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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B급 좌파 김규항은 오늘날 좌와 우를 가르는 기준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느냐 찬성하느냐에 있다고 했다.
신자유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그 이름만 듣고선 마치 숭고한 인권 운동을 연상시키는 '신자유주의'는 그러나 지난 30년 간 세계 경제를 극심한 빈부격차와 빈곤으로 빠뜨린 무시무시한 경제 역병의 이름이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시장은 언제나 효율적이고 공정하니 무능한 정부 따위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규 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애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이 신자유주의의 클래식 버전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왜 시장을 믿는걸까? 그건 개별 경제 활동에 대한 판단은 그것과 관련된 이해 관계자들이 가장 잘 내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경험도 정보도 부족한 대한민국 정부가 어떻게 삼성전자의 미래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에 반박할 여지를 찾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1997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엔 대우도 현대도 엘지도 삼성도 휴대폰을 만들었다. 당시엔 대우도 현대도 엘지도 삼성도 건설을 했다. 당시엔 대우도 현대도 삼성도 기아도 자동차를 만들었다. 당시 대기업들은 돈이 되는 곳이라면 우후죽순 손을 뻗쳤고 그걸 가능하게 한 건 높은 부채 비율과 계열사간 순환 출자였다. 가장 유망한 직종의 성장을 보면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건 합리적 경영인이 할 짓이 아니다. 그들은 당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으로 새로운 시장에 진출했다. 기업은 커질대로 커졌지만 그 속을 채운 건 고름이었다. 1997년 그 고름의 쓰나미에 휩쓸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가. 신자유주의 맹신론자들은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가 하면 인간의 욕망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혹자는 1997년의 외환 위기가 일시적 착란에 빠진 기업인들에게 내려진 시장의 철퇴였으며 결국 이 시련을 통해 우리가 글로벌 초일류 기업을 얻게 되지 않았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1997년 이후 극도로 불안해진 고용 환경은 임금 노동자들의 권리를 쓰레기통에 쳐박았고 그들을 무한 경쟁의 칼날로 갈아버렸다. 시장의 은혜는 극소수의 부자들에게만 내려졌을 뿐이다.
설령 시장이 개인의 합리적 판단을 이끌어 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모두의 장기적 이익으로 귀결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예를들어 당신이 현대 자동차의 주요 주주라고 해보자. 당신은 왜 파업도 잦고 힘센 노조를 가진 울산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지 않는가? 실제로 유명한 미국 제조 회사 중 대다수는 자국 내에 생산 기반을 갖추고 있지 않다. 임금도 낮고 통제도 쉬운 개도국으로 생산 시설을 옮기면 더 큰 이익을 낼 것이고 이는 높은 배당과 주식의 시세 차익으로 돌아올텐데 말이다.
이번엔 당신이 민영화된 전기 회사의 CEO라고 생각해보자(공기업 민영화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숙원이다). 당신이 이윤율이 낮은 도서지역의 전기 공급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대신에 당신은 지점을 폐쇄해 인력을 감축하고 그 부지를 팔아 막대한 부동산 이익을 거두는 데 집중할 것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이는 전체적인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지겠지만 어차피 독점 기업 아닌가? 사람들은 싫어도 당신 회사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한 회사의 CEO로서 당신은 매우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압력으로 자본 시장이 개방된 현대 사회에선 이같은 횡포가(합리적 판단)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은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든다.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자본은 이익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거대 자본은 개도국(한국도 포함된다) 알짜 기업의 최대 주주가 되어 회사와 임직원, 나아가 국민의 피를 빨아 먹은 뒤 그들이 아사 직전에 이르렀을 때 훌쩍 다른 나라로 옮겨갈 수 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경제 대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조차 론스타의 외환은행 먹튀, 상하이 자동차의 쌍용차 먹튀, 소버린의 SK 경영권 유린에 눈 뜬 채로 당할 수 밖에 없지 않았는가.
개별 이해 집단은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없는 대의나 윤리적 판단에 무심할 수 밖에 없다. 세상에 어떤 기업의 주주들이 자신의 월급 봉투가 얇아질 걸 알면서도 불량품에 대한 대규모 리콜을 단행할 수 있단 말인가? 과거 포드 자동차는 제품 결함으로 인한 연료 탱크 폭발로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보험금 지급이 리콜에 드는 비용보다 싸다는 이유로 리콜을 거부한 적이 있다. 심지어 그 위대한 애플조차 '왜 환경 친화적인 기업을 만드느라 쓸데 없이 비용을 쓰냐'며 주식을 팔아버리겠다는 주주들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의 수명은 국가에 비해 짧다. 그리고 기업의 수명은 인간의 수명 보다도 짧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더 큰 이득을 취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고 기업의 영속성 보다(오너 기업은 예외) 당장의 월급 봉투를 부풀려 줄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는 것이다.
오로지 국가만이 이것을 초월할 수 있다. 국가는 장기적 발전이나 공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금 당장의 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 국가는 고용 안정과 국민의 행복한 삶이라는 대의를 위해 생산 시설을 외국으로 옮기려는 기업,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 단기적 이익을 노리고 들어오는 투기 자본의 유입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작은 정부는 이 같은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시장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무서운 건 아주 타당한 설득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주장에 대해 선뜻 반박할 논리를 찾기 힘들다. 실제로 신자유주의는 수 많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정교한 이론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의 허상을 낱낱이 밝혀주는 이 책은 무척 소중하다.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에 비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훨씬 쉽고 친절하다. 이 책은 전문 경제학 분야가 으레 가질 법한 어려운 경제 이론과 복잡한 수학 공식을 포함하지 않는다. 장하준 교수는 언제나 역사를 통해 경제 이론을 검증한다. 역사는 언제나 경제보다 쉽고 친절하다.
공항과 철도를 팔아 먹으려 안달이 난 국가의 국민이라면, 복지 정책을 게으른 무능력자들의 파렴치한 요구로 받아들이는 국가의 국민이라면, 이 책을 '나쁜 사마리아인'과의 전투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장하준 교수 처럼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학자가 한국인이라는 건, 게다가 그가 약자의 편에 서 있다는 건 대한민국의 몇 안되는 희망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