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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평점 :
수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이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의 아키텍처가 처음 만든 버전에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냥 행복하기만 하면 세상이 잘 돌아갈 거라 생각했지만 어쩐 일인지 인간은 모두 죽어버렸다. 그렇게 몇 번의 디버깅을 거쳐 아키텍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완전히 똑같은 세계를 만들었다. 아키텍처는 네오에게 말한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현실을 인지한다'라고.
인간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고통을 지배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중세 시대에 성행했던 고문은 고통을 야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는 전근대, 대한민국에서는 현대에도 널리 사용됐다. 군부독재 시기 이들은 고문기술자 혹은 고문전문가로 불리며 일종의 장인으로 대우받았다.
한국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고통을 구사하는 방식은 육체적 폭력에서 규율이라는 간접적 폭력으로 대체됐다. 이제 인간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고문이 아니라 분위기다.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직감. 규율은 명문화된 지침으로 존재하지만 더 넓게는 불문율이라는 형태로 우리의 정신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성과사회에 이르러 규율은 완전히 내면화한다. 외부에서 강요된 게 아니라 스스로 설정한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게 가능한 사회에서 실패는 오롯이 자기 것이 된다. 내가 뚱뚱한 이유는 입맛을 조종하는 식품회사의 전략 때문이 아니라 자기 관리가 부족한 나의 게으름 때문이고 내가 가난한 이유는 구조적 불평등이 아니라 노력의 부족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착취를 내면화했지만 거기에 고통이 없는 건 아니다. 고통이 너무 심해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우리는 이 현실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우리의 행동을 바꿀 때가 왔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자각은 현재를 유지하려는 권력에게 치명적 위협이다.
고통은 혁명의 씨앗이기 때문에 부정하고 억압해야 한다. 의학과 심리학은 완벽한 부역자였다. 아픈 걸 왜 참아야 하나? 고통을 부정하라는 명령에 의학은 완벽한 해답을 내놓았다. 미국은 질릴 정도로 마약에 고통받아왔지만 최근 더 큰 문제를 일으킨 건 병원에서, 완전히 합법적으로 처방한 마약계 '진통제'였다. Painkillers kill people.
의학이 외과적 처방이라면 심리학은 정신적 처방이라 부를만하다. 오늘날 온 세상을 뒤덮은 위로와 긍정의 심리학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위로는 고통이 드러낸 현실의 결함을 가리고 그것이 분노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다. 긍정은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을 위한 처방이다. 긍정은 아주 교묘하다. 고통을 긍정함으로써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가난은 기회다. 성공은 절박함에서 잉태된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고 진주는 고통을 먹고 자란다.
여기까지가 내가 읽고 이해한 <고통 없는 사회>의 일부다. 이 책은 선언으로 가득하기에 전부를 이해하는 건 대단히 어렵다. 한병철의 문장은 자기가 깨달은 진리에 취해 듣는 사람이 이해를 하든 말든 쏟아내는 방언 같다.
오늘날 우리는 탈서사적 시대에 살고 있다. 이야기가 아니라 계산이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서사는 몸의 우연성을 극복하는 정신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이야기가 모든 병을 치유할 수도 있다는 벤야민의 생각은 일리가 있다.(p. 39)
고통 없는 사회에 왜 갑자기 서사가 나오고 발터 벤야민이 등장하는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나도 엄청 애를 먹었다. 현대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진단하는 제목에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공감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완독 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