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한 현실적 방안
송원근.강성원 지음 / 북오션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말하지 않은'과 관련된 책이라면 대한민국에 두 권이 있다. 하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이요, 둘은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라는 책이다. 알다시피 전자는 신자유주의 격파의 선봉장이자 명망 높은 교수 장하준이 저자다. 그렇다면 두 번째 책은 과연 누가 지었을까? 여기저기 이름난 학교에서 공부하고 경제학을 업으로 살아가는 건 사실이라고 믿어주지, 하지만 명망을 부여 받기엔 턱없이 부족한 논리로 얼렁뚱땅 카피책을 써버린 경제학자 두명이 그 주인공이다.

나는 지난 달 두 책 중 후자를 구매했다. 제목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데, 이 책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장하준을 비판한다. 이유는 아무래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싶었고 또 근래 들어 FTA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를 비판만 하는 소리가 너무 많아 그 뭣모르는 세태에 일침을 가하고 싶어서 라고 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젠장,

속아서 샀다.

나온지 2개월도 안된 책을 정가제 Free로 선전을해 버리는 바람에 완전히 속았다. 이게 얼핏 보면 그럴듯 하단 말이야. 나처럼 구간으로 풀리길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딱 걸리게 되어 있어, 못 믿겠다면 자, 아래 사진을 보시게나.



 



나름 공감할 만한 내용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말도 안되는 책이었다. 일일이 꼽자면 그대로 책 한권을 써도 될만큼 많으니 그 중 가장 황당했던 것 몇 가지만 소개해 보겠다.


1. 소득 격차가 느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주장의 핵심은 이거다. 1980년대 이후 우리 경제는 소득 재분배에서 경제 성장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득 격차가 무진장 벌어진 건 사실이지만 빈곤층의 소득 또한 늘어 났으므로(1986~2000년 사이 하위 20%의 실질 소득은 연 평균 0.9% 증가하였다) 전혀 문제가 않된다는 얘기다. 이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절대적 소득이 적을 경우 인생을 사는데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에 직면하게 된다. 우선 여유 자금을 모을 수가 없다. 여유 자금이 없으면? 노후 대비가 안된다. 그나마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고 있을 땐 그럭저럭 입에 풀칠을 한다 쳐도 퇴직을 하고 나면 완전히 절망이다. 비빌 언덕은 자식들 뿐인데, 빈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어찌 부자일 수 있겠는가? 그러니 빈자의 자식은 안 그래도 빈한 자신의 몸둥아리를 간수하는 동시에 플러스 알파로 부모의 봉양까지 떠맡아야하니, 삶은 고해라고 누가 말했던가? 빈자에게 삶은 이중의 고해다.

둘째로 리스크 관리가 안된다. 돈 많은 사람이야 갑자기 큰 병에 걸려 수 억원씩 병원비를 쓰더라도 가산을 탕진할 일이 없다. 하지만 없는 사람은 다르다. 잘못해서 백혈병이나 당뇨에라도 걸려 버리면 가산을 탕진할 걱정을 떠나 가족을 위해 이대로 자살을 감행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딜레마에 빠져야 한다. 보험을 들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젠장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보험이란 말인가. 게다가 어느 보험회사가 치료비가 수 억원씩 드는 병을 보장해 주겠는가? 설령 그런 보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 상품은 일반 서민이 들 수 없을 만큼 비쌀게 분명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려울 수록 아끼고 아껴 돈을 모아야 되는거 아니냐고. 없는 사람들이 입을거 다 입고 쓸거 다 쓰면 돈은 언제 모으냐고. 그 썩어 빠진 정신상태 부터 고치고 아끼고 모아 돈을 벌라고. 참으로, 개소리다.

부의 가장 큰 특징은 부가 부를 부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의 집 앞 놀이터에 석유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자. 놀이터 바닥을 한 번 탐사하는 데는 100만원이 든다. 하지만 석유를 발견하기만 하면 1,000만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석유를 발견할 확률은 10%. 단 돈 100만원이 있는 사람이 10%짜리 도박에 전재산을 거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1,000만원을 가진 사람이라면? 확률적으로 이 사람은 돈을 잃을래야 잃을 수가 없다. 여기서 조금 더 여유가 있고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디서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지 또는 매장량은 어느 정도 되는지에 대한  고급 정보를 사들여 보다 정교한 탐사를 시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석유 발견이라는 판타스틱 초대박 로또는 정작 그것이 절실한 빈자들이 아닌 부자들에게 돌아갈 확률이 훠얼~씬 높아진다.

더 큰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부자일 수록 1%의 금리차에 민감하고 빈자일 수록 그 차이에 둔감한 경향이 있는데 이건 결코 빈자들이 멍청하거나 허영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1,000만원을 예금해봐야 1%라면 10만원 밖에 안된다. 그저 외식 몇 번 안하고 말지! 하지만 100억을 가진 사람에겐 1억이다. 그러니 민감할 수 밖에! 이렇게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보니 서민들은 1% 금리에 둔감해 지면서 도리어 대박을 노리는 고위험 투자를 선호하게 되고, 급기야 전재산을 앞마당 놀이터에 쏟아 붓는 미친짓을 하게 된다.

뭐 어때! 잃어봐야 100만원인데!

