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아이브 -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
리앤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으로 하여금 불가능에 도전하도록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사람을 리더라고 부르고 그 일을 실제로 해내는 사람을 실무자라고 부른다. 리더와 실무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어느 것에 우위를 둘 수 없이 똑같이 중요한 요소지만 우리는 대체로 성공의 모든 영광을 리더에게 돌리곤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리더는 신격화되고 심지어 실무자의 능력까지 훔쳐 갖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이 강력한 리더에게 마음을 뺏기는 이유는 에리히 프롬의 명저(<사랑의 기술> 따위가 아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유가 억압당하는 걸 엄청난 인권유린으로 간주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끔찍이도 부담스러워 한다. 무제한의 자유는 인간을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패닉 상태로 빠뜨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자유를 반납하고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걸어 강제로 끌고 가주는 독재자를 소망한다.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그러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 자유는 너무 과대평가 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수 많은 독재자들이 '국부'로 칭송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도 한 사람 갖고 있잖아.


많은 사람들이 애플을 그저 변태 오덕들이 사랑하는 장난감 제조 회사로 여기는데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다. 애플은 오늘날 우리가 너무도 당연히 소유하는 Personal Computer라는 개념을 우주에서 최초로 만든 기업이다. 그러나 더 위대한 건 그들이 컨셉이 아니라 실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 많은 난제를 최고의 기술력으로 극복해낸 기업. 그저 디자인으로 눈을 홀리는 Fake 컴퍼니가 아니란 말이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이 H/W와 S/W 양쪽을 꽉 쥐고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구글과 삼성이 합병을 해도 겨우 상대할 수 있을까 말까한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조' 회사다.


이 모든 걸 스티브 잡스가 이뤄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슬픈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리드 컬리지를 다녔을 때 타입페이스(폰트) 관련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애플 제품이 그토록 강력한 폰트 랜더링 기술을 갖추게 됐다고 회자되지만 사실 그에겐 아주 조그만 안목이 있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완벽히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걸 생각하는 것과 그걸 실제로 해내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심연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잡스 보다는 워즈니악이나 조너선 아이브를 더 좋아한다. 특히 조니 아이브, 기사 작위를 받은 이 영국 남자를 말이다.


쫓겨났던 잡스가 다시 애플로 돌아온 뒤 굳건히 자리를 잡게 된 결정적 성과는 젤리빈 아이맥의 메가 히트 덕분이었다(LG에서 생산했다!). 색색의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일체형 PC 아이맥. 이후 비슷한 디자인의 아이북으로 쐐기를 박은 애플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세상을 지배한다. 애플 제품의 특징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 디자인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 하나. 매출 200조가 넘는 삼성 전자엔 그만한 제품 디자이너가 없을까? 직원 수가 10만 명에 가까운 메가 컴퍼니에 말이다. 정답은 "있다" 이다. 문제는 그런 디자인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할 만한 디자이너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디자인이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조니 아이브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최적의 디자인을 고안하고, 스케치하고, 목업을 만들고, 시제품을 생산하고, 양산이 가능한 기술을 발굴해 그 제품을 우리의 손에 쥐어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메모리나 CPU나 레티나 디스플레이 같은 것만 테크놀로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디자인, 디자인이야 말로 진정한 하이퍼 테크놀로지의 결과물이다.


애플이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제품을 만들었는지 알고 싶다면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잡스 관련 서적보다는 이 책 <조너선 아이브>를 읽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비전을 현실로 구현해낸 실무자의 이야기인 만큼 이 책엔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실제 이야기가 더 많다. 애플을 그저 상상의 동화속 회사로 알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