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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세상에 이런 류의 책들은 정말로 많고 똑같은 통계 사레도 반복해 등장하니 이번에는 그중 하나만 정확히 짚어보겠다.
강남에 에이즈가 유행이라고 상상해 보자(집 값아 떨어져라!). 5년 전부터 이 사태를 정확하게 예측해 온 당신은 놀랍게도 에이즈를 검사하는 신속 키트를 개발해 보유하고 있었다(축하한다 이제 부자가 돼 보자). 이 키트의 민감도는 95%로, 진짜 에이즈 환자의 콧구멍에 시약을 넣었을 때 95% 확률로 양성 반응이 나타난다는 의미다. 반면 거짓 양성률은 1%에 불과하다. 100명에게 시험했을 때 단 1명만이 에이즈로 잘못 검진된다는 말이다.
당신은 출시를 코앞에 두고 자기 자신에게 이 키트를 시험해 봤다. 그런데 세상에, 결과가 양성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말로 에이즈 환자일 확률은 얼마일까?
너무 쉬운 문제를 냈을 리는 없으니 당신의 머리는 복잡해질 것이다. 아까 95, 1 어쩌고 했는데... 둘 중 하나인가? 민감도가 정확도인가? 거짓 양성률이 1%라고 했으니 99% 확률로 에이즈라는 말이겠지. 큰일이다. 부자가 되기도 전에 죽어야 하다니.
안심해라. 당신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우선 사는 곳이 어디인지 말해봐라. 강남인가? 아마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일 테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거긴 이미 '부자'가 사는 곳이니까. 당신의 거주지가 남양주고 아직 이곳에 감염 사례가 한 건도 보고된 적 없다면 그 결과를 거짓 양성으로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하지만 강남에 살고 있다면? 확실히 더 위험해진 건 사실이다.
아포칼립스 수준의 공포에 떨어본 미국의 에이즈 환자 비율이 2016년에 0.3% 수준이었으니 넉넉잡아 강남을 3%로 쳐주겠다. 이 정도면 사실 미사일로 강남을 불태우자는 주장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아무튼 이렇게 후하게 쳐줘도 당신이 진짜 에이즈 환자일 확률은 3%에 0.95를 곱한 2.85%에 불과하다. 안심이 되는가?
이것이 바로 기저율의 비밀이다. 민감도가 95%라는 건 애초에 당신이 에이즈 환자라고 가정했을 때 정확하게 그게 맞을 확률이다. 이처럼 통계에는 우리 눈을 속이는 장치로 가득하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채. 진화의 도구인 자연선택은 숙고보다는 직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곰곰이 생각하는 대신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 아마 호랑이로부터 도망쳐야 할 일이 더 많았던 과거에는 그걸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유전자가 따라가기에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