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미아에게 챙겨줄 만한 돈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도시 외곽의 여자 대학 식품영양학과에 다니는 내게는 그 흔한과외도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영양사 시험 준비를 한답시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는다. 가급적 돈을 쓰지 않는 것이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벌이지만 이제는 그나마 쓸 돈도 없다. 돈이 없으면 원래 가난했던 것에서 하루치씨 더 가난해져야하지만 가난에는 그런 산술적인 계산이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는 몇 년치의 가난을 한꺼번에 맞았고 이후로도 몇 달치씩 가난해지고 있다. 가난이란 본래 평생의 가난이 일시에 들이닥치는법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냉동고에서 생선 눈알만 담아둔 비닐봉지를 찾아냈다. 아내가 모아놓은 것이었다. 몸통과 함께 썩어가고 있는 눈알들은 시커먼 구정물을 눈물처럼 머금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어보았다. 물은 나오지 않았다. 수돗물도 끊긴 모양이었다. 냉장고에남아 있던 상한 게 틀림없는 보리차로 봉투에 담긴 눈알을 씻었다. 대부분 눈자위가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그나마 형체가온전한 것을 골라 입에 넣었다. 입 안에 지독한 비린내와 썩은내가 번졌다. 숨을 쉴 때면 내장 깊은 곳에서 비린내가 올라왔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내장이 죽어가면서 풍기는 냄새일지도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간을 들여 썩은 눈알을 천천히 빨아먹었다. 그제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내가 죽은 게 틀림없다는 확신이 갑자기 닥쳐왔다.
소설의 첫 문장들은 시체의 출현을 알리고 있다. "여학생의옷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저수지 뒤쪽의 숲이었다" (「저수지), "시체는 왕피천 동쪽 끝자락에서 떠올랐다. 시체를 걷어 올린것은 젊은 남자였다" (「문득,), "칼라는 거기에 있었다. 무릎을꿇고 고개를 숙인 채였다. 스웨터는 입었지만 허리 아래는 나체였다" (「누가 올 아메리칸 걸을 죽었나), "전화가 걸려온 것은아내가 실종된 지 한 달가량 지나서였다. 계곡에서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신체의 일부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시체들)와 같은방식으로, 시체들이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한다. 이런 소설의서두를 읽으면서 아마 독자들은 스릴러 영화의 첫 장면이나, 탐
를 지옥도로 그려낸다. 이런 측면에서 편혜영의 서사는 일찍이지옥의 세계를 묘사한 단테적 상상력을 연상시킨다.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불길한 사건은 세계의 일부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전체의 종말론적 상황을 압축하고 있다. 사건은 결코 해결되지 않고, 파국은 오히려 확산되며 이 지옥으로부터 빠져나갈 어떤 출구도 인간에게 주어지지않는다.
앞에서의 실종 사건이 주로 도시적인 공간과는 대비되는 어떤 원시적인 공포를 간직한 곳에서 벌어졌다면, 편혜영의 또 다른 소설들은 도시 공간 자체를 괴담의 자리로 만든다. 그곳에서문명 세계는 이미 그 안에 끔찍한 야만을 간직한 공간이다. 「아오이가든」은 어디인가? 시커먼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떨어져 깊이를 알 수 없는 쓰레기 더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역병이 창궐하는 거리의 아파트 단지가 아오이가든‘ 이다. 동물들의 사체와 쓰레기로 가득 찬 도시는 부식되면서 지독한 냄새를풍긴다. 역병을 옮기는 빨간 스카프를 두른 소녀에 대한 흉흉한소문이 떠도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철저한 고립과 공포 속에서살아간다. 그녀 엄마와 살고 있는 ‘나‘의 집에 방문한 ‘누이‘는임신을 한 상태이다. 육체적으로 성장을 정지한 다리를 가진 불
편혜영이 드러내는 세부는 일상적 현실의 공간에서 은폐된 어떤지점이다. 자본주의 문명이란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공간을 제거하고 은폐함으로써 세워진 세계이다. 역겨운 세부의 폭로를통해 편혜영의 미학은 이 문명의 미끈함과 자연스러움을 충격적으로 벗겨낸다.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주체화의 과정과 그 상징 질서 안에서 배제된 더럽고 역겨운 것들의 호출을통해, 법과 언어의 상징적 세계로부터 탈주(脫走)의 틈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독자들은? 왜 이렇게 불편한 소설을 견뎌야 하느냐고? 흥미로운 것은 편혜영의 괴담과 엽기적인 장면들 속에 숨쉬는 강렬한 매혹이다. 이 매혹은 인간 진화의 역사가 건설한문명 전체를 악몽으로 되돌리는 불길한 전복적 상상력으로부터나온다.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삶은, 얼굴을 돌리고 싶은 극단적인 야만의 사건으로 드러난다. 만약 이 끔찍하고 혐오스러운하드고어적 이미지들 속에서 기이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면, 그것은 현대 소설 미학의 낯선 차원을 만나는 두근거리는모험이 될 것이다. 이는 근대 이후의 소설적 상상력의 어떤 ‘끝‘에 해당한다. 이런 ‘끝은 젊은 작가 편혜영에게는 하나의눈부신 문학적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소설의 특별한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웰컴투 하드고어 원더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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