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밥일지 - 청년공, 펜을 들다
천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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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는 1990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서울로 이주했으나 사기를 맞아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좁은 마산 바닥을 돌아다니며 월세살이를 했다. 열아홉 살 무렵엔 어시장 근처의 신포동에서 살았는데, 술 취한 노인들이 소리를 지르고 노래방의 고성이 그대로 흘러나오는 어수선한 동네였다. 고양이들이 비린내 나는 바닥을 활보했다. 의거탑 앞에는 붉으죽죽한 홍등가가 자리했다.


서울에서 살다와 서울말을 쓴다는 것이 마산에서는 따돌림의 이유였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맞기도 많이 했다. 공부는커녕 사는 거 자체가 힘들었다. 아버지는 심각한 바람둥이라 두 번째 결혼마저 온전히 마치지 못했다. 천현우는 계모와 함께 여관에서 살았다.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까지 마쳤는데 계모 심여사가 돌연 병에 걸려 아버지의 집으로 옮겨야 했다. 생부는 여전히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해 집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 열 살짜리 아이는 어두운 밤을 늘 홀로 지새워야 했다. 어쩌다 집에 들어온 날엔 다른 여자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럴 때면 바닥에서 자야 했다.


영양실조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날 평생 처음 보는 생모가 자신이 기르겠다며 아이를 데려갔다. 그리고 학대가 시작됐다. 생모는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아들의 입에 효자손을 쑤셔 넣는 여자였다. 밥을 남기는 날엔 그 자리에서 밥그릇이 얼굴로 날아왔고 피시방을 가겠다고 하면 발로 배를 걷어찼다. 청소를 안 하는 날엔 피부가 검게 타 죽을 때까지 엉덩이와 종아리를 맞았다. 그 집엔 수상한 남녀가 함께 살았는데, 이모와 삼촌으로 부르던 그 둘은 어린 현우의 앞에서 성교하는 취미가 있었다.


견디지 못한 아이는 문득 생부가 자기 명의의 기초 생활 지원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죽지 않을 만큼 다친다면 아버지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었다. 아이는 스스로 몸을 던져 발목이 으스러진다. 병원을 찾아온 아버지에게 천현우는 심여사의 이름만 불렀다. 그렇게 모자는 2년 만에 재회한다.


짐승과 정신병자들의 손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기르는 사람과 산다는 건 행복이었다. 그러나 여관방을 전전하던 심여사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었겠는가. 전기와 수도는 끊기기 일쑤였고 가난은 찐득하게 달라붙은 얼룩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이나 가려는데 심여사가 고졸만큼은 안 된다며 굳이 굳이 전문대 진학을 고집했다. 등록금도 없으면서 무슨 대학을. 150만 원을 빌리면 선이자 떼고 120만 원, 거기다 한 달에 십몇 퍼센트씩 이자가 붙는 사채가 심여사의 유일한 답이었다. 이자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예감한 천현우는 5년간 키운 게임 캐릭터와 아이템을 팔아 150만 원을 마련한다. 그곳에서 전기기술을 배워 산업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청년은 용접의 세계로 들어선다. <쇳밥일지>의 시작이었다.


 몇 년 간 이보다 더 빠져들어 읽은 책이 있는가 생각해 봤으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쇳밥일지>는 생생한 에세이를 넘어 소설 같은 서사를 전해준다. 1960년, 70년도 아닌 90년생이, 끔찍한 가정생활과 인권을 짓밟는 일자리를 뚫고 살아왔다니. 수도권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고, 수도권 회사에 입사해 주담대 금리를 걱정하는 삶이 사실은 얼마나 특혜를 누려온 것이었는지. 찬물을 끼얹듯 쏟아진 이 이야기들은 나 같은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각의 삶이었다. 요즘 젊은것들은 힘든 일을 싫어해 중소기업에는 안 간다는 얘기가 이 청년에게는 얼마나 찢어지는 상처가 될까.


사실 나는 이 책에 내 생각을 얹는 게, 이 책이 '재미있다'라고 하는 게, 당신들도 꼭 한 번 '읽어보라'라고 하는 게, 이 청년에게 실례가 될까 두렵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이 서커스 같은 인생을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잔인한 구경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모든 이야기 위로 재밌다 내뱉는 말속엔 얼마나 섬뜩한 잔인이 깃들어있을까? 글을 잇기가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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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솔직하다
신세연 지음 / 우주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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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직장인이다. 돈도 빽도 없으나 공부는 괜찮게 해 명문대에 진학했고 부드럽게 대기업에 입사했다. 초일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상류라고는 봐줄 수 있는 삶. 하지만 형편이란 자기가 디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이라 최선은 자신의 인생이 답답하고 비루해 보였다.


주식은 허구한 날 꼬라박았고 월급은 그저 잠깐 스쳐가는 손님에 불과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답이거늘, 시간은 간당간당한 실에 달린 단두대 같아 초조의 불길과 욕망의 폭풍을 일으켜 인간의 마음을 까맣게 태워버린다.


그렇게 최선은 불법 토토에 빠져들었다.


