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 2세기에 걸쳐 진화한 세계화의 과거, 현재, 미래
마크 레빈슨 지음, 최준영 옮김 / 페이지2(page2)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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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표준 컨테이너의 크기는 길이가 약 12.5미터, 너비는 약 2.5미터다. 이 표준 컨테이너는 20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국제 운송비라는 항목을 기업의 비용 목록에서 거의 삭제했다. 컨테이너선은 미국 매사추세츠에 위치한 제조업체가 27개국에 공장을 운영할 수 있게 했고, 호주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와인 한 병을 병당 15센트의 가격으로 운반하게 만들었다. 컨테이너선이 없었다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현대의 중국도 존재할 수 없었다. 세계화는 디트로이트 같은 자동차 왕국에서 한국의 크고 작은 제조업 중심 도시까지, 수많은 도시에 몰락을 가져왔다.


1956년 역사상 최초의 컨테이너선이 운항을 시작했을 때 이런 미래를 예측한 사람이 있었을까? 물류 혁신은 관세와 운송비라는 장벽에 둘러싸인 개별 국가를 '세계'라는 단일 시장으로 통합했다. 2차 세계 대전과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촉발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제외하면 세계화는 늘 괴물같이 성장해 왔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세계화는 뚜렷한 적신호 앞에 주춤거리기 시작한다. 가장 큰 이유는 제조업 자체가 세계 경제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2002년에 세계 총생산량의 17%를 담당했던 제조업은 2010년대에 2% 포인트 감소했다. 세계인은 공산품보다 이제 교통, 교육, 의료 및 통신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


제조업의 쇠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전 세계가 마주한 고령화다. 고령 가구는 냉장고, TV, 의류를 새 걸로 바꾸기보다는 여행, 외식, 의료에 지출하는 돈이 더 많다. 두 번째는 많은 공산품들이 SW의 힘을 빌려 서비스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비디오와 CD, 블루레이는 이제 스트리밍으로 대체됐고, 제조업의 왕으로 군림하던 자동차조차 점점 공유 서비스로 전환되는 중이다. 현대 기아차가 미래 비전을 선포하면서 괜히 스스로를 '서비스 기업'이라 칭한 게 아니다.


많은 부분에서 제조 혁신이 일어나면서 생산 공정은 더 단순해지고 자동화되었다. 이는 많은 기업들이 생산직 노동자를 고용할 필요성을 감소시켰으며 더 싼 인건비를 찾아 공장을 이전할 요인 또한 사라지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2019년에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수많은 나라에 문어발처럼 뻗어 놓은 긴 가치 사슬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단 한 개의 부품 때문에 생산 라인 전체가 멈춰서는 기적. 미국이 대만을 보호하려는 이유는 대만 시민의 자유와 행복 때문이 아니다. TSMC가 생산하는 반도체가 자국의 하이테크 산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화는 끝난 걸까? 저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동하는 게 공산품에서 서비스와 아이디어로 바뀌었을 뿐, 그 속도와 규모는 변치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소프트웨어의 아웃소싱은 전혀 핫하지 않다. 이미 너무 평범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들은 세계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 높은 관세와 규제를 갖추었다. 하지만 이런 법규들이 오늘날 인도의 개발자가 github에 소스코드를 commit 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변화는 늘 파괴와 창조를 동반한다. 20세기에 시작된 세계화는 100년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새로운 질서 속에서 어떤 기회와 몰락이 발생할지, 유심히 지켜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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