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동양고전 슬기바다 2
맹자 지음, 박경환 옮김 / 홍익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춘추와 전국을 싸잡아 춘추전국 시대로 일컫지만 두 시대 사이에는 꽤 큰 시간 차가 있다. 단순하게 말해 춘추는 공자의 시대였고 전국은 맹자의 시대였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도 아닌 그 손자의 제자에게서 유학을 배웠다. 맹자가 태어난 때는 공자가 죽은 지 이미 100년이 가까운 시대였다.


전국은 춘추보다 혼란과 분열이 심화되었는데, 예(禮) 운운하며 격식을 차리던 제후들이 비로소 가면을 벗고 이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전국은 오로지 힘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당연하게도 전국을 평정한 남자는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교활하기로 소문난 '영정'이었다. 최초의 황제. 진시황 말이다.


공자나 맹자나 지금에 와서야 성인으로 떠받들여지지만 당시에는 내뱉는 족족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상주의자 떠돌이들이었다. 맹자의 말대로 인간이 본래 선하며 따라서 누구나 요, 순, 우, 탕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는거라면 춘추와 전국은 왜 그리 피와 살육을 즐겼을까? 군마를 이끌고 달려오는 적국의 왕에게 인과 예를 설파하여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단 말인가? 힘의 시대에 인의는 무력하다. 그리하여 힘을 강조한 시황이 비로소 길고 긴 춘추와 전국을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것이다.


그런데 웃긴 건 천하를 통일하게 만든 그 힘이 정작 통일된 천하를 무너뜨리는 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 진(秦)은 20년도 가지 못해 멸망하고 말았다. 분열된 천하를 두고 항우와 유방이 싸웠는데, 힘의 항우가 덕의 유방에게 패해 비로소 유학의 전성 시대를 여는 한(漢) 나라가 건국된다.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인 한 나라는 이후 400년 동안 유지된다.


유학은 확실히 전란의 시대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나 평화의 시대, 즉 통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선 탁월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인간은 우선 생존권이 확실하게 보장되야 인의라는 가면을 손 쉽게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와 맹자는 이 점을 몰랐다. 두 사람에겐 큰 뜻은 있었지만 그 뜻을 실현할 전략이 부재했다. 상황이 받쳐주질 않는데 꼬장 꼬장 자기 주장만 되풀이 해서야 어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두 사람은 평생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다 "아아, 세상이 정녕 나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구나" 하며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당시의 사람들이 정말 공맹의 사상을 이해 못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충분히 유학의 사상을 적용하여 힘과 덕의 균형을 맞추는 정치를 벌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원인을 맹자 본인에게서 찾는다.


솔직히 맹자는 같이 일하기 싫은 동료 유형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꼽을 만큼 짜증나는 인간이었다. 우선 잘난척이 심하다. <맹자> 공손추 하 편에는 그의 제자 충우가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p.137)며 스승의 언행 불일치를 힐난하자 "만일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려 한다면 오늘날의 세상에서 나 말고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유쾌해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요즘 같으면 대단한 swag으로 치부하고 박수를 칠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군자의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맹자의 잘난척은 사람을 너무 가르치려 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무지한 사람을 경멸하고 모욕하는 걸 즐기는 전형적 엘리트였다. 사사건건 왕을 모욕하고 왕을 힐난하고 왕의 권위를 짓누르면 과연 누가 가르침을 받아들이겠는가? 이루 상편에서 맹자는 "사람들의 문제는 남의 스승 노릇을 하기 좋아하는 데 있다."(p.211) 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이 말의 반만 지켰어도 전국 시대에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게 완전히 꿈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최악은 독선이었다. 맹자는 요, 순, 우, 탕이라는 전범을 세워 놓고 이들과 같으면 선, 다르면 악이라 몰아 세웠는데 아무리 성인이라 해도 행동에 모순이 있고 잘못이 있기 마련이다. 맹자는 온갖 변명을 늘어 놓아 이 같은 모순을 옹호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반드시 논쟁으로 굴복시키려 했다. 한마디로 맹자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유교 광신도였던 것이다.


정녕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다면 사람을 마음으로 감화시켜야 한다. 맹자는 그냥 뭘 해도 밉상인 사람이었다.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마음이 동하질 않는다. 맹자가 성인의 뜻을 헤아리는 대신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의 왕도정치는 충분히 전란을 평정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써 놓고 보니, 내 얘기 같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