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전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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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를 너무 믿었나보다. 675페이지 짜리 책인데 볼거리는 많지 않다. 평생 꼭 한 번 써보고 싶었다는 괴물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너무 아끼는 건 이토록 다루기가 힘든가 보다. 사랑이란 것도 적당히 평등한 관계에서 지지고 볶고 엎치락 뒤치락 해야 아름답지 한 사람이 신을 섬기듯 조심 조심 숭배해선 재밌는 사랑이 될 리가 없다.


<괴수전>은 전개가 느리다. 이제나 저제나 노심초사 괴물의 등장을 기다리는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아 이게 그거야?"라고 탄식을 할 정도로 맥 빠지게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이게 서사 기술이 가진 근본적 한계 같기도 한데, 실제로 뭔가를 자세히 묘사하면 할수록 오히려 신비감이 떨어지면서 밋밋한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영화가 정말 부럽다. 몇 페이지에 걸쳐 치밀하게 묘사해야 할 대상을 풀샷과 클로즈업 만으로도 끝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런 미지의 대상을 묘사할 땐 그 모습보다는 행동을 기술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예컨대 괴물이 청와대를 밟아 무너뜨린 뒤 공무원을 하나 씩 하나 씩 집어 씹어 먹었고 꼬리로 바닥을 내리 쳐 지진을 일으켰다고 하면 이 괴물의 크기와 신체 구조 그리고 그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해 나갈 것이다. 신기한 건 그 희끗희끗한 상상이 오히려 더 생생할 수 있다는 사실.


또 하나, <괴수전>은 밋밋하다. 일본 굴지의 미스테리 작가답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캐릭터를 여럿 등장시키길래 치밀하게 얽힌 이야기가 전개되겠구나 싶었는데 글쎄 이게 다 맥거핀이었다. 종장에 이르러 몇몇 반전이 있긴 하나 비밀 캐릭터들이 사실은 별 거 없었음을 무마하기 위한 시도로 느껴져 그닥 충격적이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소설은 베테랑 작가의 클리셰 모음집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괴물을 두고 벌이는 갈등, 종장에 이르러 그것이 처리되는 방식은 어디서 한 번쯤은 본듯한 친숙한 전개임이 분명하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더 많이 읽어봐야 알겠지만, 작품 수로는 일 이 위를 다툴 정도로 많은 수를 발표하는 작가임을 고려할 때, 어쩌면 클리셰들을 완성도 있게 조합해 내는 능력이 그 왕성한 창작욕의 비밀이 아닌가 싶다. 전반적으로 <괴수전>은 보던 사람들에게 익숙한 재미를, 뭔가 색다를 충격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2% 부족할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마지막 장, 사건의 뒷 이야기를 담은 두 페이지가 충격을 던져준다. 나는 그 두 페이지를 읽는 순간 얼어 붙고 말았다. 수 십 번이고 필사해 품에 넣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기막힌 이야기. 674페이지에서 675페이지, 딱 두 페이지에 걸쳐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도시 전설' 류의 클리셰를 똑 닮아 있지만 그 정수라 불러도 아깝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미야베 미유키로부터 이 두 페이지를 훔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전 세계의 <괴수전>에서 이 두페이지를 잘라 아무도 못 보게 하고 싶다.

  

그래서 후세에 이 글을 쓴 사람이 나인줄 알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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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처럼 생각하라 - 상식에만 머무는 세상을 바꾸는 천재 경제학자의 사고 혁명
스티븐 레빗 & 스티븐 더브너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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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허를 찌르는 사례가 폭발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혹은 바보들의 흑역사를 몰아보는 기분이다.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는 <괴짜 경제학>이라는 책으로 일약 스타가 되어 <슈퍼 괴짜경제학>을 내고 <괴짜처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들은 이 책들을 통해 사회적 통념과 고정관념, 편견이 우리의 의사 결정 과정에 얼마나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들에 따르면 그런 아둔한 결정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만 하는게 아니다. 최첨한 의학을 연구하는 의사에서부터 대기업의 마케팅 임원들까지 이른바 슈퍼 전문가들 또한 검증되지 않은 믿음을 사실로 받아들이며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판단 착오를 일으킨다. <괴짜처럼 생각하라>를 읽고 있으면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된다. 흐름을 거스르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지만, 그리고 대부분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지만 이 모든 걸 차치하고라도 충분히 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역사의 물줄기가 그렇게 쉽게 바뀌면 세상에 위대해지지 못할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괴짜처럼 생각하라>는 쉽다. 명쾌하다. 번역이 완벽하다. 그리고 짧다! 모든 장이 실제 사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학 도서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건 그냥 이야기다! 저자들은 인간의 머리에 데이터가 아니라 이야기가 남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가 언제적 사람인지 심지어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조차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도 있는가?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의 문장엔 자신감이 넘친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다양한 사례를 직접 경험하고, 수집하고, 분석했기 때문에 문장 하나 하나가 명쾌하다. 에둘러 말하는 법도 없고 점잖은 척 한 발 물러서 답은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따위의 허망한 결론을 내지도 않는다. 눈이 즐겁고 손이 가볍다. 물론 나는 번역본만을 봤기 때문에 원서의 뉘앙스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르다면 옮긴이 안진환은 번역의 신이다.


