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수학 - 수학이 판결을 뒤바꾼 세기의 재판 10
레일라 슈넵스.코랄리 콜메즈 지음, 김일선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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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예술은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너무 많기 때문에 죽는다." 고 말했다. 우리가 점점 숫자와 통계, 수학에서 멀어지는 이유도 어쩌면 이 세상에 숫자가 넘쳐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디를 둘러봐도 숫자 투성이다. 자기 믿음을 설득하려는 사람도, 그 믿음을 반박하려는 사람도, 심지어 인생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람도 숫자와 확률을 이용한다. 문제는 이런 숫자들을 모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숫자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목적에 봉사한다.


이런 이유로 모든 숫자와 정보를 거부할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든, 부동산 거품이든, 실질 GDP 성장률이든 모두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근거하여 우리 삶을 선택해야 할까? 직관? 신앙? 이런 것들은 과연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까?


결론은 우리가 숫자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숫자를 믿든 믿지 않든 이 세상은 주장의 타당성을 따지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숫자를 지목한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잘 이해하지 못한 경우 우리 삶은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법정에 선 수학>의 주제다.


이 책은 통계학과 확률이 법정에서 활용된 사례들을 소개한다. 통계는 무죄를 유죄로, 유죄를 무죄로 바꿔놓기도 했다. 그 사건이 실제로 무죄였냐 유죄였냐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 말은 숫자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독자들은 특히 숫자가 잘못 사용됨으로써 무고한 시민의 삶이 완전히 파괴된 몇 가지 사례에 큰 분노와 공감을 느낄 것이다. 실제 이 책은 통계와는 별개로 그 재판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어 몰입감을 선사한다. 잘못된 확률 계산과 거기서 오류를 찾아내지 못한 재판부. 이는 한 인간의 삶을 끝장내기엔 너무 초라한 조합이다. 결국 재판부의 실수가 드러나 재심을 받는 사례도 있지만 이미 모든 게 다 망가지고 난 뒤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럼에도 이 책은 법정에서 숫자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 수단은 수단일 뿐이다. 문제는 그 수단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수학이 법정에서 유용한 도구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건 오류를 없애는 일이다.


수학을 동반한 주장엔 늘 눈속임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선술 했듯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처음엔 여기서 진실을 파악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지만 조금만 훈련하면 주요한 눈속임 기술들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누구나 알아야 할 주요 사례들을 친절히 제시한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중복되는 내용들이 많아지지만, 이 책의 취지를 달성하기엔 모자라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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