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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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족이라는 불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모른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꿀 수도 없고 혁명도 불가하다. 책임자를 색출해 단죄하기도 어렵다. 이 비극의 원인제공자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 가다 보면 말도 통하지 않는 단세포 하나를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친구, 동료, 동지 같은 유사 가족에 더 마음을 쓴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유전자로 이어진 진짜 가족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 가짜들에 더 가닿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이 극도로 비정상적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족이라는 비극은 우울의 막을 연다. 가족은 비극 중의 비극, 그 어떤 작가도 쓸 수 없는 마스터피스다.


비극이 영원한 이유는 가족이 세대를 거쳐 자신의 이야기를 물려주기 때문이다. 부모의 관계를 파괴하는 능력과 육체적 폭력, 가혹한 통제, 잦은 외도, 방탕함, 우울 등은 후성유전되는 것이 확실하다. 저자 이랑의 형제들이 재생산을 멈추기로 결의한 이유도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에 후천적으로 새겨진 비극의 배역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로 했다. 이들은 자기 자식들이 무대에 오를 기회를 제거함으로써 이야기의 막을 내렸다. 그 마음은, 눈물이 날 정도로 숭고하다.


유전자에 쓰인 이야기가 어떻든 내 삶은 내가 다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매 순간 자신을 돌아보며 부단히 행동을 수정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알코올중독자 부모가 죽도록 싫었던 사람이 알코올중독에 빠지고,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부모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했던 사람이 아내와 자식을 두들겨 패는 장면을 연출하는 건 클리셰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저자의 불안하고 예민한 정신은 가족이 길러낸 것이 분명하다. 자살한 첫째 언니는 두 명의 동생을 사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어서가 아니다. 그 폭력을 함께 겪은 피해자 동지이기 때문이다. 이 비극이 아이러니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족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언니는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겼다.


성한이 사랑해.

엄마 아빠 사랑해.

완이 랑이 사랑해.

이게 내 진심.

(p. 111)


정말 정말 우울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힘이 되는 수필.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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