번듯한 사회적 지위, 안정적인 경제력, 그리고 배우자, 아이들로 꾸려진 가정. 이 조건을 채우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간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질서와 안정을 상징하는, 이름하야 중산층이란 컬렉션이다. 그가 겪은 중년의 위기는 중산층 컬렉션의 붕괴이자 그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그럴수록 일반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수집품에 천착했다. 역설적으로 둥근 철물 잡동사니에서 더없는 행복을 발견하고, 전단지, 각종 상품 라벨 광고 문구에서 창조성을 느꼈다.

속사포처럼 터지는 수집 목록들, 수집과 수집가에 대한 단상에 웃음이 터졌다. 너무 흔한 나머지 오히려 독특하게 다가오는 것들. 어느새 잡동사니에서 자유와 의미를 찾는 기벽에 공감이 갔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가치 속에서 벌거벗은 나 자신의 실존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하지 않았는지. 그렇기에 저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으고 가치를 찾아나가며, 스스로의 가치를 재정립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컬렉션들은 그저 소유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수행된다. 그것들은 삶을 구조화하고 역할을 부여한다."(p.101)

 

"중산층의 삶은 그 자체가 컬렉션이다." - p.13

"나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가 원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늘 아무것도 아닌 것을 소유함으로써, 현실에서는 결코 의미 있는 것을 갖지 못하는 나 자신의 마음을 달래줘야 했던 것 같다." - p.118

"예술과 마찬가지로 수집은 세계의 낯섦을 받아들이고 배우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것은 방랑벽의 한 형식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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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9 0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게 책이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들입니다. 책장의 빈 공간만 봐도 못 참습니다.

캐모마일 2017-05-29 17:26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님의 공허함 덕분에 좋은 리뷰를 읽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허함에 감사 인사 드립니다. ㅎㅎㅎ

marcel13 2017-05-2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시껄렁한 걸 모으는 취미는 저만 있는 기벽은 저만 있는게 아니었군요~

캐모마일 2017-05-29 17:35   좋아요 0 | URL
저자는 상품의 각종 라벨들, 전단지, 시리얼 종이박스, 흔히 보는 공구 용품들, 유명 작가의 명작이 아닌 졸작 서적들....여타 잡동사니 같이 일반인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물건 속에서 가치를 찾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특히 연극무용과 교수라서 더 호소력있게 잘 표현한 거 같아요. 첨엔 왜 이런 걸 모으지? 하며 웃으면서 읽었는데 갈수록 오. 설득력이 있었어요. 아마 marcel13님께서도 이런 심미안이 있으셔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