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 & 하이에크 :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지식인마을 27
박종현 지음 / 김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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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평생 그 답을 얻지 못할 의문이 하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자신을 더 가난하게 만들려는 정치인들에게 표를 주는걸까?


그것은 뿌리 깊은 지역주의 때문일까? 아니면 항간에서 말하듯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 세대의 복수인걸까? 가장 쉬운 대답은 대중의 무지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인간에겐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싶은 변태적 마음이 본성적으로 내재되어 있어, 가장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면 - 5년 동안 안정적으로 고통을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 그 본성이 어김없이 발현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이유야 어찌됐든 세계는 지금 신자유주의의 쓰나미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에게도 분명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대단한 벌이가 아니더라도 자식을 셋이나 낳아 기를 수 있었고, 열심히만 하면 집이랑 자동차를 가질 수 있던 시절말이다. 무슨 선사시대 얘길 하는게 아니다. 내가 어릴때만 해도 누구나 그런 꿈을 꿨다. 그런데 그런 시절에 자란 내가 이제 성인이되어 가정을 꾸리려 하니, 내 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어버린 걸까?







존 메이너드 케인즈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이라 불리는 그 날 뉴욕 증시는 폭락을 시작한다. 대공황의 시작. 기업이 파산의 파도를 치자 기업에게 돈을 빌려줬던 금융이 무너지고 이렇게 모든 산업이 무너지자 실업률이 급증한다. 실업률이 급증하니 소비자는 물건을 살 돈이 없고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않으니 기업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 이것이 바로 불황의 악순환이다. 그리고 이 악순환은 불황이 가진 근본적 모순으로 인해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


사람들은 불황에 직면하면 본능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맨다. 그런데 정부도, 기업도, 개인도 전부 지갑을 닫아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돈은 돌아야 맛이고 돌아야 가치를 갖는 법인데 이렇게 되면 다 같이 죽을 수 밖에 없다. 불황은 각 경제 주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절약) 사회 전체적으로는 최악(불황) 되버리는 개똥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파산을 눈 앞둔 개인이나 기업에게 지출을 하지 않는다고 그 누가 탓할 수 있단 말인가? 개인은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고 그만큼 불안에 취약하다. 그러니 이럴 땐 모든것을 책임질 경제 주체, 국민의 친구, 국민의 울타리,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가 대규모 국책 사업을(댐, 도로, 항만 등) 벌여 고용을 창출하면 돈이 생긴 국민이 물건을 산다. 내수 경기가 꿈틀꿈틀 살아나면 기업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고용을 재창출하고 재창출된 고용이 내수를 춤추게 한다. 이때쯤 대규모 국책 사업들이 완성되면서 국민 경제에 불을 붙이고 이제 불황은 옛말, 모든 경제 주체가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 사회적 자산이 늘어났으니 세수 또한 늘어난다. 정부는 그 동안 졌던 빚을 세금으로 갚고 재정 안정을 이루고 국민과 국가는 영원히 번창한다. 이것이 바로 존 메이너드 케인즈,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가 불황으로부터 자본주의를 구해낸 방법이다.


그러나 그 승승장구하던 케인즈의 세계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많던 싱아가 하나둘 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



경제가 불황이면 인플레이션은 낮게 유지된다. 사람들이 돈이 없으니 물건을 살 수 없고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으니 가격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60년대 말을 기점으로 아주 괴랄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불황임에도 불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노동 생산성의 향상이 임금 상승율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거치는 동안 노동자들은 강한 교섭력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높은 임금 상승으로 이어졌다.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포드 주의의 단순함은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지만 이제 그 단순함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포드주의는 너무 단순해서 더 단순해질 수 없었던 것이다.


둘째, 기업간 경쟁 격화가 과잉 투자를 불렀다. 투자가 과잉되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많아 임금은 오르고, 수요가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 회사만 많아지니 물건이 남아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물건 값이 떨어져야 하지만 기업은 늘어난 비용(인건비, 마케팅 비용 등)을 물건 값에 전가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셋째, 사회 보장 제도에 위기가 닥쳤다. 전후 서방 선진국들은 의료, 연금, 교육, 보건 등의 지출을 크게 늘려 사회 통합에 힘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에 대한 조세 부담이 커져 가뜩이나 떨어진 이윤율이 더 악화되는 실정이었다. 조세 저항을 우려한 정부는 국공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렇게해서 늘어난 재정 적자를 '돈을 찍어' 메꾸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로인해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넷째, 1973년 1차 석유 파동이 벌어졌다. 현대 사회는 석유에 의한 석유를 위한 석유의 사회다. 두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스태그플레이션은 기존의 케인즈 경제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처음에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를 역시 케인즈식으로 풀기 원했는데, 기업의 수익율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요를 창출한답시고 푼 돈들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격화시켰다. 케인즈가 재앙이 된 것이다. 케인즈가 재앙이 된 시대의 주인공은 당연히 그의 적 '하이에크'였다. 