빈부 격차가 커질 수록 서민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확률은 높아진다.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될 확률은 없다. 그렇다면 인생 뭐 있나. 한방. 딱 한방으로 끝내 보자. 바로 이런 생각으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 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

이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2. 개인의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 말만 두고 보면 문제가 될 게 하나도 없다.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어떻게 국가가 유지될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이 사람들이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 타당한 의무로서가 아니라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지나칠 정도로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현재 대한민국이 부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상당히 침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떠한 방법으로 부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을까? 예측컨대, 그것은 세금을 겨냥한 말일 것이다.

이를테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부자감세안이 지지부진한 것을 두고 이들은 국가가 부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법인세와 고소득자들의 소득세를 인하해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노령 연금, 무상 급식, 반 값 등록금 등의 복지 예산을 책정하는 국가를 내 지갑에서 돈을 뺏어가는 도둑놈으로 매도하고 싶다. 나아가 국민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또한 세금 낭비의 주적으로 여기며 '우리가 뭣하러 피같은 세금을 내 가난한 놈들의 배를 채워줘야 한단 말인가!'라고 외치고 싶다.



 

 




부자들의 생각을 듣고 있으면 마치 자기만의 세상에서 오직 자기들만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 '함께' 또는 '다 같이'라는 단어가 존재할까? 소득세나 법인세 같은 직접세를 내려 '부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게 되면 그 만큼 줄어든 세수를 위해 간접세 비중이 높아진다. 이렇게 간접세 비중이 높아지면 물건에 붙는 부가가치세 등이 늘어나는데, 이런 세금은 삼성의 이건희나 트럭에서 떡볶이를 파는 아저씨나 똑같이 내는 것이다. 부자들은 흔히 '공짜 점심은 없다'라고 얘기한다. 오늘날 이 말은 '가난한 놈들에게 공짜 점심은 없다'라고 해야 옳다.


3. 개인의 이익 추구는 언제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경제를 이끈다

국가 경제가 위태로울 때를 생각해 보자.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잔뜩 긴장한 국민들은 지갑을 꽁꽁 닫아 걸고 소비를 줄인다. 줄어든 소비 탓에 내수 경기가 얼어 붙고 이 탓에 개인 사업자와 기업이 도산한다. 또다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수학적으로 봤을 때 전체는 언제나 부분의 합과 같다. 그러나 경제는 다르다. 앞에서 제시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의 올바른 경제적 판단이 언제나 국가 경제의 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이익 추구가 궁극적으로는 경제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저자들의 논리에도 정확히 대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전력 회사의 사장이라고 치자. 난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투자 대비 수익이 낮은 도시의 전기 공급을 중단키로 했다. 이 결정은 이사회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나의 CEO 직을 지켜줬고 여기서 얻은 이익으로 배당을 하니 주주들이 기뻐 날 뛴다. 

반면 전기가 끊긴 지역에선 공장이 가동을 멈췄고 시민들은 직장을 잃고 노숙자가 됐다. 시민들이 낙담해 고향을 버리고 옆 마을로 몰려들자 옆 마을의 생필품 물가가 급등하고 주거 문제가 심각해 지면서 할렘을 형성한다. 이 지역에선 밤마다 범죄가 들 끓는다. 늘어난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시 예산이 추가 편성되고 늘어난 예산에 맞춰 세금이 폭증하자 시민들의 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한다.



 

 




너무 극단적인 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기업의 탐욕은 이미 도를 넘어 섰다. 월가의 금융 회사들을 보라. 탐욕스런 인센티브 잔치와 투기에 가까운 운영으로 금융 위기를 맞은 회사들은 그 때마다 정부에서 주어지는 막대한 공적자금으로 위기를 탈출한다. 그리고 보란듯이 살아 남아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욕망의 파티를 벌인다.

시장 옹호론자들은, 개인의 이익 추구가 언제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를 인도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시장이 위기 때마다 부실 기업을 퇴출시키고 탐욕에 눈이 먼 미치광이들을 몰아낼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모두가 미쳐있다면? 이 시장 전체가 탐욕에 눈이 먼 미친개들의 소굴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절대 다수가 악마인 지옥에서 선한 양은 그대로 희생양이 될 뿐이다. 외눈박이 마을에선 두눈 박이가 병신이듯이, 사악한 기업들의 시장에서 선한 기업은 단지 위선자가 될 뿐이다.


에필로그

다 써 놓고 보니 생각보다 덜 황당한 얘기들만 잔뜩 인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 보면 교묘한 말장난과 속임수들이 도처에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장하준 책의 특징은 실제 사례와 데이터가 풍부하게 제시된다는 것인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너무나 빈약하다. 또 제시되는 몇몇 데이터들은 그 진위 여부가 확연히 의심되어 이 책에 실린 전반적 통계 자료의 신뢰도를 극적으로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특히 1일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층의 수가 1974년 세계 인구의 20%였던 것에 반해 신고전주의 경제 정책이 도입된 후 1998년에는 5.4%로 급락했다는 제시 자료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현재 전세계적으로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층은 10억, 2달러 미만의 빈곤층은 30억에 달한다).

이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분명 우리 사회는 급격한 발전을 이뤄냈고 엄청나게 살기 좋아졌을텐데 우리의 삶은 왜 여지껏 이모양 이꼴이란 말인가?


 

 

                                                              <조르주 드 라투르의 사기꾼>


무엇이 옳으냐 하는 문제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선 스스로가 각종 통계를 찾아 보고 그 허와실을 판별해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이 사안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며 그 통계 자료 또한 정확히 찾아보지는 않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한 권의 책 안에서도 앞 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한대서야 도대체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사기꾼들의 경제학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말이 좀 과하다면 적어도 거짓말쟁이들의 경제학 정도로 이 책의 수준을 가늠할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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