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공간 - 평행우주, 시간왜곡, 10차원 세계로 떠나는 과학 오디세이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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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1990년대에 초공간이론으로 촉발된 과학혁명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초공간이란 4차원 시공간보다 높은 차원을 통칭하는 용어다. 우리가 실험과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세계는 4차원에 불과하지만 실제는 그 보다 더 많은 차원이 우리의 우주를 구성한다는 이론. 빅뱅 이후 4차원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나머지 차원들은 플랭크 길이 수준으로 수축하여 숨어버렸다. 이 작은 공간을 탐사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현재 지구인이 가진 기술로는 만들 수가 없어 초공간이론은 아직까지 '이론'으로만 남아있다.


물리학자들은 보통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론은 믿지 않는다. 초공간이론은 앞서 말한 이유로 관측이 불가하다. 그럼에도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석학들이 이 가설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이유는 초공간이 열어주는 강력한 통합 능력 때문이다.


차원을 높이면 복잡했던 문제가 단순해진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는 아무리 좌우 전후를 둘러봐도 다 같이 갇힌 차들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헬리콥터를 타고 수직으로 올라 3차원 공간을 조망하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중력과 전자기력도 비슷하다. 기존의 4차원 공간에서는 두 힘을 서술하는 이론의 가정 자체가 완전히 다르지만 차원을 추가해 5차원으로 확장하면 두 힘이 우아하게 통일된다.


20세기 후반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시키는 힘이 왜 하나가 아니라 그토록 다른 4개(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인지 알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이른바 '만물의 이론 theory of everything'은 물리학자들이 오랜 세월 찾아왔던 성배, 즉 창조신의 원리였다. 이들은 극도로 효율적이라 우주의 원리가 너저분하게 분화되는 걸 참지 못한다. 힘이 4개인 걸 못 견디는 사람들이 차원이 10개라는 걸 받아들이는 건 좀 웃기지만.


아무튼 초공간을 도입하면 네 종류의 힘뿐만 아니라 온 우주에 존재하는 소립자들의 특성까지 통일될 가능성이 있다. 한때 물리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끈이론과 초끈이론도 바로 여기에서 탄생한 부산물이다.


그러나 초공간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유는 역시 시간 여행과 평행우주의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초공간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터널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영화 <인테스텔라>에 고문으로 참여한 칼텍의 교수 킵 손은 웜홀을 이용한 타임머신의 가능성을 트위터가 아니라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게재했다. 공상과학의 세계가 현실의 연구대상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우주론 학자들이 여기에 가세해 우리의 우주가 무수히 많은 평행 우주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가능성을 제안했다. 현재는 이 우주 간 상호작용이 불가하지만 언젠가 인간이 초공간을 지배하는 날이 오면 원하는 대로 웜홀을 만들어 이 우주들이 연결될 수 있음이 증명됐다.


우리의 우주는 먼 훗날 무한대로 팽창하여 얼어붙거나(더 이상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는 상태) 다시 수축하여 모든 것을 태워버릴 건데, 그전에 초공간 여행이 가능해지면 인간의 역사는 다른 우주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만화적 상상력에 불과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기하급수를 따르고 우리에게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있다. 일찍이 우주의 원리를 깨우쳤던 위대한 포스트모던 소설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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