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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표류기 ㅣ 세계교양전집 52
헨드릭 하멜 지음, 최유경 옮김 / 올리버 / 2026년 3월
평점 :
<하멜 표류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박연을 만나는 장면이다. 박연은 인조 4년에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얀 얀세 벨테브레이다. 하멜은 효종 4년에 태풍을 이기지 못하고 난파선과 함께 제주도에 도착했다. 인조는 대충 27년을 통치했고 그를 이은 아들이 효종이니 하멜이 벨테브레이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박연으로 산 지 30년은 된 셈이었다.
두 더치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세상에. 지옥 같은 표류 속에서 구원의 동족을 만났거늘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었으니 허탈함은 몇 십배가 됐을 것이다. 하멜은 박연에게 네덜란드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박연은 3개월 만에 자신의 모국어를 완전히 되찾았다.
하멜은 1653년 35명의 동료들과 살아남았고 1666년 9월 4일 나가사키 탈출에 성공한다. 그 당시 남아있던 더치는 모두 22명이었다. 여수에 12명, 순천에 5명, 남원에 5명. 탈출을 주도한 건 하멜이 속한 여수 파였다. 여기에 순천의 동료 몇 사람이 가담했다. 이 중 일본에 도착한 게 정확히 몇 명인지는 확실치 않다.
탈출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조선의 정책상 표류한 외국인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없었다. 이들의 살림은 왕과 관리의 성향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한 때 그들은 난파선에서 건진 가죽을 팔아 정원까지 갖춘 근사한 집을 사기도 했다. 그들은 조선에서 장사도하고 구걸도 했다. 하멜에 따르면 조선에서 구걸은 나쁜 짓이 아니었다. 승려들이 집집을 돌아다니며 시주를 받은 것도 구걸이라 말한 걸 보면 하멜이 생각하는 구걸의 의미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점은 누가 호의적이고 누가 적대적이었냐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확실히 그들에게 잘해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고, 물어볼 게 많았다. 이건 정말 중요한 교훈이다. 다른 세상에 호기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고이고, 고이면 내 경계에 다른 생각이 끼어드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하멜 표류기>는 조선이 왜 20세기에 일본의 속국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단면을 제시한다. 일본은 자기들이 못하는 것을 가져왔고, 자기들이 잘하는 것을 내어줬다. 그러면서 이른바 열강이라 부르는 유럽 국가들과 실력을 겨뤄볼 수 있었다. 조선인들이 모두 멍청해서 망국을 맞은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문화와 그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 필사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