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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2017 리커버 한정판 나무 에디션)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허지웅은 원래 외모만큼 글이 훌륭한 사람이다. <마녀 사냥> 전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허지웅의 글을 읽고 그의 올바른 생각에 감탄했으며 그 중 일부는 나도 허지웅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그리 자주 업데이트 되지는 않던 이글루스 ozyzzz 블로그를 찾았을 것이다. 수줍게 밝히자면, 나도 그런 무리 중 하나였다.
나는 나만 알던 스타가 대중의 관심을 받는 순간 급격히 흥미를 잃고 멀리하는 습성을 가졌는데, 허지웅 만큼은 예외였다. 나이가 들어 좀 유해진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저렇게 올바른 생각과 글과 말을 가진 사람이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뜨고 난 뒤 이 때다 싶어 내놓는 책들이 풍기는 장사꾼의 냄새도, 그래서 밉지가 않았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그 동안 잡지, 블로그, 기타 매체에 투고해 왔던 허지웅의 글모음이다. 주제는 크게 정치/사회, 영화, 그리고 삶. 띄엄 띄엄 쓴 글을 모은 데다가 주제 또한 일관성이 없어 어느 정도의 산만함은 감안하고 봐야겠다 싶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생각보다 심했다. 우선 정치/사회는 워낙 당시의 생각이 뜨겁게 담긴 글이다 보니 이제는 달라진 온도차 때문에 지루하고 민망한 경우가 많았다. 영화는 좀 괜찮겠지 싶었지만 천만에!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는 또 하나의 암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최신작이 없다. 영화를 그저 심심풀이 땅콩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겐 침을 튀겨가며 해주는 진지한 옛날 영화 얘기만큼 황망한 게 없다. <마녀 사냥>의 허지웅에게 끌린 독자 중 과연 몇이나 록키 발보아의 애절한 끈기와 삶에 쩔은 존 맥클레인의 표정에 공감하겠는가? 허지웅은 그저 뇌가 섹시한 반항아가 아니다.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이너한 감성을 지닌 매니아다. 그의 독특한 개성과 감수성은 당신이 기대했던 허지웅의 모습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해 이 책은 재미가 없다.
그런데 왜 끝까지 읽었을까? 진솔한 삶의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의 불화, 청년기의 상처, 고시원에서의 생활, 가난과의 싸움. 이 생경한 기록과 만나는 순간 우리는 허지웅의 딱딱해지다 못해 다시 낡고 닮아져 말랑말랑해진, 이제는 피부와 하나가 된 담담한 상처를 본다.
상처를 공유하는 건 본인에게는 치유를 듣는 이에게는 공감을 선물한다. 우리는 옷을 들추고 서로의 상처를 보이며 친구가 된다.
허지웅 본인이 더 잘 알겠지만 소통을 위해 쓴 글은 때때로, 아니 아주 자주 글쓴이를 오해와 편견의 광야로 추방하곤 한다. 부디 그 외로움과 갈증과 피로를 이겨내고 끝내 또 하나의 책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나길 빌며, 이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