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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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우리나라에 소신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일본 우익에 반대하여 평화 헌법을 수호하는 발언을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반면에 그의 사상과 명성에 비하여 작품은 원체 손이 가지 않았다. 특유의 문체가 낯설고 작품이 전반적으로 난해하다는 평이 많아서였다.



<만엔 원년의 풋볼>은 화자인 미쓰사부로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추한 외모에 아이들의 돌팔매질에 맞는 바람에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게다가 아내와의 사이에서 기형아를 낳았고, 아내는 알콜중독자가 되었다. 동생 다카시는 1960년 미일 안보조약에 반대하여 운동권으로 활약하다가 정부에 전향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 동생이 미국에서 돌아오자, 그들은 도시를 떠나 고향 마을에 정착한다.



그러나 마을은 일명 '슈퍼마켓 천황'이라는 조선인이 마을 상권과 권력의 정점에 있었고, 부락민들은 무기력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동생 다카시는 자신의 조상인 증조부의 동생이 주도했던 1860년 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를 떠올리며 마을 풋볼 팀을 결성하여 수퍼마켓 천황에 대항한다.



개인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작품이었다.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 쓴 채 항문에 오이를 꽂고 자살한 미쓰사부로의 친구, 형제의 여동생은 다카시와 근친관계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밝혀진다. 게다가 미쓰사부로의 아내, 형수와 관계를 맺는데, 이 경험을 계기로 아내는 알콜중독에서 벗어난다. 결국 다카시는 이러한 일들을 털어놓은 채 자살을 한다. 작품 내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극을 이끌어 나간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1860년 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와 백 년이 지난 1960년 미일 안보조약의 체결, 그로 인한 집단적 굴욕감,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지는 폭력과 수치심의 향연 속에서 과연 구원과 치유가 있는 건가 하고 말이다. 소설 말미에 미쓰사부로는 다카시의 '혼령'을 언급한다. 생각건대, 다카시는 전후 일본 공동체를 형상화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백년 전 만엔 원년의 농민봉기를 동경하고, 미일 안보조약 반대 시위에 참여하지만 결국 전향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겪는다. 슈퍼마켓 천황과 대항하던 중 근친 경험과 수치심을 토로하고 자살을 한다. 마찬가지로 슈퍼마켓 천황에 순응하고 방관했던 마을 주민들도 다른 한 축일 것이다.

그리고 남은 형 미쓰사부로는 다카시의 아이를 잉태한 아내와 함께 새로운 '기대'를 찾아 아프리카로 떠난다. 비록 다카시는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자살했지만, 그의 씨는 남아서 새로운 희망으로의 여정에 동참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미완의 결말이 크게 와닿진 않는다. 그러나 100년이란 장대한 시간을 거쳐 온 폭력과 대립,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치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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