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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7
전예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평점 :
세상에는 집어삼켜야 할 게 너무 많다. 살려면 많은 걸 삼켜야 한다. 음식 얘기가 아니다. 분노, 시기, 질투, 나를 싫어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숨기고 싶은 것들, 없애고 싶은 것들. 먹다 보면 체할 때도 있다. 체하다 보면 삼켰던 게 다시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나온 것들은 들어갈 때보다 더 끔찍해 보인다. 그러니 뭔가를 삼킬 땐 각오해야 한다. 다시는 꺼내지 않으리라. 끝까지 소화시켜 없애리라.
이 일이 생각처럼 잘 된다면 사는 데 힘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잘 되지 않는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대로 들고 갈 수도 있고 같이 선 사람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대부분 고통을 불러일으키지만 가끔, 아주 가끔 마음에 쌓인 눈을 녹일 때가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행운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다.
<보글>의 두 자매는 삼키는 걸 아주 잘했다. 둘이 뺨을 맞대고 무언가를 삼키기로 마음먹으면 두 입이 합쳐져 엄청나게 커졌고 많은 걸 삼킬 수 있었다. 때로는 엄청나게 큰 걸 삼키기도 했는데 그럴 땐 입이 찢어지지 않도록 주변에 바셀린을 발랐다. 먹고 나면 이상한 것들이 나올 때도 있었다. 온몸 여기저기에 수포 같은 게 생기고, 터지면 무언가가 나왔고, 심으면 악취가 심한 열매를 맺었다. 언니는 이런 게 나올 때마다 전부 갈아서 없애버렸다.
자매는 엄마가 죽고 고아가 될 뻔했지만 할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할머니에게는 안정적인 직장과 아파트가 있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집안 여기저기 똥을 싸고, 자매를 못 알아보기 시작하고, 그래서(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있다) 죽여버렸다. 집에 돌아온 언니가 봤고, 언니에게는 단 한 가지 방법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자매는 오한과 경련, 메스꺼움을 견디며 생각했다.
다시는,
다시는,
먹지 말자,
인간을,
인간은.
(p.77)
사람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단순한 고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뒤에 나오는 게 문제였다. 동생의 물집이 터지면서 그 안에서 아주 작은 사람이 나왔다. 사람은 쭉쭉 커서 말도 하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사람은 점점 자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 별 수 있나. 다시 삼키는 수밖에. 다시는, 다시는, 인간을 먹지 말자 다짐했으면서도.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합쳐서 크게 벌어지던 입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알아야 한다. 세상은 나 혼자고, 모든 걸 내 힘으로 해야 한다는 걸. 이것이 성장이고, 철이 든다는 것이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어쩌면 인간의 외로움은 성장을 잘못 이해한 데서 온 게 아닐까? 꾸역꾸역 슬픔을 삼키고, 눈물을 가두고, 어깨에 메고, 등에 지고, 침묵하는 것. 어른이라면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고 다짐한 것들. 이 모든 게 우리의 오해는 아니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얼마나 약하고 부족한지를 깨닫는 것이다.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 도움을 청하는 것, 함께 해결할 사람을 찾는 것. 그러니 이제 무작정 삼키는 일은 하지 말자.
우리는 어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