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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습게 봤겠지만
베라 쿠리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평점 :
이 소설을 우습게 볼 생각은 없지만, 우습게 볼 만한 구석이 몇 군데 있었던 건 사실이다. 소설은 사이코패스 무더기를 대학교 하나에 몰아넣고 일종의 배틀로열을 벌인다. 모아 온 방법은 기발하면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어느 대학 교수 하나가 장학금을 미끼로 사이코패스를 모집한 것이다. 그들은 학교 수업을 들으며 교수의 연구에도 참여한다. 교수는 사이코패스에 관심이 많다. 그냥 관심이 아니라 신념이다. 그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념의 기원은 훨씬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지금의 이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그 사건일 것이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사이코패스를 만나 면담을 진행했던 경험. 결국 사행을 당했지만, 끝까지 모든 걸 걸고 변호했던, 그 경험.
사이코패스들을 모아놨으니 그들이 단순히 입씨름을 벌이고 서로의 SNS에 찾아가 싫어요를 누르는 걸로 끝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살인이 벌어진다. 누군가 이 사이코패스들을 사냥하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 미스터리가 소설을 끌고 가는 주된 힘이다. 이게 아주 약했던 건 아니다. 워낙 거짓말에 능한 놈들이라 소설이 써 놓은 그들의 대사와 감정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사이코패스니 누구를 죽이는 데 동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등장인물은 다섯이지만 용의자까지 다섯으로 넓히는 복잡한 전개는 허용하지 않는다. 범인은 둘로 압축. 의도적인 혼란을 몇 번 유발한 뒤 트릭 하나를 반전의 여지로 남겨둔다. 작가는 아마 주인공만큼 치밀한 성격일 것이다. 트렁크 하나에 2주일 치 여행짐을 차곡차곡 빈틈없이 눌러 담을 것 같은 사람. 문제는 그게 그리 참신한 건 아니었다는 점이다.
속도도 문제였다. 중간엔 사이코패스스러운 캠퍼스 로맨스도 있고 주인공의 지루한 계획 세우기도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 이 대학을 택한 이유는 남자 하나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 남자는 미성년자였던 주인공을 강간한 놈이다. 심지어 비디오도 찍었다. 주인공은 비디오를 회수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 끝에 단죄의 칼날을 세워둔다.
희생자와 가해자의 위치가 바뀌는 쾌감은 사냥감이 지나치게 멍청한 탓에 쉽게 흩어진다. 사이코패스는 너무나 똑똑해 이야기의 위에 선다. 모든 게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된다. 현실 세계의 사이코패스는 천재도 아니고 만능도 아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에선 아주 쉽게 먼치킨이 된다. 나는 이런 먼치킨이 등장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은 단 하나의 이야기를 안다. 그것은 <양들의 침묵>이다.
한니발이 되기에 그들은 너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