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프라이스 킹>의 농담 30%에 시의성을 70% 섞어 <말뚝들>을 만들어냈고 한겨레가 골랐다. 적절하다는 말은 참으로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싶다. 김홍 바모스!
나는 <프라이스 킹> 같은 소설을 좋아했다. 뼈대를 생각하기보다는 펀치 라인에 집중하는 이야기. 모르긴 몰라도 김홍 소설의 상당수는 단 1개의 문장에서 시작된 것들이 꽤 있을 것이다. 문장이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문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 이런 류의 소설은 확실히 장편에 취약하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미학자가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예술은 없어져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사라지는 것이다.'
펀치 라인이 너무 많으면 라인이 더 이상 펀치의 역할을 못한다. 농담은 길면 지루해진다. 그럼에도 이걸로 장편을 기가 막히게 잘 지었던 사람과 작품을 언급해 보겠다. <넛셀>의 이언 매큐언, <하이 피델리티>의 닉 혼비, <고래>의 천명관, <지구 영웅 전설>의 박민규. 이 중에 작품으로 보면 첫 손에 꼽는 게 <넛셀>이냐 <고래>냐... 솔직히 <고래>는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 레전드 오브 전설인데 작가가 물색없이 영화판을 기웃거리는 데다(그럴 거면 성공이라도 좀 하든가) 나의 <뜨거운 피>를 개망작으로 만든 죄까지 지었으니 <넛셀> 우승! 하지만 작가로 보면 고민할 거 없이 박민규다.
박민규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표절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문학계는 좀 더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한국 소설을 읽기 위해 편혜영이나 김애란만 찾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예전에는 정세랑도 있었는데 이 쪽은 거의 탑 텐처럼 돼서(나 탑 텐 진짜 좋아한다. 매년 텐텐 데이만 기다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탑 텐을 가지는 않잖냐) 맛이 좀 슴슴하다.
어쩌면 김홍이 박민규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프라이스 킹>은 이런 류의 소설을 진지하게 사랑했던 사람이 읽기에도 좀 지나친 면이 있었다. <말뚝들>은 그 지나침을 70% 도려낸 소설이다. 그래서 뭔가가 보이고, 재미있게 읽었다. 중간에 지루한 부분들은 단첫문(단락의 첫 문장만 읽기) 신공으로 건너뛰었음을 고백한다. 그중에는 김홍이 벼르고 깎아 넣은 금쪽같은 펀치 라인도 있었을 것이다. 뭐, 미안.
<말뚝들>은 내가 아니라 우리 집주인(세대주)이 골랐다. 김홍 소설인지는 몰랐다. 마침 서점을 못 가 책이 떨어져 책상 가장 위에 있던 놈을 읽은 것이다. <프라이스 킹>을 읽은 내가 <말뚝들> 아래에 적힌 김홍을 봤다면 절대로 서점에서 데리고 오지 않았을 책이다. 인연이란 참 신기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