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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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는 대단한 다짐도 없고 그저 마음속을 떠돌아다니다 몸속 어딘가에서 딱지가 진, 생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삶이라면 조금 오그라들지만 그렇다고 생활이라고 내버릴 수는 없는, "혼잣말을 그만두지 못해서 그 마음에 내내 귀를 기울이는" 결과들이 가라앉아 있다.


홀로 어둠을 헤아리는 기분으로 혼잣말이 징검다리처럼 놓인 단어 하나하나를 건너 시인에게 다가간다.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미끄러지고 종종 물에 빠지는 일이다. 걷잡을 수 없이 젖어가는 마음 안에 "그 소리를 들인다". 들였던 소리가 빠져나 갈 때쯤 이제는 눈보라가 몰려와 젖은 마음을 차갑게 얼리는데, 그 빈 마음이 용기를 내어 묻는다.


바다는 잘 있습니까?


약속하지 않은 사람을 행여나 만날까 싶어 하루종일 터미널에 앉아있는 마음을 돌아본다. 시인은 사랑이 많은 걸까, 희망이 많은 걸까, 부질없는 일을 하고 또 했을 때 오히려 깨끗이 비어버리는 마음의 공허가 좋은 걸까? 우연이 주는 벅차오름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확률이 낮은 일에 하염없이 매달리는 이유만큼은 끝까지 모를 것 같다. 무엇이 조심스러워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가. 전화를 건 뒤 보고 싶다고, 우리 당장 만나자고, 오늘이 안 된다면 내일, 내일이 안 된다면 그다음, 되는 날을 될 때까지 꺼내놓고 맞춰보면 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독이고 다독여서 / 빨래 마르는 동안만큼은 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게는 말을 너무 하지 않는 것이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뱉어낸 말들이 다른 사람들의 몸속을 돌다 찐득하게 달라붙어 풍기는 냄새가 싫은 걸까? 냄새를 두려워한다면 향기도 주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절제와 품위를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걸, 또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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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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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세븐은 일곱 번째 미키다. 여섯 번을 죽었고 일곱 번 태어났다. 기억은 주기적으로 업로드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키와 미키 사이에 존재의 단절이 일어난다. 미키의 기억을 온전히 다운로드하지 못한 미키를 이전의 미키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를 우리라고 정의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기억, 정신, 몸, 외모, DNA.


이 중에서 가장 먼저 탈락한 후보는 외모다. 나와 똑같은 일란성쌍둥이가, 아무리 똑같이 생겨도 내가 아니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음은 몸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 그 집합이 곧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해 보자. 하지만 우리가 태어났을 때 갖고 있었던 세포 중 아직까지 존재하는 건 단 한 개도 없다. 어느 시점에서 그들은 모두 죽었고 새로운 세포로 대체됐다. 테세우스의 배.


다음 후보는 DNA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개념 중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가장 오해가 많은, 일명 유전자. 우리는 대개 우리의 DNA를 복제하면 우리와 완전히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착각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DNA는 조건에 따라 정해진 숫자를 내뱉는 주사위 같은 존재다. 나와 똑같은 DNA를 가졌다고 해서 그게 나일 수는 없다. 심지어 둘은 외모마저 다를 수 있다.


남은 건 기억 혹은 정신이라 부르는 의심쩍은 개념이다. 기억이 얼마나 왜곡되기 쉬운지를 알고 있다면 후보에서 제외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이 남는데, 도대체 이걸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선조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온 민족이 있다고 그들 모두를 같은 인간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좀 더 개별적 차원에서 들여다보면 우리의 뇌 자체를 정신으로 간주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든다. 우리의 모든 정신 상태는 뇌와 연결된 신경과 그 신경의 활동으로 변형된 뇌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결국에는 그걸 우리 자신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이도 완벽한 결론은 아니다.