나는 원래 이런 류의 책들을 읽지 않는다. 이런 류의 책을 읽는다고 이런 류의 책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뭔 말이냐면, 이런 류의 책은 고급 재료를 환상적으로 요리한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 만든 인스턴트 식품이라는 것이다. 인스턴트만 줄창 먹으면 언젠가 인스턴트 음식의 대가가 될 거라 믿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직 괴짜처럼 생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집밥 백선생 얘기를 다시 해보자. 그가 조미료 투성이의 값싼 음식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조리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재료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지 결코 인스턴트를 맛있게 잘 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이제야 왜 CEO들이 이런 책들을 줄기차게 추천하는 지 알 것 같다. 그들은 차분히 앉아 책을 읽을 시간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책과 친한 사람들도 아니다. 읽는 데 힘도 들고 읽고 나서 숙고할 시간도 없으니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시간이 없으면 인스턴트 도시락을 사 먹듯이! <괴짜 경제학>을 읽고 나면 어디 가서 얘기할 꺼리가 생긴다. 아는 티와 읽은 티를 낼 수 있다. 즉각 써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신입 사원의 높은 퇴사율 때문에 고통을 겪는 인사 팀장이 있다고 치자. 인사팀의 대리가 미팅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미국 최대의 온라인 신발 유통 회사 자포스는 신입 사원을 교육하고 나면 퇴사를 권유합니다. 퇴사를 결심하는 사람에겐 교육 기간에 대한 봉급과 보너스로 2천 달러까지 지급하죠!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이유가 정말 궁금하지 않는가? 지금 당장 당신 회사의 인사, 마케팅, 상품 기획 부서를 가보자. 그들의 책상 위엔 틀림 없이 이런 류의 책들이 세 권 이상은 있을 것이다(나는 웬지 제목까지 알 것 같다. 하지만 프라이버시를 위해 언급하진 않겠다. 말콤 글래드... 세스...). 당신이 의사 결정권자를 설득해야 할 일이 많다면, 그리고 거기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이런 책들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물고기를 주니까! 하지만 이런 사례를 직접 만들어 낸 사람 혹은 현상에서 이런 사례를 스스로 발굴한 사람, 쉽게 말해 물고기를 직접 잡는 낚시꾼이 되고 싶다면 당신은 더 깊은 곳, 그러니까 더 어렵고, 짜증나고, 힘든 분야로 내려가야 한다. 평생 남의 물고기나 사 먹으며 낚시꾼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 생각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우리도 저자가 되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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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사회 이반 일리치 전집
이반 일리치 외 지음, 신수열 옮김 / 사월의책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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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근대 사회의 출현 이후 그들은 많은 분야에 전문가라는 깃발을 걸고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도와왔다. 그들은 일상에 바쁜 우리가 좀처럼 관심을 두기 어려운, 그러나 아주 중요한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 들어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존재였고 이 과정에서 방대한 지식을 축적해 우리 사회가 진보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너무 거대한 성을 지었고 견고한 담합을 이뤄냈다. 그들은 서로의 실수를 눈감아줬고 막대한 지식 격차를 이용해 우리를 눈 먼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이 여전히 이타심을 가지고 보통 사람들을 대하는지 의심해 봐야 할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전문가 사회는 필연적으로 고착화 된다. 전문가는 자신에 대한 일반인의 의존이 항구적이며 맹목적이길 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평생 무지한 존재로 남길 원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방법은 그들의 세계를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험 전문가는 맞춤이라는 명목으로 도저히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갈기 갈기 상품을 쪼개며 의사와 법관들은 모국어로 쓰여도 해석할 수 없는 전문 용어로 자신의 보고서를 채운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우리가 백기 투항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밥 그릇을 넘보지 말라고 협박하는 건 하수의 방식이다. 절대 넘볼 수 없게 만드는 것. 침범의 의지를 '스스로' 꺽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전문가들의 수성 전략이다.


