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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인 남자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줄리안 시먼스 지음, 정향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8월
평점 :
당신은 아내를 죽이고 싶은 남자다. 결심은 섰고 총도 있다. 그러니 죽이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살인을 하되 범죄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당신은 그녀의 유산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수사가 종결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범인이 잡히거나, 사라지거나, 죽거나. 따라서 살인을 하되 범죄자가 되지 않는 방법은 누명을 씌우는 것, 신분을 바꾸는 것,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앞의 두 가지를 다루지만 현실 세계에서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누명을 씌우려면 살해 동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피해자가 적이 많은 사람이라면 비교적 쉽겠지만 이것도 용의 선상에 올리는 것까지다. 후보들의 알리바이를 모조리 깨부숴야 하고 대량의 증거 조작도 필요하다.
살인자들이 신분을 바꿔 새 삶을 사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있다. 사례를 살피다 보면 그렇게 똑똑할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내가 유산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선택지는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내의 금고에 현금이 넘쳐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셋 중에 가장 쉬운 건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 사건은 그대로 종결된다. 물론 이 방법도 두 번째에 제시한 '사라지기'만큼 의미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범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세 번째가 가장 확실하다. 사라지는 건 미결이고, 죽는 건 종결이니까. 이 책의 주인공 아서 브라운 존도 이 생각에 분명히 동의했을 것이다.
어떻게 나 자신을 죽일 수 있을지 잠깐 생각해 보자.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죽이되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맛이다. 보통의 이야기들은 이 맛을 내기 위해 온갖 재료를 들이붓고 튀기고 지지고 끓이고 요란한 조리법을 동원한다. 모르겠다. 그 정도로 치밀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누군가를 죽여야 할 상황도 만들지 않았을 텐데. 살인이 취미가 아닌 이상에야.
아서 브라운 존의 선택은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내가 아내를 죽이고 행방을 감춘 뒤 진짜 내가 울면서 나타나 아내의 유산을 차지한다. 전략은 좋았지만 전술이 어설펐다. 하지만 이 어설픔은 저자 줄리언 시먼스의 의도된 연출이다. 이 소설가는 나와 마찬가지로 추리 소설이 꺼내놓는 해괴한 요리를 혐오하는 것 같다. 훌륭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멋진 제목으로 이렇게 심심한 소설을 써낸 걸 용서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이거 뭐 제목만 봐서는, 거의 존 르 카레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