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겠냐만은 그렇다고 너무 당연시 여기며 살아가기엔 시큼시큼한 썩은 내가 나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다. 그런데 생각이 없다는게 도대체 뭐야? 거기엔 두 가지 상태가 존재한다. 

첫째, 무념(無念)


하지만 이런 건 오히려 장려해야 할 상태 아닐까? 무념이란 깊은 명상이나 오랜 시간 도를 구해온 사람이나 얻을 수 있는 극강의 정신적 체험이니까, 오히려 이런 경지에 오른 사람을 칭찬해 줘야지. 


둘째, 산만(散漫)


생각이 없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생각이 너무 많아서일 수도 있다. 어떤 생각도 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휙휙 지나가 버리는 상태. 문제는 바로 이거다. 쏟아지는 정보에 흠뻑 젖어 더 이상 사색도, 깊은 사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 우리는 그저 화려하게 빛나는 네온사인 속에서 살아가는 거야. 불이 꺼지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산만함'하면 떠오르는 철학자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언가 발터 벤야민이다. 그가 태어난 시절은 신문이 눈을 뜬지 이미 반 세기가 지났을 때였고 한창 젊은 시절이 되자 영화와 라디오가 출격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이른바 매스미디어의 시대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에 속수무책이었다. 그것들은 벌처럼 날아와 바람처럼 사라졌다. 벤야민은 기술 진보의 거인이 한 발을 내딛고 나면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그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수 많은 영상과 텍스트에 적응하는 방법은 '산만함'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현대인의 지각 특성은 산만함이 될 것이다'


벤야민은 예언자가 됐다.


재밌는건 과학의 속도가 철학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말 까지만 해도 인간의 뇌는 고착화 이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머제니치를 비롯해 수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한 결과 뇌는 가소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성인의 뇌는 단순히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잘 변한다. 또는 머제니치가 말했듯이 대대적으로 변한다.'(p. 50)


흔히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하지 않나. 여기에 하나 덧 붙이자면, 세상은 결국 개별 인생이 맺는 상호작용의 결과이므로 생각이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이것은 기술의 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어째서 그토록 광범위한지, 왜 기술에의해 세계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힌트가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기술 그 자체 뿐만이 아니라 기술에 의해 변화된 사고다. 기술은 사고를 변화시키고 변화된 사고가 또 다시 기술의 진보를 촉진하는 순환 구조. 상전벽해, 환골탈태는 두 변화의 상호작용을 통해 극대화 된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가 왔다. 하이퍼 텍스트는 현대인의 산만함에서 힌트를 얻은 코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우리의 지각 특성을 그대로 닮아있다. 인터넷에서 우리는 정보와 정보 사이를 널뛰기 하며 빠르게 이동한다. 중요 기사를 읽는 중에도 우측의 실시간 검색 순위에 눈이 가고 다 읽기도 전에 관련 기사로 넘어가며 수 없이 깜빡대며 유인하는 배너 광고를 클릭하고 만다. 이제 하이퍼 텍스트는 단순히 텍스트만의 연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음악, 비디오같은 멀티 미디어를 직접 품거나 링크를 제공하고 링크로 이동한 순간 수 없이 많은 관련 미디어들이 물샐틈 없는 포위를 마친다.


인간이 정보를 지식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알게 되면 이 산만함이 지식 형성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 지 알 수 있다. 뇌의 기억 구조는 크게 작업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뉜다. 작업 기억은 실시간으로 입수되는 정보를 잠시 저장해 두는 역할을 하는데 이 정보는 긴 사색을 통해 점차 장기 기억으로 옮겨진다. 이 과정에서 우리 뇌는 새 정보를 기존에 갖고 있던 정보들과 통합하면서 이른바 '스키마'라고 부르는 거대한 배경 지식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작업 기억의 용량은 매우 작다. 정보가 한 방울 한 방울 똑똑 떨어질 땐 그것을 음미해 장기 기억으로 옮길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만 콸콸콸 쏟아지는 정보 앞에선 아주 짧은 시간만이 주어질 뿐이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정보를 보고 살면서도 결코 똑똑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현대의 예능 프로는 우리의 산만함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려주는 좋은 지표가 된다. 요즘 예능은 수 십대의 카메라가 출연자를 끊임없이 쫓아다닌다. 이렇게 생산된 막대한 컷들은 전광석화처럼 뿌려진다. 후다다닥 지나는 컷들 위로 쉴새없이 자막이 흐르고 효과음과 애니메이션이 추가된다. 이 산만한 시청자를 잡아 두기 위해선 그들의 작업 기억에 들어있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갈아줘야 한다. 


벤야민은 우리가 산만함을 배움으로써 정보의 홍수에 적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여기서 적응이라는 말은 더 나은 시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내포한다. 현대인이 산만함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그 적응이 희망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더 천천히 읽고 더 깊이 생각하던 그 시절로 말이다.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생각은 행동을 지배한다.


어쩌면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산만함은 세계를 지배했다. 그렇다면 산만함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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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oddony 2014-12-2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네요. 모든 연결을 끊고 저만의 동굴에 틀어박힐 시간...

한깨짱 2014-12-30 13:37   좋아요 0 | URL
면벽수련이 필수 교육 과정에 포함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