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한국 근현대사 - 개정 증보판 페이퍼로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이우형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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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차마 맨 정신으로 볼 수 없는 비극으로 가득하다. 제국의 황제는 치세 내내 무능으로 일관했고 국가에 대한 이상도 현대적이지 못했다. 그저 자기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만 연연해 황제와 황후, 대원군은 나라의 기틀을 다질 시간을 허비했다. 힘이 없으니 빌려오기 바빴고 이는 누가 이겨도 비극으로 끝날 운명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친일파를 혐오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라를 팔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청파나 친러파, 혹은 친미파가 권력을 잡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친청파가 승리했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대중화민국의 속국이 되어 신장 위구르인 같은 처지를 당했을 것이다. 친러파가 승리했다면? 현대 러시아는 국제법이나 윤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독립국가를 침략해 강탈과 학살을 일삼는 국가다. 우리는 쓸개에 빨대가 꽂힌 곰 신세가 됐을 것이다. 친미파의 승리는 가정할 것도 없다. 이승만 정권이 몸소 그 결과를 보여줬으니까.


일제 강점기 시절 사상과 노선의 차이로 대한민국은 단일 정부를 갖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미국 정보부와 연합해 독립군이 한반도를 직접 타격할 계획을 세웠으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해 실행도 전에 전쟁이 끝나버리고 만다.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이 승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치에게 나라를 완전히 빼앗기고도 전후 승전국이 되어 국토를 재건한 프랑스를 보면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알게 된다. 물론 프랑스가 보유한 병력 규모와 국제적 위상은 대한제국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었기는 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군을 운영하며 일본이 세운 만주국을 괴롭히거나 나아가 국경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독립군은 연합군의 요청으로 동남아시아 전선에 파견, 일본군과 싸웠지만 전후 승전국으로 인정받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실 나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을 볼 때보다 일본의 패망 후 조국이 맞닥뜨린 현실에 더 비참해진다. 연합국은 해외의 독일 자산을 압류해 본인들이 가져갔다. 조선에 남은 적산도 그렇게 처리돼야 했다. 하지만 알짜는 미국이, 대다수는 친일파들이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국정의 효율화를 꾀했던 미군정은 총독부에 빌붙어 먹은 친일파들을 대거 재임용한다. 최근 파묘 논란을 일으킨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최초의 한국 대장)과 국부라 칭해지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도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독립군을 잔인하게 토벌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레드 컴플렉스에 빠진 미국에 그런 걸 따질 이유는 없었다. 냉전의 한기는 패전국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을 분단하게 만들었으며 미국은 일본을 보호하고 원조를 통해 경제를 재건해주기까지 한다. 대한민국의 친일파들은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온 생애를 걸고 반공의 가면을 뒤집어쓴다. 이것이 바로 틈만 나면 빨갱이를 입에 올리는 대한민국 정치의 근간이 된 것이다.


이 책은 반복되는 띄어쓰기 오류를 수십 페이지에 걸쳐 자행할 만큼 편집이 엉망인 책이지만, 말 그대로 근현대사를 하룻밤에 끝내기엔 괜찮다. 편향을 더하지 않기 위해 보인 노력도 훌륭하다. 그러나 지루함에 있어선 가히 교과서와 맞먹는 수준이다. 새로운 사실이나 관점을 더하는 대신 요약에 집중한다. 그러니 마음속에 분노를 충전해 인생을 다잡으려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그러고도 남을 만큼 처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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