5만 원권 돈다발을 한 아름 들고 온 친구의 모습에 최선을 할 말을 잃었다. 찌라서 개잡주에 들어가 상한가를 쳐도 하루 수익률은 30%에 그쳤지만 토토는 두 배, 세 배도 가능했다. 최선은 추천인에 친구의 아이디를 넣고 한 달 용돈 30만 원부터 차곡차곡 파멸의 이자를 적립해 나간다. 친구가 불러준 승패승패승승패는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토토. 단순한 운빨 도박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충'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팀의 전력을 분석하고 내부인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선수들의 SNS를 추적해 그들의 심리적 상태를 예측 변수로 추가한다.


사람들은 사기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다 지나간 뒤에나 보이는 거다. 욕망의 불을 켠 순간 눈은 멀어버린다. 용돈에서 시작한 토토에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넣었을 때 최선은 파멸의 우체부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그는 돈과 직장을 잃고, 이혼하고, 아이를 빼앗긴다.


아, 그러나 인생이란 밑바닥이라 생각할 때 더 깊은 구덩이가 존재한다는 걸 가르쳐주는 잔인한 선생님이 아니었던가! 희망이 사라진 뇌는 인간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모 아니면 도. 어차피 더 망가질 게 없는 인생. 최선은 전업 토토충이 되어 패스트푸드로 아침을 때우는 건달이 된다. 그 삶은 온갖 악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린 무한한 추락의 땅이었다. 부패한 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최후의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피는 솔직하다>는 제목이 일품이다. 그런데 왜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메뉴에 찍힌 화려한 사진에 이끌려 주문했지만 맛은 그저 그랬던. 중반까지는 꽤 잘 굴러가던 기차는 마지막 30분을 남기고 심하게 덜컹거리다 아예 선로 중간에 멈춰 운행을 끝낸다. 승객은 이리저리 기워붙인 클리셰를 발판 삼아 정거장까지 걸어가야 하나, 그마저도 꼼꼼치 않아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새어 나온다. 생각이 많은 밤을 날려줄 넷플릭스 B급 영화를 기대했지만 아쉬움만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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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공간 - 평행우주, 시간왜곡, 10차원 세계로 떠나는 과학 오디세이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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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1990년대에 초공간이론으로 촉발된 과학혁명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초공간이란 4차원 시공간보다 높은 차원을 통칭하는 용어다. 우리가 실험과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세계는 4차원에 불과하지만 실제는 그 보다 더 많은 차원이 우리의 우주를 구성한다는 이론. 빅뱅 이후 4차원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나머지 차원들은 플랭크 길이 수준으로 수축하여 숨어버렸다. 이 작은 공간을 탐사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현재 지구인이 가진 기술로는 만들 수가 없어 초공간이론은 아직까지 '이론'으로만 남아있다.


물리학자들은 보통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론은 믿지 않는다. 초공간이론은 앞서 말한 이유로 관측이 불가하다. 그럼에도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석학들이 이 가설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이유는 초공간이 열어주는 강력한 통합 능력 때문이다.


차원을 높이면 복잡했던 문제가 단순해진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는 아무리 좌우 전후를 둘러봐도 다 같이 갇힌 차들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헬리콥터를 타고 수직으로 올라 3차원 공간을 조망하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중력과 전자기력도 비슷하다. 기존의 4차원 공간에서는 두 힘을 서술하는 이론의 가정 자체가 완전히 다르지만 차원을 추가해 5차원으로 확장하면 두 힘이 우아하게 통일된다.


20세기 후반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시키는 힘이 왜 하나가 아니라 그토록 다른 4개(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인지 알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이른바 '만물의 이론 theory of everything'은 물리학자들이 오랜 세월 찾아왔던 성배, 즉 창조신의 원리였다. 이들은 극도로 효율적이라 우주의 원리가 너저분하게 분화되는 걸 참지 못한다. 힘이 4개인 걸 못 견디는 사람들이 차원이 10개라는 걸 받아들이는 건 좀 웃기지만.


아무튼 초공간을 도입하면 네 종류의 힘뿐만 아니라 온 우주에 존재하는 소립자들의 특성까지 통일될 가능성이 있다. 한때 물리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끈이론과 초끈이론도 바로 여기에서 탄생한 부산물이다.


그러나 초공간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유는 역시 시간 여행과 평행우주의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초공간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터널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영화 <인테스텔라>에 고문으로 참여한 칼텍의 교수 킵 손은 웜홀을 이용한 타임머신의 가능성을 트위터가 아니라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게재했다. 공상과학의 세계가 현실의 연구대상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우주론 학자들이 여기에 가세해 우리의 우주가 무수히 많은 평행 우주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가능성을 제안했다. 현재는 이 우주 간 상호작용이 불가하지만 언젠가 인간이 초공간을 지배하는 날이 오면 원하는 대로 웜홀을 만들어 이 우주들이 연결될 수 있음이 증명됐다.


