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과 싸운 여성들 - 제2차 세계대전의 여성 영웅 이야기 생각하는 돌 23
캐스린 J. 애트우드 지음, 곽명단 옮김 / 돌베개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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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만행에 분개하는덴 여남의 구분이 없었다. 나치의 유럽 침공을 저지한 수많은 영웅들 중엔 여자와 남자가 함께 있었다. 물론 그녀들이 수류탄과 카빈 소총을 들고 노르망디 해변으로 돌격해 간 것은 아니다. 여성들은 이미 나치가 점령한 땅에서 남자들이 하기 힘든 일들을 맡아 용감하게 수행해냈다.


여성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은 영웅이 될 수 없다는 사회적 편견 덕분이었다. 어떤 여자가 감히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때문에 군인들은 여성에 대한 감시와 경계를 소홀히 했다. 유럽인들에게 그 편견은 축복이었다.


여성이 해낸 일들은 크게 다음과 같다.


하나, 격추당한 전투기 조종사들을 구출하는 일. 여성은 조종사들에게 민간인 복장을 입히고 숨겨줬다 직접 개척한 경로를 이용해 연합국으로 인도했다. 전투기 조종사는 양성하기까지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한 핵심 중의 핵심 자원이다. 그들을 살리는 것이 곧 제공권을 장악하는 일이기 때문에 현대전에선 파라레스큐같은 최정예 특수부대들이 이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둘, 첩보원이 되어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하는 일. 건장한 남자가 전시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 군인들의 눈에 띌 수 밖에 없지만 여자들은 계란과 야채가 담긴 장바구니 하나만 들어도 배회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것. 집안일은 온전히 여자들의 몫이었고, 가족을 굶기는 건 '올바른 여자의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올바른 여자들은 군부대의 위치와 규모, 이동 사실을 열심히 수집해 연합국으로 전송했다.


셋, 무기와 레지스탕스, 그리고 유대인을 숨겨주는 일. 여성은 집안에 땅굴과 비밀 장소를 만들어 작전중인 레지스탕스와 탈출한 유대인을 숨겨줬다. 일부는 무기 창고 역할도 겸했는데 이는 후방 공작원들의 침투와 임무를 훨씬 쉽게 만들었다.


넷, 지하 저항 운동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 나치는 외부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민간의 모든 라디오를 압수해갔다. 그런 그들에게 지하 저항 조직의 공작은 클 골칫거리였다. 그들은 독일군과 연합군의 동향을 전단지로 제작해 뿌리거나 도시의 벽에 낙서를 했다. 독일군이 연전연패를 거듭한다는 사실, 연합군이 몰려온다는 정보, 분연히 일어나 나치와 싸우자는 호소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독일군의 내부 통제를 더욱 힘들게 했다. 전방에 가야 할 병력은 후방에 남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만 했다.


다섯, 요인을 암살하고 주요 군사 시설을 파괴하는 일. 이 일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가장 극단적으로 활용한 경우다. 당신이 점령국의 요인이라면 굳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남자와 미소를 짓는 여자 중에 누굴 더 경계하겠는가? 여성의 총은 남성의 것보다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여섯, 종군 간호사 또는 기자가 되어 부상당한 군인들을 돌보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일. 나치에 대한 분노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방법은 군에 입대해 총알을 쏟아 붓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에게 전투 병과는 허용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은 간호사나 기자가 되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직접 총을 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일들을 해낸 여성들은 전후 연합국으로 부터 수많은 훈장을 받거나 이스라엘 정부가 국제적 의인들에게 수여하는 야드 바셈(이름을 기억하자) 상을 수상한다. 여성이 해낸 일들은 아무도 모르는 음지에서 조용히 수행되어 잊힌 일이 아니라 모두 '공인'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늘날 그녀들의 이름을 모르는 이유는, 우리가 그 이름들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룬 업적이 남자들의 것에 비해 작고 하찮기 때문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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