수 많은 부침의 질곡이 꾸준히 우하향 곡선을 그리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인생의 묘미는 그 막을 수 없던 하락이 거짓말처럼 치솟아오를 때 있다. 수 십년간 서서히 잊혀져 이제는 역사의 퇴물이 된 하이에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 기사회생하게 된다. 


하이에크는 시장을 믿었다. 그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이 정부에 의해 인위적으로 통제될 때 경제 현상을 왜곡하고 결국에는 스태그플레이션같은 '기현상'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세상의 병폐는 그의 이론을 지지했다. 하이에크의 처방전을 가장 철저히 받아들인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케인즈의 방식으로 경제 대국을 만든 영국과 미국이었다. 특히 영국의 경우 고용 유치 정책, 실업보험 이라는 내환에 석유 파동이라는 외환까지 겹쳐 파운드 투매 바람이 불었고 결국 1976년 IMF 구제 금융을 받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영국 국민들은 대영제국을 부활시킬 인물을 간절히 바랐고 총파업이 벌어진 1979년 보수당을 선택한다. 그 유명한 '마가릿 대처'의 등장이었다. 







대처는 핸드백에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을 넣고 다니며 틈날때마다 "우리가 믿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할 정도로 시장 경제, 자유주의, 하이에크의 신봉자였다. 그들이 보기에 시장은 항상 옳았다. 이익이 있으면 자연스레 기업이 생긴다. 기업은 이익을 내기 위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이 과정에서 각 자원의 가격이 합리적으로 결정된다. 모든건 자연스럽게, 자립적으로 일어난다. 누가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하이에크와 대처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철폐하는 것으로 영국 경제를 되살리려 했고 이는 자본 시장의 개방과 노동 시장의 유연성 확보, 공기업 민영화 등의 정책으로 구체화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평화를 가져다 주었는가?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먼 곳을 헤맬 필요가 없다. 1997년 IMF를 경험한 한국은 마가릿 대처의 처방을 철저히 벤치마킹했다. KT, 포스코 같은 우량기업들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고 외환은행이 투기 자본에 희생됐다. 실업자가 해일처럼 쏟아져 내렸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긴축 정책을 벌인 정부는 쏟아지는 실업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마련하지 못했고 그 대부분은 노숙자가 됐다.

'경제 환란'이라는 공포는 임금 동결, 대규모 해고, 비정규직 채용의 구실로 악용됐고 회사부터 살리고 보자는 임직원들의 숭고한 희생은 이 모든 것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많은 수출 기업들이 환차익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자본 시장의 개방이었다. 이제 한국 상장사의 주식을 마음대로 사고팔수 있게 된 외국 자본들은 한국 자본 시장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이들은 한국 경제에 조금만 이상한 조짐이 보여도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면 자산은 폭락하고 한국 경제는 또 다시 환란을 맞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15년, 살만해지면 되돌려주겠다던 약속은 전경의 군화발 밑에서 처참하게 으스러졌다. 빈부격차는 우주를 갈랐고 의욕을 잃은 시민은 모든 문제에 무관심으로 화답한채 오로지 로또에만 열광한다. 







신자유주의든, 케인즈식 계획 경제든,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그 자체가 악한 이론은 없다. 생각해 보라. 하이에크가 정말로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기위해 자유주의 이론을 펼쳤을까? 아니, 모든 이론은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가만히 들어보자. 분명 얘도 맞고 쟤도 맞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쟁은 끝나질 않고 선택은 언제나 어렵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 적용된 신자유주의는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확실히 이건 하이에크의 의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일이 인간의 의지대로 술술 풀린단 말인가? 문제가 드러났다면 우리는 그것을 냉정히 바라보고 개선해나가야 한다. 


하이에크는 시장을 지나치게 가치중립적으로 생각했다. 시장자체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체가 상황에따라 명암을 극명히 드러내는 우리 인간이라면? 인간은 나약하고 욕심은 끝이없다. 상황만 주어진다면 인간은 언제든지 사악해질 준비가 되어있다. 철저한 자기 절제로 욕심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인간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시장을 통제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결정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데다 아주 빠르게 움직인다. 그때마다 중론을 모아 방향을 결정한다는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대신 우리는 정부를 선출할 수 있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정치인을 뽑고 대통령을 만든다. 이렇게 구성된 의회와 정부는 큰 방향에따라 시장을 통제하고 '모든 이'에게 유익한 결과를 만들기위해 노력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와 시장의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인간의 개선 의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데 있다. 고삐 풀린 망아지가 날뛰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그 위에 올라 단단히 고삐를 매줘야 한다. 그 위험한 일을 당신은 하기 싫으니까 정부를 시키자는 말이다. 투표가 중요한 이유를 이제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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