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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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이 거식적 관점에서 본 건축 이야기라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미시적 관점의 건축 이야기다. 이 책엔 도시와, 거리와, 광장과, 교회, 공원,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살면서 필연적으로 관계 맺을 수밖에 없는 공간. 그 공간이 왜 그런 모습을 갖게 됐는지, 그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읽다 보면 내가 세상의 것들을 얼마나 모르고 살아왔는지 실감이 든다. 유현준 교수 특유의 포괄적 시선과 다르게 보기는 인식의 전환과 고정관념의 파괴라는 책 읽기 본연의 즐거움을 채워준다.


이 책은 1장부터 15장까지 하나의 주제로 관통하는 구성을 취하지 않는다. 도시가 품은 공간들 중 흥미로운 것들만 뽑아 마치 도슨트가 유명 그림을 설명하듯 그것들을 해설한다. 서울과 세계의 유명 도시에서 시티 투어를 도는 것 같다. 바쁜 사람이라면 꼭 그 모든 투어에 참석할 필요는 없다. 목차에 실린 스케쥴을 확인한 뒤 구미가 당기는 투어에 신청하면 그만이다. 여기서 몇 가지만 얘기해 보자.


우리는 왜 퇴근 후 TV 앞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걸까? 물론 요새는 TV의 자리를 스마트폰이 대체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집은 고정된 공간으로 매일 매일 똑같은 모습이다. 그중 유일하게,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는 게 TV와 스마트폰 화면이므로 그 앞에서 넋을 놓은 채 '멍'을 때릴 수 있는 것이다. 선사 시대에 이런 역할을 했던 게 바로 불이었다. 원시 인류는 육체적으로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뒤 동굴로 돌아와 중앙에 피워 놓은 불을 보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최근 각광받는 '불멍'은 트렌드가 아니라 태곳적부터 우리 DNA에 담겨있던 근원적 욕망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모텔이 많은 이유는 뭘까? 경제와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자의식과 개인주의는 발달한다. 필연적으로 사적 공간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성인이 돼도 결혼 전에는 부모와 같은 집에 사는 우리 형편상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것과 젊은 세대들이 집을 사기 전 차부터 flex 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집값이 오르면 더더 아끼고 아끼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개인의 노력으로는 목표를 이루는 게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 돼버리자 대체제를 찾은 것이다. 차는 외부와 차단된 개인 공간이자 이동성까지 갖춰 내 사회적 맥락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사적 공간이 된다. 그렇다고 섣불리 자동차 업계와 숙박업에 투자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갈수록 늘어나는 1인 가구의 증가와 이 사업들의 성장이 반비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이처럼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엮어 하나의 납득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읽고 있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유현준 교수가 우리의 공간에 대해 이토록 폭넓은 사고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신이 건축을 예술과 과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종합된 복합 학문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시멘트를 부어 단순히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것 이상의 일. 공간은 시대의 맥락에서 외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고, 시대란 바로 지금 우리와 닿아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통섭의 관점에서 우리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면 건축을 공부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모든 선생이 유현준 교수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건 아닐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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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27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이 이런 내용이었네요. 관심이 가서 보관함에 찡박아두기만 했는데... 좋은 내용 소개 감사합니다. 곧 봐야겠어요. ^^

한깨짱 2020-10-02 18:06   좋아요 0 | URL
네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해요. 주변의 익숙한 공간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