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 풍문부터 실록까지 괴물이 만난 조선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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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배경으로 한 괴물 이야기가 가당 키나 한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무리 상상력은 무죄라지만 그렇게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통할까 싶은 것이다. 실제로 크게 성공을 거둔 작품은 넷플릭스의 <킹덤> 정도만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도 어디서 재미를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창궐>, <물괴>, <조선구마사>에 비하면 수작임이 틀림없다.


해답은 <조선왕조실록>에 있었다. 주자학에 심취한 사대부의 나라가 이토록 많은 괴물 이야기를 했을 줄이야! 실록에는 물괴(물오름, 적조, 기이한 모양의 바위 등의 자연현상과 귀신같은 초자연현상을 통칭했던 말)에 대한 언급이 차고 넘친다. 백성들 사이에서 풍문으로 도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떤 신하의 집에 귀신이 들었다더라 하는 얘기를 왕과의 경연장에서 심각하게 주고받은 기록이 보인다. 일부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일축, 초연함을 보이지만 일부는 진실로 믿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다음은 성종 실록 197권의 일부다.


영의정 정창손의 집에는 귀신이 있어 능히 집 안의 기물을 옮기고, 호조좌랑 이두의 집에도 여귀가 있어 매우 요사스럽습니다. (중략) 임금이 말하기를, "부엉이는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이나 항상 궁중의 나무에서 우니, 무엇이 족히 괴이하겠는가? 물괴는 오래되면 저절로 없어진다" 했다. 유지가 아뢰기를, "청컨대 화포로써 이들을 물리치소서." 하니, 임금이 응하지 아니했다. _<성종실록>(197권) 1486년 11월 10일(p.123)


중종 시대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진짜 괴물 이야기가 나온다. 방구(크고 두터운 개)같은, 망아지만 한 짐승이 궁궐 안을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일명 수괴(짐승이 얽힌 괴상한 것)! 영화 <물괴>가 바로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다.


이처럼 <조선왕조실록>에는 인요물괴(줄여서 요괴), 즉 사람 중에 요사스러운 것이 나타나고, 물건 중에 괴상한 것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상당수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후대의 이야기꾼들이 조선을 배경으로 한 괴물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도 별일은 아닌 것이다. 누가 먼저 냄새를 맡았는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부지런하고 똑똑하다.


게임이나 소설을 기획하다 보면 한국의 괴물 이야기를 찾아볼 때가 많다. 서양의 괴물들은 정리된 게 종종 있지만 한국의 전통 요괴 이야기는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던 중 <한국 괴물 백과>라는 책이 눈에 띄어 몇 년 전 고민도 하지 않고 샀던 기억이 있다. 알고 보니 이 책은 SF소설가 한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정리하던 괴물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이분이 <한국 괴물 백과>를 쓰면서 아쉬웠던 점을 보강해 새 책을 한 권 내놓는다. 그게 바로 이 책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이다.


놀라운 건 이 SF 작가가 바로 <토끼의 아리아>의 주인공 김재식 님이었다는 것이다. 한 작가의 책을 세 권이나 읽었음에도 그게 같은 작가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니. 기연이라면 기연이라 부를만하다.


이 책은 <한국 괴물 백과>를 조선 시대로 한정하고 각각의 괴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덧붙였다. 흥미진진한 소설은 아니지만 과거를 배경으로 한 괴물 이야기의 근원을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참고할만한 내용이 많다. 좀 다른 얘긴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조선왕조실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는 인터넷에서 전체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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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18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킹덤이 그렇기 인기라서 봤지만 저는 솔직히 별로 재미없더라구요. 그래서 이 책도 시큰둥하게 넘겼는데 한깨짱님 글 보니 궁금해집니다. ^^ 조선왕조실록은 정말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보고라는 생각이 또 드네요

한깨짱 2021-04-19 19:06   좋아요 0 | URL
저도 도무지 킹덤이 왜....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은 정독할 책이라기 보다는 이야기 짓는 사람들이 참고 도서로 옆에 두고 볼 책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조선의 최대 유산은 조선왕조실록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