우리의 우주는 먼 훗날 무한대로 팽창하여 얼어붙거나(더 이상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는 상태) 다시 수축하여 모든 것을 태워버릴 건데, 그전에 초공간 여행이 가능해지면 인간의 역사는 다른 우주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만화적 상상력에 불과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기하급수를 따르고 우리에게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있다. 일찍이 우주의 원리를 깨우쳤던 위대한 포스트모던 소설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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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뷰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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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아버지와 아들의 합작품이다. 2021년 겨울 존 르 카레로 더 잘 알려진 데이브 존 무어 콘웰은 폐렴으로 사망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약속을 하나 했다. 언제쯤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무조건 약속하라 말했고 아들은 그러겠노라 했다. 당신이 죽고 난 뒤 책상에 미완성 원고가 남아있다면 대신 마무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실버뷰>는 그렇게 탄생했다.


존 르 카레가 살아생전 이 책을 내지 못한 이유는 뭐였을까? 소설이 신통치 않았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 이야기를 살려낼 수 있을까? 사자의 자식이 고양이일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위대한 사자이리란 법은 없다. 아버지가 웬만한 사자가 아니지 않은가!


아들은 초고를 읽고 푹 빠져들었다. 초고 단계의 실수들은 보였다. 하지만 편집을 거치지 않은 원고치고는 깔끔했다. 소설이 전하려는 서사와 정서는 잘 구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책상 서랍에 담아만 둔 걸까? 아버지의 망설임은 어디에 있었을까? 정확히 어느 부분을 고쳐야 아버지가 내딛지 못한 마지막 한 걸음을 완성할 수 있을까?


아들은 <실버뷰>를 다른 존 르 카레 소설이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평가한다. 단편적으로나마 첩보를 '실제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열광해 온 그 명작들은 전부 실제 첩보가 아니었나 보다. 나는 그곳에 항상 진짜 스파이가 있었다고 믿었는데. 가짜가 보기엔 그럴듯해도 저 회색지대의 위대한 진짜들에겐 다른 게 보이나 보다.


<실버뷰>는 느리기로 소문난 존 르 카레 소설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느리다. 40페이지도 채 남지 않았는데 사건은 여전히 안갯속을 기어 다닌다.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가 초조해진다. 짧은 행간에 마구잡이로 구겨 넣는 건 아니겠지? 가짜는 대작가의 작품을 손에 들고도 이처럼 쓸데없는 걱정을 늘어놓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글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뉘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실버뷰>는 완벽한 소설이다. 아들 닉 콘웰은 이 책의 후기 첫 문장에 '어쩌다 보니 왕을 우러러보는 고양이 신세가 된 기분'이라고 썼다. 그렇다면 나는 고양이를 우러러보는 쥐 정도가 될 것이다. 아주 후하게 쳐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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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키보드 - 법의학의 성지, 독일 최고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강력범죄의 세계
미하엘 초코스 지음, 박병화 옮김 / 에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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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범죄는 스펙터클이다. 경지에 이른 미디어는 폭력과 살인을 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눈길만 줘도 범죄자의 성격이 줄줄이 그려지는 전능한 프로파일러와 손만 대도 단서가 수집되는 천재 법의학자의 이미지가 여기서 탄생했다. <CSI>,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며 이 직업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실이 편집된 이야기와 얼마나 다른지는 여기에 매료된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수사는 대개 지루하다. 용의 선상에 오른 주변인을 끈질기게 탐문하고 어떨 때는 피해자의 몸에 새겨진 문신 하나를 들고 온 도시의 문신 가게를 찾아가야 한다.


법의학적 단서는 찾아낸 살인 도구가 피해자에게 사용된 것이 맞다는 걸 증언하거나 찾아야 할 도구가 어떤 형태인지를 알려주는 데 그친다. 현장에 뿌려진 핏방울은 용의자가 누구인지보다는 잡혀온 용의자의 진술에 거짓은 없는지 밝힌다. 실제 수사는 이렇게 모인 수많은 단서들을 돼지 같은 인내심으로 하나씩 맞춰 나가는 10만 피스짜리 직소퍼즐 같다. 척, 보는 순간 번쩍하며 사건의 시종이 정렬하는 천재적 추리 쇼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죽음의 키보드>는 딱 그 괴리를 보여주는 책이다. 내용은 실제 독일에서 벌어진 사망, 살인 사건으로 구성된다. 드라마를 기대해선 안 된다. 케이스 스터디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이런 류의 책들을 주로 글을 쓰기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 자기가 쓰는 글에 살인 사건을 등장시키고 싶다면 작가는 살인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예전엔 취재가 답이었지만 요즘은 이런 책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


<죽음의 키보드>를 통해 알게 된 가장 흥미로운 사실. 법의학의 성지는 CSI의 미국이 아니라 '독일'이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의과 대학에서 직업적 명성을 쌓거나 교수로 고위직에 오르려면 최소 1~2년은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경력을 쌓아야 하지만 법의학은 반대다. 법의학에 관한 한 독일은 여전히 국제적 표준 역할을 하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객원 연구원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무려 16세기! 카를 5세 황제 치하에서 우발적, 고의적 살인 및 상해치사, 유아 살해, 의료 과실 같은 형사 사건에 의료 전문 지식의 도입을 규정하는 것이 '법령'으로 반포된 나라라고 하니, 경험의 양과 질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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