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의 땅

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타이완은 귀신이 지배하는 땅인 것 같다. 매년 음력 7월이 되면 이 땅에 귀신이 찾아온다. 7월 1일에는 귀문이 열리고 15일이 되면 귀신들의 힘이 가장 세진다. 타이완의 음력 7월은 귀월이다. 온갖 종류의 귀신들이 튀어나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

용징의 7남매는 귀신보다 귀신같다. 책장을 열면 귀신들이 쏟아져내린다. 천 씨 집안은 원래 땅이 많은 부호였으나 타이완에 국민당이 들어서고 토지개혁이 벌어지자 개털이 됐다. 천 씨네 아들 아산은 향기나 간장 공장의 딸 아찬과 결혼해 7명의 귀신을 낳는다. 그중 다섯은 연달아 딸을 낳았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아찬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고,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가 빨리 죽기를 귀신에게 빌었다.

천수메이는 첫째 딸이다. 불행했다.

천수리는 둘째 딸이다. 불행했다.

천수칭은 셋째 딸이다. 불행했다.

천쑤제는 넷째 딸이다. 불행했다.

천차오메이는 다섯째 딸이다. 불행했다.

천톈이는 여섯째 아들이다. 불행했다.

천톈홍은 일곱째 아들이다. 불행했다.

불행의 씨앗이 어디서부터 발아했을지를 더듬어본다. 토지개혁이 문제였을까? 천 씨 집안이 여전히 부자였다면 아찬이 내리 다섯을 딸로 낳았어도 괜찮았을까? 아니, 아예 간장 공장의 딸과 결혼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가문의 급에 맞는 더 좋은 며느리를 맞았을 테니까. 그랬다면 7명의 귀신대신 사람을 낳았을지 생각해 본다.

천 씨네 이웃에는 왕 씨가 살았다. 왕 씨는 천안문 사태가 벌어져 중국이 대혼란에 빠졌을 때 과감히 도박을 벌여 큰 부자가 된다. 왕씨네 첫째 아들은 용징의 첫째가는 미녀 차오메이와 결혼하려 했으나 잠자리가 시원찮아 넷째 천쑤제와 결혼한다. 자기 마당에 하마를 기를 정도로 부자였던 왕 씨와 결혼했어도 넷째는 불행했다. 다섯째는 언니에게 부자를 뺏겨서 불행한 게 아니었다. 불행과 돈은 관련이 없었다. 행복과는 더더욱.

<귀신들의 땅>은 매 단락이 천 씨네 귀신들의 주절거림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앞으로 나아가려 애써보지만 끈질기게 달라붙은 귀신들이 발목을 잡아당겨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읽을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다. 그러다가 이 불행의 시작을, 이 모든 악몽의 끝을 밝히는 빛줄기 하나가 섬광처럼 눈을 찌른다.

천 씨네 가족은 정말, 징글징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