미키 세븐의 존재적 고민은 미키 에잇과 공존하면서 극단에 이른다. 미키7과 미키8은 정책상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거나 어쩌면 둘 모두 환원 장치로 들어가 단백질을 반납하고 미키 나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미키7과 미키8은 서로의 존재를 숨기기로 한다. 어차피 생긴 건 똑같으니까, 돌아가며 임무를 맡는다. 미키8은 미키7의 여자친구를 뺏고(?) 미키7은 새로운 여자와 바람이 나는 직전까지 이른다. 미키7은 더 이상 미키8이 아니고 둘 모두를 죽여 나인을 만든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키7>이 이렇게 진지한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봉준호가 연출하고 로버트 패티슨이 주연하는 <미키17>은 확실히 무게를 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봉준호 특유의 뒤틀리고 사악하고, 그러면서 웃기는. 나와 완전히 똑같은 그 존재는 어째서 나를 죽이고 싶어 할까? 이상한 나라의 봉준호는 이상한 나라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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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진화 (40주년 특별 기념판) - 이기적 개인으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내는 팃포탯 전략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이경식 옮김 / 시스테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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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진화>가 다루는 내용은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너무나 유명한 게임이라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정리를 한 번 해보자. 당신과 어떤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두 사람은 각각 협력이나 불협을 택할 수 있다. 둘 모두 협력을 택하면 쌀을 3포대씩 가져가고 한쪽이 협력, 다른 쪽이 불협을 택하면 불협 쪽이 5포대, 다른 쪽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둘 다 불협을 택하면 각각 1포대를 얻는다. 선택에 따른 경우의 수는 협력-협력, 협력-불협, 불협-협력, 불협-불협 총 네 가지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상대방이 협력자든 양아치든 당신은 무조건 '불협'을 택해야 이득이다. 불협-협력은 5포대, 불협-불협은 1포대의 가능성이 생기지만 반대는 3포대와 0포대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굳이 성악설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왜 이기적이고 세상은 이토록 각박한지 알게 된다. 역시 남을 잘 믿으면 그저 호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런데 이 게임에 '반복적'이라는 조건을 추가하면 상황이 사뭇 달라진다. 인간인 이상 배반을 당했을 때 그저 '허허' 웃으며 넘길 수만은 없다. 그래서 배반을 한 번 당한 사람은 이후 그 사람과 절대로 협력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이 1년 동안 같이 했을 때 얻는 수익은 최초의 배반자가 16포대, 최초의 협력자는 11포대다. 흠, 이 정도면 처음 겪은 그 더러운 기분이 가시진 않겠지만 그래도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얼마 후 이 마을에 C가 이사를 온다. C는 B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C는 처음부터 B와 협력했고 1년 내내 그 기조를 유지하여 총 36포대를 수확한다. 하지만 A와는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 11포대를 얻게 된다. 이후 세 사람이 같은 마을에 10년 동안 같이 살았다고 생각해 보자. A는 B, C와의 관계에서 12포대씩 얻어 10년간 총 240포대를 수확한다. 반면 B와 C는 A와의 관계에서 12포대, 그 외의 관계에서 36포대를 수확해 총 480포대를 얻게 된다. A보다 무려 2배를 버는 것이다!! B와 C는 잉여 생산물을 팔아 그 돈으로 A의 땅을 사들인다. 그리고 그 땅을 D라는, B, C와 매우 비슷한 성향의 사람에게 판다. 이것이 잔인하게만 보이는 인간 세상에 '협력'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다.


이 책은 정말로 놀랍다. 호혜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타주의가 자연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이유를, 윤리나 도덕에 기대지 않고 수학적으로 증명해 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속한 조직에 협력을 뿌리내리고 싶다면 이 책은 아주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사람들에게 상호작용이 장기적으로 계속된다는 믿을 주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너는 저 사람과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 이 조건 하나가 매우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둘째, 더 이상 협력을 바랄 수 없는 쓰레기 같은 팀이어도 협력으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소수만 수혈해도 팀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총인원이 10명인 팀에 협력자가 3명, 불협자가 7명이라고 가정해 보자. 보수는 매달 측정되어 불협-불협이 1백만, 협력-협력이 3백만, 불협-협력이 5백만을 가져갈 수 있다. 첫 해에 불협자 7명이 가져갈 수 있는 보수의 총액은 협력자 3명으로부터 각각 1,600 만씩 총 4,800만, 불협자 6명으로부터 각각 1,200 만씩 총 7,200만, 합해서 1억 2천만 원이다. 반면 협력자 1명이 얻을 수 있는 보수는 2명의 다른 협력자로부터 각각 3,600 만씩 총 7,200만, 불협자 7명으로부터 각각 1,100만 원씩 총 7,700만, 합해서 1억 4천9백만 원이다!!!


당신이 저 팀의 불협자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사회생활에는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바보 같은 편견을 계속 유지하며 1.2억의 연봉을 받겠는가? 아니면 내년부터 저 순진하고 멍청한 호구들 편에 서서 1.8억의 연봉을 가져가겠는가?


윤리보다 중요한 건 산수다. "인간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 세상 모든 것을 산수로 환원할 수 있다면, 정말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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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서노다 - 고구려와 백제를 세운 건국의 여제 나는 누구다
윤선미 지음 / 일송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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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는 정말 비범한 인물이다. 우리 고대사에서 무력과 문화로 가장 막강했던 두 나라를 건국한 여자. 기개와 야심, 능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졸본부여 국왕의 '딸'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시조인 고대 왕국이 반드시 존재했을 것이다. 이 책은 소서노를 고구려의 실질적 여왕으로, 백제의 초대 국왕으로 여긴다. 꽤 타당한 면이 있다.


