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징비록 (패브릭 양장 에디션) - 국보 132호 오리지널 표지 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류성룡 지음, 김문정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고르라면 일제강점기와 임진왜란이 아닐까 싶다. 공교롭게 둘 모두 왜의 소행인데,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질투와 야욕은 실로 역사적 뿌리가 깊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는 책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 역시 <난중일기>다. 성웅 이순신이 왜란 당시 쓴 일기로 고위 공직자의 삶과 업무를 이보다 더 자세히 알려주는 책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솔직히 재미가 없다는 데 대부분 동의를 할 것이다. <난중일기>는 일기보다는 일지에 가까운 책이다. 문장은 단순하다. 지나치게 단순하다. 이순신은 한자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문학도보다는 공학도에 가까운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확실히 감정과 소회가 배제된 차가운 책이라는 걸 느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징비록>이 있다. 이순신을 수군통제사로 전격 발탁한 서애 류성룡의 역작.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이 책은 말 그대로 한탄과 후회, 분노와 일갈로 가득하다. 류성룡은 당시 조정의 넘버 2인 좌의정에 있었지만 이순신은커녕 자신의 좌천도 막지 못했다. 낙선한 정치인만큼 비루한 존재가 없는 법인데, 류성룡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전장을 누비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 나간다. <징비록>은 그 과정에서 겪은 울분과 분노를 그대로 쏟아낸다.


그래서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이 정도 흡입력을 갖춘 비문학 도서는 독서 인생을 통털어도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당시의 조정, 요즘 말로 하면 청와대 내부에서 어떤 말과 결정이 오갔는지를 확인하는 건, 어떤 말로도 그 흥분을 표현할 길이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은 당시 이순신의 천거와 좌천, 활약과 명성에 관해 엄청난 이야기가 있었을텐데 이상할 정도로 기록이 적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천거한 인물인 탓에 그에 대한 평가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칭찬이 과하면 자찬이 되고, 비판이 과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적 측면에서의 기록들이 부족한 것은 많이 아쉽다. 이는 문관의 한계로 볼 수도 있지만, 전문 영역이 아닌 것에 이러쿵저러쿵 언급하지 않는 겸손함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둘 모두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 고안한 군사 전술을 딱 한 번 논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군사 전문가의 책을 읽고 자신의 방법이 언급되는 것을 보고 매우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게는 이게 전형적인 아마추어의 기쁨으로 보였다.


역사를 공부하는 내내 임진왜란의 승리는 늘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역사책은 단순히 이순신의 활약으로 퉁치고 마는데, 그게 실제로 어떤 전술, 전략적 효과를 가졌던 걸까? 왜는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고 개전 두 달 만에 평양성까지 함락했음에도 손바닥만한 땅 한 조각 얻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설령 100만 대군이 몰려왔다 해도 한 나라로 치면 많은 수가 아니다. 요즘으로 치면 수원시의 인구 정도인데, 이만한 인원으로 전 국토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죽지세로 평양까지 몰려왔지만 그만큼 전선은 길어졌다. 후방을 완전히 점령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전쟁은 빠르게 끝나야 했다. 본토와 후방에서 올라오는 보급이 원활했다면 장기전도 가능했겠지만 '이 길목을 이순신이 차단' 한 것이다. 육로 보급은 운반 자체도 힘들고 습격을 막기 위해 상당한 병력까지 투입돼야 한다. 운송 병력을 더 투입하면 안전하게 보급은 가능하겠지만 그 인원이 먹고 쓰는 물자로 인해 효율은 상당히 떨어진다.


그래서 수로는 중요했다. 아니, 치명적이었다. 수군을 무시하면 이순신은 병력을 상륙시켜 후방의 육군과 합세해 왜군을 상하로 압박할 수도 있었다. 왜군의 빠른 진군이 가능했던 것은 군대가 강했던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이 싸움도 하기 전에 도망을 쳤기 때문이다. 믿을만한 장수가 있다면 흩어진 군대와 국민은 쉽게 뭉쳤다.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개전 초기의 허무한 패배들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고위 관리들의 무능력이 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관리들은 전쟁이 나자마자 도망쳐 숨었다. 말을 버리고 평민의 옷을 훔쳐 입은 뒤 험한 산길을 걸어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단 병사들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명망 높은 장수들도 별 게 없었다. 조선의 장수들은 대부분 북방의 여진족을 상대로 실전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거친 북쪽의 오랑캐를 상대하던 내가 고작 왜놈들을 못 이기겠느냐는 자만이 왜군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신립은 좁은 산길에서 왜군을 맞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드넓은 평야에 진을 친다. 아마 태어나서 조총의 위력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의 마지막 희망은 그렇게 충주에서 사라져 버린다. 신립은 패배한 장수답게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대장군다운 기개를 떨친 그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까?


이러한 사실들은 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준다. 훌륭한 전략과 완벽한 전술은 두번째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능력 있는 리더다. 선조는 왜군이 온다는 소문을 듣기 무섭게 피난을 갔다. 자식들은 전장으로 뛰어 들어가 군대를 모집하고 포로로 잡혔음에도 말이다. <징비록>을 보면 당시 땅에 떨어진 왕명의 하찮음을 읽을 수 있다. 국민의 마음 한편에는 조선이나 왜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생각이 들만했다. 누가 점령을 하든, 우리의 삶은 그대로일 것이다라는. 이런 나라에선 어떤 국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순신의 존재는 우리 민족의 큰 복이 아니었나 싶다. 이순신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우수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우대했다고 한다. 말단 병졸이라도 누구나 장군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는 것을 보면 상벌에 대한 아주 명백한 기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양반이, 그것도 삼도의 수군을 통제하는 최고위 장군이 평민의 의견을 귀담아듣는 건 같은 양반들이 보기에 우매하고, 상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 파격들이 결국 그를 두 번이나 백의종군하게 만든 이유가 아니었을까?


<징비록>에는 배우고, 또 배울 것들로 가득하다. 연말을 이 책과 함께하면 새로운 다짐과 깨달음이 당신의 새해를 밝게 비출 것이다. 아무튼 우리 세대의 삶은 위기가 아닌 적이 없고, 늘 패배의 공포로 가득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