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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 범죄심리학자 이수정과 프로파일러 김경옥의 프로파일링 노트
이수정.김경옥 지음 / 중앙M&B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범죄 유형을 크게 6개로 나눠 설명한다. 사이코패스, 성범죄, 정신질환 성격장애, 충동조절장애, 그리고 한국형 범죄. 각각의 유형이 무를 자르듯 명백하게 갈리는 것은 아니다. 범죄자들은 교집합을 이루며 서로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 있다.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는 사건의 경위와 과정, 결과를 상세히 다룬다. 저자들이 직접 범죄자를 마주하여 얻어낸 면담 기록도 있다. 따라서 피해자의 고통에 쉽게 공감하거나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들, 폭력이 불편한 사람들은 이 책을 멀리하는 게 좋다.
우리는 왜 범죄자에게 관심을 가질까? 단순한 호기심? 아니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지적 노력? 쏟아지는 범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전자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안에 갇힌 신기한 동물을 보는 기분. 경쟁이 심한 쇼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더 강한 자극을 찾기 마련이고 강력 범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가 된다. 게다가 시청자는 가해자를 있는 힘껏 미워할 수 있다. 잔악무도한 범죄자에게 자비는 불필요한 법. 적나라한 분노를 표출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분노가 향하는 대상이 이견 없는 악마여야 한다. 엔터테인먼트는 범죄자를 순수악으로 그리기가 쉽다.
그렇다면 순수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악마와 인간을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연쇄살인범이나 강간을 저지른 범죄자들을 보면 의외로 잘 생긴 외모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은 처음 보는 범죄자의 차에 선뜻 올라탔다. 그들이 바보여서가 아니다. 범죄자들이 일반인보다 더 나은 용모와 에티켓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범죄자와 우리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자극에 대한 반응에 있다. 범죄 행위가 발생하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강한 심리적 스트레스 상황이 놓인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는 살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그들 모두가 범죄를 일으키는 건 아니다. 이렇게만 보면 역시 범죄자와 일반인은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우리가 그 심리적 압박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나를 믿어준 가족과 친구,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또래 모임, 밑도 끝도 없는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주던 선배, 그리고 연인.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당신은 단 한 번도 부모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다.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맺는 건 항상 어려웠다. 친구들 사이에서 겉돌기 십상이었고 그 탓에 나쁜 길로 빠져들었다.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그나마 남아 있던 형제와 친구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를 믿는 것도, 믿음을 줘본 적도 없다. 이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고 내 인생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범죄자가 만들어지는 거라면 우리는 그 과정을 추적해 볼 수 있다. 당신이 최고급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의 공장장이라고 생각해 보자. 제품이 특정 과정에서 반복적인 불량을 낸다면 그 스마트폰을 향해 애초에 고장이 날 제품이었다 말하고 폐기할 것인가? 아마 불량이 난 이유를 찾고 개선하여 다음 공정에서는 동일한 오류가 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다. 범죄자들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 또한 이해하게 된다. 내 주변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없는가? 혹은 나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지는 않은가? 동일한 상황에 특정 스트레스가 발생한다면 나나 당신도 그들과 똑같은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자각. 이것이 바로 범죄율을 낮추는 유일한 열쇠가 아닐까?
우리 세계는 범죄를 줄이는 방안으로 강력한 체벌을 제시해 왔다. 범죄를 저지르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체벌을 만들어도 이는 사후에 취해지는 조치일 뿐이다. 한번 일어난 범죄는 돌이킬 수 없다. 피해자는 물론 그 짓을 저지른 범죄자까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범죄자를, 그리고 범죄가 발생하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일을 잘 해낸다면 저질러진 범죄를 수습하고 범죄자를 가둬두는 대신 애초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놈들 따위 전부 죽여버리면 그만이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라고 하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 무엇이 우리를 더 이롭게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