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
애슐리 엘스턴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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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첫 번째가 중요하다. 거짓말은 카드로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모든 게 무너진다. 이유를 만들어 붙일수록 기둥은 무게를 더한다. 끝까지 속이려면 아무도 뒷 이야기를 물을 수 없게 깔끔한 거짓말을 던져놓은 뒤 끝까지 입을 다무는 것이다. 그러니 거짓말은 역시 첫 번째가 중요하다.


소설의 배경은 미국의 남부. 할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젊은 남자에게 여자 하나가 붙었다. 남부의 분위기가 원래 그런지 남자에게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동네 친구들이 가득하다. 다들 유복하고, 시간이 많고, 그래서 자기 베프에게 느닷없이 다가온 이 여자를 경계한다. 여자의 이름은 루카. 남자에게는 애비 포터라 불린다.


본명을 숨겨야 할 이유가 뭘까? 여자는 유산을 노리고 들어온 흔한 사기꾼일까? 파보니 건실한 청년인 줄만 알았던, 그러니까 우리가 미국인이라고 하면 떠올릴법한, 고속도로 대형 옥외 광고판의 흰 이빨을 드러낸 채 밝게 웃는 전형적 금발 미남이, 사실은 남부의 숨겨진 어둠을 지배하는 실력자인 것 같다. 그렇다면 루카의 접근을 사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루카는 임무를 받은 것이다. 임무를 받았기에, 그녀는 애비 포터가 된 것이다.


다음 질문은 누가 그 임무를 줬냐는 것이다. 건실한 청년의 경쟁 조직? 쿠데타를 위한 내부의 이인자? FBI? 경쟁 조직이나 내부의 이인자가 고객이라면 루카는 프리랜서나 에이전시에 소속된 회사원일 수 있다. FBI가 고객이라면 그녀의 정체는 FBI일 것이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상대할 때는 CIA가 개입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규모도 작고, 또 FBI 같은 국내 요원이 동반하지 않는 이상 CIA는 자국 내에서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 루카가 어떤 사람이면 이 이야기가 더 재밌어 질까?


FBI는 식상하고 프리랜서나 에이전시 소속이라면 좀 판타지 같은 면이 있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는 정말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전직 군인이나 정보부 요원이 전문적으로 약탈, 파괴, 정보를 수집하는 시장이, 정말로 존재할까?


뭐 어쨌든 소설은 꽤 잘 굴러간다. 부분 부분 반전이 있고 완전히 뻔하지는 않게 적당한 긴장과 호기심을 유지한다. 키워드는 배신이다. 더 이상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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