소서노의 첫 번째 남편은 우태였다. 동부여의 왕 해부루의 서손이었던 그는 출신 탓에 중용되지 못했고 소문이 자자했던 소서노를 몰래 만나 결혼을 한다. 둘이 낳은 아들이 바로 백제의 비류와 온조다. 서손이긴 했으나 엄연히 한 나라의 왕손과 허락 없이 통혼한 졸본부여는 평화를 위해 우태를 차기 국왕으로 세운다. 이것이 소서노의 첫 번째 양보였다.


우태는 일찍 죽는다. 과부가 된 소서노는 한참이나 어린 망명자를 들여 남편으로 삼는다. 동명성왕 추모. a.k.a 주몽은 소서노의 졸본부여를 토대로 700년을 이어간 동북아 최강국 고구려를 건국한다. 이것이 소서노의 두 번째 양보였다.


소서노의 입장에서 고구려는 배은의 전형이자 망덕의 참상이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망명자를 살려줬더니 결국 집주인이 쫓겨나가는 형국이라니. 대대로 졸본땅을 근거 삼은 소서노에서 내전이라는 선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두 번의 양보로 미루어 짐작컨대 소서노는 굉장히 실용적이고 쓸데없는 분쟁을 굉장히 싫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에게 상인의 피가 흘렀기 때문일까? 전쟁은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이다. 그럼에도 세 모자의 남하는 뼈아픈 결과였음이 확실하다. 백제는 소서노의 사당을 지어 그녀를 기렸는가 하면 자신의 뿌리가 부여임을 밝히며 고구려와 명확히 구분한다.


소서노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거의 모두 상상과 추측에 근거한다. 사료가 극도로 부족한 데다, 있는 것도 이후 남성 중심의 유교 사관들에 의해 축소, 왜곡, 삭제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뿌리의 상당수가 지금은 중국땅에 갇혀 보지도, 듣지도, 기록하지도 못하니 소서노의 활약은 영원히 미궁에 갇혀 있을 것이다.


<나는 소서노다>는 상당히 가벼운 역사책이다. 사료도 부족하고 논란도 많은 고대사를 3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담았다는 건, 사실상 이 책이 역사라기보다는 소설에 가깝다는 걸 알려준다. 그래도 고대사에 이만한 족적을 남긴 여성을 우리가 잊고 산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깨우쳐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고대 역사를 꼼꼼히 살피면 남자와 함께 전장에 뛰어든 여자들이 종종 보인다. 그들은 똑같이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둘러 적들을 베고 나라를 구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왜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단 하나도 떠올릴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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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 위스키의 향기를 찾아 떠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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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의 신판이다. 페이지는 6쪽, 무게는 9그램이 줄었다. 풀컬러에 빳빳한 종이다. 글보다 그림이 많아 숨 쉬듯 읽을 수 있다. 나는 구판과 신판을 모두 소유했고, 당연히 둘 다 읽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렇게 다를 줄은. '위스키 성지 여행'을 읽었을 때는 이제 막 싱글 몰트에 입문했던 때라 좀 더 심취했달까?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며 위스키 진열장을 뛰어다니던 초심자의 열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쪽수도 훨씬 많았다고 기억했다. 신판은 구판의 내용을 발췌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유는 아마도 내가 위스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탓일 테다. 그때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술들이 줄줄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이 중 모르는 브랜드는 하나도 없고, 심지어 마셔보기까지 한 게 꽤 되니까,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그렇지,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당시 쓴 서평을 보니 내 최애 싱글 몰트는 글렌모렌지 시그넷, 꼬냑은 까뮈 X.O였다. 지금도 그런가 하면, 글쎄 고민을 하게 된다. 싱글 몰트가 아니면 안 마시던 시절도 있었는데 최근에 히비키를 마시고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이런 게 가능하다니!' 싶을 정도로 전율이 이는 맛이었다. 아일랜드 위스키가 궁금해 우연히 마셔본 부쉬밀도 기가 막혔다. 확실히 나는 부드러운 목 넘김에 알코올향이 강하지 않은 걸 좋아한다. 꼬냑은 미안하지만 헤네시로 갈아탔다.


당시엔 싱글 몰트보다도 꼬냑을 좋아했지만 지금 당장 바텐더가 '한 잔 줄까?'라고 물으면 '히비키'하고 답할 것 같다. 시간은 흐르고, 경험은 쌓이고, 인간은 바뀐다.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You need cube?"라는 질문에

"No thanks. With just water, please."라고 대답한다는 것. (p.83)


이 책을 읽고 위스키에 너무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 향과 풍미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쓰디쓴 알코올임에는 변함이 없다. 하루키는 아드벡을 향해 '영혼의 한 가닥 한 가닥까지 모조리 선연하고 극명하게 부각하는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p.43)이라 말하지만 위스키를 마셔본 적이 없고, 있더라도 피트가 없는 온화한 계열을 즐겼다면, 당신이 아드벡을 마신 뒤 내놓을 감상을 나는 100% 예상할 수 있다.


우웩!!!!!


세상은 넓고, 술의 세상은 더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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