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인간경영
도몬 후유지 지음, 이정환 옮김 / 경영정신(작가정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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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세를 끝내고 근대를 연 세 명의 장군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이 세명은 당대에 협력하여 천하를 거머쥔 사람들 치고는 성향이 너무나 달랐는데, 그 차이를 두견새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 유명하다. 울지 않는 두견새를 울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세 사람은 이렇게 답한다.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 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으면, 울게 해 주겠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는 패왕이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치의 달인이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내심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천하를 지배한 순서도 납득이 되는데, 복잡 다단했던 전국시대를 통일한 건 힘의 노부나가, 비천한 신분이었음에도 그것을 탈취하여 두 번째 주인이 된 건 지의 히데요시,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때가 왔을 때 분연히 일어나 일본 최후의 막부를 세운 건 인내의 이에야스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할 때 '주군이 내려준 간토(관동) 땅이 혼란하다'는 핑계로 단 한 명의 군사도 출병시키지 않았다. 히데요시 사망 이후에는 모든 다이묘들에게 즉각 회군할 것을 명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세력을 규합해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와 전면전을 벌인다. 세키가하라, 오사카 전투를 끝으로 히데요시 가문은 완전히 멸망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가 수립된다. 에도의 현재 이름은 도쿄다.


히데요시-이에야스 전쟁을 계기로 일본의 중심은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동한다. 서울-부산만큼이나 말이 다른 두 지역은 서로의 언어를 오사카 사투리, 도쿄 사투리라 부를 정도로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먹는 것도 다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초밥은 원래 쥐어서 만든다는 의미의 니기리 스시로 불리는데 이게 바로 도쿄식이다. 반면 오사카는 나무  상자 안에 고기와 밥을 층층이 쌓고 눌러 만든 하코 스시를 먹는다. 사회생활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는지 오사카 출신으로 성공하려면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다.


도쿄에 터를 잡은 뒤 이에야스는 아들에게 쇼군 자리를 물려주고 전면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이는 은퇴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여러 분야의 지식인과 외국인들을 모아 여론을 수집하고 나라를 운영할 정책을 만들었다. 이것을 실행하는 건 아들이었는데 정치와 행정을 분리하는 일종의 권력 분립 체제가 아니었다 싶다. 이 방법의 장점은 배후에서 모든 걸 움직이면서도 정책 실패에 따른 비난은 아들에게 지울 수 있다는 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하를 다루는 방식도 이처럼 교묘했는데 드러내 놓고 위협을 가했던 노부나가와 달리 서서히 말려 죽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크게 소리 나지 않게, 죽는지도 모르고 스르륵.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치 방법 중 가장 인상적인 건 '꽃과 열매를 함께 주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부와 권력의 분리였다. 일본은 칼을 쓰는 자가 붓을 드는 사람보다 지위가 높았던, 세계사를 통 털어도 이례적인 나라였는데 천하를 지배한 이후 이에야스는 무신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평화를 이룬 정부가 흔하게 취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그 불만과 갈등을 다스리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정책을 좌우하는 측근들에게는 권력을, 그렇지 못한 이들에겐 더 많은 돈을 주었던 것이다.


참을성의 화신이라면 뭔가 근엄하고 듬직한, 대쪽 같은 인물이 떠오르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행적을 보면 이 말이 일본 역사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3인의 이야기를 끼워 맞추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너구리 영감이란 별명을 괜히 얻은 게 아니다. 판국을 좌우하는 모습을 보면 히데요시만큼 정치적이었고 여러 방면에서 도저히 의중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많이 했다. 맹목적인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히려 공포의 오니(귀신)라 불린 노부나가와 일 하기가 쉬울 것이다. 눈치가 빠르거나 정치적 수 읽기에 능하다면 히데요시가 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속을 알 수 없는 상사만큼 일하기 어려운 사람이 또 있을까?


인내심이란 어쩌면 자기 속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행보를 오역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나는 원래 이 3인 중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본능적인 매력을 느꼈는데, 알아보니 나와는 참 안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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