전문가 사회의 거래는 오직 상품과 화폐로만 구성된다. 이 말은 우리가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반드시 돈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뭐 이리 당연한 말을 하냐고? 의사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애를 낳을 땐 산파로 소문난 동네 아줌마의 도움을 받았고 감기에 걸리면 들과 산에서 구한 약초로 병을 다스렸다. 그런데 요즘은? 의사가 진찰을 하고 주사를 놓고 처방전을 써준다. 과거엔 상호 부조나(애 잘 받는 아줌마) 자연의 혜택(약초)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진료비와 주사비와 약 값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돈 없이는 생존권도 없다. 현대 서비스 사회에서 빈부의 차는 사치품을 더 살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타나는 게 아니다. 좋은 의료를 받을 수 있느냐,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느냐, 좋은 주거 환경을 가질 수 있느냐, 그러니까 삶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누릴 수 있느냐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흐름을 되돌릴 만한 힘은 없다. 한 때는 우리도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맹목적으로 전문가에게 위임한 결과 이제는 완전히 불구가 됐고 이로 인해 더더욱 전문가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난 전문가들은 이제 필요 자체를 정의함으로써 권력을 영속화 한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언제부터 반려견 행동 전문가와 청소, 정리, 이사 전문가와 헬스 케어 전문가, 입시 상담 전문가, 스트레스 관리 전문가, 라떼 아트 전문가, 네일 아트 전문가, 레저와 여행 추천 전문가를 필요로 했는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우리는 너무 바보가 되어 정리도 청소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 심지어 내가 뭘 먹어야 하는지, 아니 뭘 먹고 싶은지 어디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지 조차 모르는 인간이 된 것이다. 전문가 사회는 우리 대신 우리의 필요를 정의하며 나아가 그 필요를 교묘하게 욕구로 바꿔 놓음으로써 우리가 마치 처음부터 그것을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순전한 욕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오늘날 잘 나가는 상품들이 소비자의 필요(needs)에 호소하지만 더 위대한 사치품들은 우리의 욕망(wants)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나 전문가 사회의 가장 끔찍한 점은 그것이 가진 정치적 함의다. "전문 서비스의 일방적 공급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반민주적인 지도자를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준비시키는 일이 훨씬 용이하게 마련이다."(p.113).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문가들의 첫 번째 임무는 복잡한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정의해 그것으로부터 일반인들의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사안을 직접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은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줄 전문가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 함으로써 자발적인 노예가 된다. 그리고 노예가 된 자신을 이끌어줄 강력한 독재자를 원하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정보를 공유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걸 알게 된 21세기 선진 시민에게 이 같은 상황은 얼핏 초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전 세계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정치 현실이다. 이 글을 읽는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2007년 12월 19일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경제 전문가를 대통령으로 뽑은 적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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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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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맨이 왜 벨을 두 번 울리는지 알기 위해선 1927년 3월 19일의 뉴욕 롱아일랜드로 가야 한다. 그곳에 잡지 편집자 앨버스 스나이더와 일명 호랑이 여자 루스 스나이더가 있었다. 둘은 부부였다. 대개의 부부는 남자 혹은 여자가 바람을 피우거나 아니면 둘 다 바람을 피웠는데 스나이더 부부의 경우는 아내가 바람을 핀 케이스였다. 그녀의 정부는 코르셋 외판원 저드 그레이. 법정의 증언에 따르면 호랑이 여자는 그레이에게 남편이 성관계 후 자신을 때린다고 말했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그레이가 "그 짐슴을 죽이고 싶어."라고 대답했으며 호랑이 여자는 "정말 진심이야?"라고 물었다고 한다. 진심이고 말고. 그레이는 둔기를 휘둘러 잡지 편집자를 쓰러뜨린 뒤 철사로 목을 졸라 죽였다. 핏줄이 터져 시뻘게진 눈 그것도 튀어나올 정도로 커진 두 눈을 정면으로 봤어야 했을 테지만 그레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사랑의 힘은 이토록 위대하다.


