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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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의 클리셰 중 하나는 대단히 철학적인 어린 아이가 등장하는 것이다. 소년 또는 소녀의 시선으로 세상의 부조리(특히 어른의 허위와 가식)를 파악하고 거기에 촌철살인의 비평을 내놓는다. 깜찍하다. 같은 어른이 말하면 기분이 나쁠 상황도 애들이 말하니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래도 클리셰는 클리셰인지라 설령 그 소설이 그런 작법을 세상에서 제일 처음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독자가 항상 동시대에 그 책을 읽는 것은 아니므로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 피로도를 감쇄하기 위해 화자를 동물로 만들 수도 있는데 이 방법도 역시 너무나 많이 알려진 탓에 이제는 변주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참고로 화자가 고양이인 경우 소설은 꽤 잘 먹힌다).


프랑스 소설의 두번째 클리셰는 화자들이 늘 사색에 잠겨있는 탓에 줄거리를 진행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혼잣말에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사색의 결과를 쏟아낸다. 내면의 마음 상태나 생각의 결과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말그대로 그들의 속마음을 낱낱이 '들려준다.' 어떻게보면 지나치게 노골적이라고 생각되는 이런 서사 방식의 한계는 엄청나게 센스있는, 만연체의 현학적 문장으로 커버가되는데 그 탓에 소설을 훨씬 더 수다스러워진다.


서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이런건 소설이 아니야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박힌 주옥같은 철학의 편린들을 보면 아무리 서사가 빈약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소설을 쉽게 엉터리라고 매도할 수 없는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 문학공모전의 원고를 심사 중인데 자신의 취향과는 맞지 않지만 촌철의 명문을 한 페이지에 한두개씩 발견한다. 당신은 이 사람에게 문학상을 줘야할까?


프랑스 소설의 세번째 클리셰는 자기 문화에 대한 심각한 불신이다. 이는 사실 문화우월주의의 발로이기도 한데(아이러니하게도) 왜냐하면 이런 불신이 남들은 우리 문화를 우아하고 세련됐다고 칭송하지만 내가 볼땐 거추장스럽고 허위 가득한 위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언제 니들 문화가 우아하다고 말했지?). 이런 태도는 종종 아시아 문화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지곤하는데 특히 일본 문화에 대한 매료가 일반적이다.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생선 한 조각을 요리하는데도 별의별 조리법과 소스, 수많은 식기, 끔찍할 정도의 설명이 등장하는 프랑스 요리에 비해 칼로 한번 쓱, 밥알을 하나, 둘, 셋, 네번 만에 쥐어 완성되는 스시는(게다가 맛도 죽이잖아) 거의 마법처럼 보일 수 있다. 외국 문화를 대하는 태도는 이처럼 피상적이다. 그러다보니 자기들이 보고싶은 겉모습만 쏙쏙 뽑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궁극의 문화 마냥 이상화 된다. 고개를 숙이는 인사법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겸손을 의미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그 정중함에 본인의 영역에 쉽게 타인을 들이지 않으려는 경계심과 에고이즘이 담겨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할텐데 말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대단히 센스있는 문장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엄청난 철학자들이지만 허위와 가식이 충만한 보통 프랑스인들은 이들의 진면목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들을 발견하는건 그들의 아파트에 새로 이사온 한 명의 일본인이다. 이름은 오즈 카쿠로(일본의 미의식을 전세계에 알린 영화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사촌이라는 설정이다). 그는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통해 자기 집에 미닫이 문을 달았고(얼마나 우아한가!) 메밀 소바와 교자를 직접 해먹으며(한번도 본적 없는 음식!) 다양한 분재와(미의식의 극치!) 고양이를(선인은 늘 고양이를 기르지) 기른다. 물을 내리면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나오는 변기를 갖고 있다. 오즈는 마치 야만의 세계 프랑스를 교화하러 온 동방의 진인처럼 그려진다. 만약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를 점령한게 독일의 나치가 아니라 일본군이었다면 그들이 이토록 일본을 숭배할 수 있을지,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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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2019-05-18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사람들도 그렇게 프랑스를 흠모했으니, 남의 떡이 커 보이는건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깨짱 2019-05-19 10:46   좋아요 0 | URL
일본은 뭐 자격지심과 사대주의의 왕국이죠. 자기들이 아시아의 백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