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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에 따랐을 뿐!? - 복종하는 뇌, 저항하는 뇌
에밀리 A. 캐스파 지음, 이성민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월
평점 :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은 명령에 복종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경험적으로 이는 더 이상 증명이 필요치 않은 명제다. 아우슈비츠, 르완다, 캄보디아, 베트남, 광주. 대학살의 서사는 늘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에필로그로 이야기를 닫는다. 아무리 들어도 끔찍한 결말이다.
유대인과 유럽인들이 한나 아렌트에게 단단히 화가 난 이유는 그녀가 나치는 전혀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가스실로 던져 넣으려면 웬만한 마음으로는 불가능해야만 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우리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평시였다면 그는 유능하고 존경받는 정부 관료가 됐을 것이다. 그보다 더 명령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악이 평범함에서 나온다는 아렌트의 말은 틀렸다. 아이히만은 비범했다. 악은 평범과 비범 모두에서 나올 수 있다. 필수 조건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명령에 따르는'것. 머릿속에서 비판적 사고를 제거하는 것.
사람들이 어떻게 끔찍한 명령에 그토록 쉽게 따르는지 연구하는 건 의외로 찬반이 따른다. 우선 반대하는 쪽은 이런 연구가 가해자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개인의 책임을 줄이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혹여나 이 연구가 복종이 인간 본성에 내재된 불가항력적 성향이라는 과학적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 모두가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동일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가해자는 그저 운이 없는 사람, 오히려 연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 복종의 지옥에서도 늘 불복의 영웅들이 존재하는 것 역시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인간의 본성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따라서 이 연구는 결국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복종의 사슬을 끊고 선을 행하는 자유인이 될 수 있을지 밝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를 대학살의 예방주사라고 부르자.
<명령에 따랐을 뿐>이 특별한 점은 이 과정을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명령을 따를 때, 부당한 명령을 이행할 때, 실제로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추적한다는 것이다. 얼핏 들어도 쉽지 않은 연구라 느꼈는데 내용을 보며 확신했다. 정말 쉽지 않다. 안 그래도 재현의 문제로 골치를 썩는 심리학계거늘 뇌파를 측정한다고 동원된 기계, 그 인위적 실험 환경에서 획득한 결과들을 어떻게 다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책의 재미는 핵심 주제를 말할 때보다 오히려 이러한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이리저리 실험을 비틀 때 발생한다. 참 애쓴다. 결과는 비록 녹록지 않더라도, 그 노력에는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