호랑이 여자는 남편 몰래 5만 달러짜리 상해 보험을 들었다. 남편의 사망 시 두 배로 보상 받는 '배액 보상' 조항이 포함된 것이었다. 그녀는 우편배달부에게 이 보험 증서를 자신에게 직접 배달하라고 지시했으며 초인종을 두 번 울리는 것이 신호였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이후 이 말은 성적 불성실을 뜻하는 관용어가 된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에 대해선 마땅히 할 얘기가 없다. 떠돌이 체임버스가 우연히 그리스인 파파다키스의 식당에서(주유소 및 정비소 겸업) 일을 하게 되는데 언제나 그렇듯 둘 사이에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파파다키스의 아내였고 젊은 시절 헐리웃에서 굴러 먹은 적도 있던 꽤 근사한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왜 이 개기름 번지르르한 그리스인과 엮이게 됐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였고 체임버스는 이 여자의 인생을 녹슨 철로에서 걷어차 거칠지만 짜릿한 황야로 굴러가게 할 남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사실을 깨닫는다. 두 사람이 알몸으로 침대 위에 오른 건 소설이 시작한지 채 10페이지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쨌든 두 사람은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파파다키스와 공유해야 했고 보통의 인간은 사랑을 나눠 쓰는데 인색한 법이었다. 파파다키스는 자기가 누구와 사랑을 공유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증오는 체임버스의 마음 속에서만 커갔다. 그는 그녀와 함께 남자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두 사람은 생각을 행동에 옮긴다. 그리고 실패한다.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냐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게 할 뿐만 아니라 실패로 끝난 그 살인을 다시 한 번 시도하게 만들 정도다. 두 번째 살인은 멋지게 성공한다. 그러니 알아두시길, 사랑의 힘으론 못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두 사람의 행복이 오래 오래 영원히 갔으면 좋았으리마는 팔리는 이야기의 고질적인 습성으론 도저히 참아 넘길만한 엔딩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이해해 주시길. 파파다키스에겐 두 사람도 모르는 보험이 들어 있었다. 보험 회사의 조사원과 검찰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두 남녀는 정말로 서로를 사랑했을까? 어쩌면 사랑은 진정한 사랑과 단순한 욕망으로 구분되는지도 모른다. 그 둘은 양 손바닥 만큼이나 닮아 있어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확인하는 법은 끝까지 달려가 보는 거다. 진정한 사랑은 길이 험할 수록 단단해지지만 욕망은 엉성한 매듭으로 묶은 풍선처럼 서서히 바람이 빠져나가 쭈글쭈글 쪼그라든다. 체임버스와 그녀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 끝까지 읽어라. 마지막 장에 이르러 당신은 당신의 마음 속 초인종을 두 번 울리는 포스트맨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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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문장들 - 뜯어 쓰는 아트북
허윤선 지음 / 루비박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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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획 의도가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는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과연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인가 같은 의문을 들게 하는 책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림이 난무하거나 지면이 헐렁거릴 정도로 여백이 창궐하는 책들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림과 문장들>은 나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평소라면 결코 사지 않았을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은 건 나에게 아무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그림을 볼 때면 책이 떠올랐다고 말한다. 그래서 100점의 그림에 100가지 문장들을 모았다. 어떤 것들은 그림이 좋았고 어떤 것들은 문장이 좋았다. 그림이 좋았던 것들과 문장이 좋았던 것들을 여기에 옮긴다.



그림이 좋았던 것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작은 도둑>, 1900, 캔버스에 유채, 124x70cm





구스타브 카유보트, <창가에 서 있는 청년>, 1875, 캔버스에 유채, 117x82cm





빌헬름 함메르쇠이, <젊은 여자의 뒷 모습이 있는 실내>, 1904, 캔버스에 유채, 60.5x50.5cm



문장이 좋았던 것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는 꿈꾼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



"미토르니히 조르겐." 유태어를 모를까봐 말해주겠는데, 

그건 세상을 원망할 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세상을 원망할 건 없다. 

우리는 사랑해야 하고, 또 사랑하고 있으니까.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행복한 사람은 의미를 따지지 않으며, 그냥 살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삶에 대해 꼬치꼬치 따지지 않고 인생을 즐긴다. 

- 한스 크루파, <영원과 하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으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오르텅스 블루, <사막>



나는 기적 같은 역전을 꿈꾸었다. 복권에 당첨되어 수백만 달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따위의 

일확천금을 꿈꾸며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 입, 다음에는 두 입, 다음에는 세 입을 먹여 살리려고 애쓰면서 몇 년을 지낸 뒤 

결국 내기에 지고 말았다.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시간을 얻기에는 일을 너무 많이 했고, 

돈을 벌기에는 일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 폴 오스터, <빵 굽는 타자기>



<그림과 문장들>을 읽고 나면 두 가지에 놀란다. 첫 째는 저자의 독서량이다. 100점의 그림에 100가지 문장을 붙이려면 적어도 1,000점의 그림에 1,000가지 문장을 봤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그림을 보면 '문장'을 떠올릴만큼 단단히 책을 읽는 사람이다. 그림을 보고 단순히 '책'을 떠올리는 게 아니란 말이다. 둘째는 나의 멍청함이다. 어디서 이런 문장이 나왔을까 싶어 제목을 더듬다 그게 이미 내가 읽었던 책이라는 걸 발견하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민망함이 얼굴을 찌른다. 삶은 망각과의 싸움이다.


문장들 중엔 책을 사들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충고한다. 여기 모인 문장들이 진주라면 한 권의 책은 진흙탕이다. 그 한 알의 진주를 찾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진흙탕을 뒤져야 하는지, 보석을 보는 순간엔 결코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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