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와 뉴욕주립대(버팔로) 대학원에서 수학했고, 공주사대, 이화여대, 연세대 교수를 역임했다. 1957년부터 비평 활동을 해 왔으며 저서로 유종호 전집』 (전5권) 외에 「시란 무엇인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다시 읽는 한국 시인」, 「나의 해방 전후』, 『그 겨울 그리고 가을』 등이 있다. 『파리대왕」, 「제인 에어』, 『그물을 헤치고 등의 번역서가 있고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인촌상〉, 〈만해학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예술원 회원이다.
고서점과 함께 가난한 우리들에게 문화의 창구가 되어 준 것은 극장이란 이름을 붙인 영화관이었다. 개봉관으로 수도극장과 단성사의 광고가 가장 눈에 잘띄었고 을지로의 중앙극장과 국도(都)극장이 뒤를 따랐다. 돈암동의 동도(東都), 을지로 가의 계림), 종로4가와 5가 사이의 평화, 용산 쪽의 성남(城南) 등 변두리 극장은 가난한 학생들이 흔히 찾던 곳이다.
2차 대전 직후 연합국의 공동 점령하에 있던 오스트리아 수도빈을 무대로 한 이 영화는 텔레비전으로도 자주 방영되어 우리모두에게 친숙하다. 스릴과 서스펜스 넘치는 줄거리, 호화 배역, 도발적인 대사, 쉬 잊히지 않는 가지가지 영상미, 수상함과 애틋함을 함께 풍기는 치터(zither) 음악 등 어디 하나 빈구석이 없다. 완전히 관객을 압도하는 박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고전 비극의 상연 시간은 대충 두 시간이다. 고전적 흑백 영화의 길이도 두 시간이다. 중국이나 우리 쪽의 시간 단위도 두 시간이다. 두 시간은 인체 리듬과 밀접히 연관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는 다소 지루해진다. 인생 유전(人生流轉)」이나 전쟁과 평화는 그 점에서 예외적이다. 작고한 시인 김수영이 인생 유전」을 혹평하는 글을 남겨 놓고 있다. 「인생 유전은 시시한 영화다. 그 제목부터가 고색창연하였고 내용도 구태의연하다. 나는 이 종류의 불란서적 리얼리즘을 극도로 싫어한다. 결국 인생 유전」은 불란서적 영화 협잡이다. 그것을 모르고 아직도불란서 영화라면 모두가 예술 영화이며 일류 영화라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나의 주변에 있다는 사실은 나를 질식시킨다.
상이 고성에서 본 것은 정말로 마리안느인가? 아니면 고성 실내벽면에 있던 초상화가 빚어낸 환각 현상인가? 즉 설화에 나오는 ‘살아 있는 초상화‘ 모티프의 변형인가? 부활절 때 읍내에서 본흑색 승용차 안의 소녀는 정녕 마리안느인가? 커튼으로 차창을가린 것은 누구인가? 모든 것은 급격한 환경 변화로 말미암은심약한 사춘기 소년의 신경 쇠약이 빚어낸 일장춘몽의 드라마인가? 어디선가 들었던 설화를 무의식의 차원에서 제 얘기로 각색한 것인가? 우리는 이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세상사가 얼마나 될 것인가? 환상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현실 이해가 과연 가능한가? 이 영화에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 것은 우리네 청춘이 너무나 황량했기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누구나 삶이란 흑백 영화 속에 제 청춘의 마리안느를 한두 사람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구경을 위해 극장을 찾는 일은 없다. 대개 케이블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내가 마지막으로 극장을 찾은것은 지옥의 묵시록」을 보기 위해서였다.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 밑그림이 되어 있는 데다가 말런 브랜도가 나온다 해서 가본 것이다. 고성능 음향 장치 탓인지 헬리콥터 소리가 너무 요란해 더리가 아팠다. 늙고 비대한 브랜도가 엘리엇의 시를 읽는 장면을 포함해 진진하고 충격적인 영화였지만 젊은 날의 그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 그를 처음 본 것이 유명한 워터프런트 에서다.
서부 영화치고 방계에 속하는 「인」이 관객의 기억에 오래남아 있는 것은 독특한 시정(詩情) 때문일 것이다. 자기의 과거나 솜씨를 밝히지 않고 정의로운 소임을 말끔하게 끝낸 후 표연히 사라지는 나그네 청년의 애수 띤 매력 때문일 것이다. 꼬마를위시해서 독특한 허스키 목소리의 진 아서, 용기와 뚝심으로 개척 농민의 견실한 행보를 보여 주는 헤플린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뒷날 그는 템페스트」에서 러시아의 농민 반란 지도자인 푸가초프 역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시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가 쇠사슬에 발을 묶인 채 층계를 오르는 마지막 인상적인 장면을 아는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자세한 것은 다 잊어버렸지만 묘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대목이 있다. 한 작중 인물이 바흐의 음악을 칭송하면서 바흐의 음악에는 자기연민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음악에 대한 언어적 논평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여서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묘하게 잊히지 않는다. 노숙자의 입에서 나와서 특히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그럴듯한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흐를 들으면서 가끔 이 대목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러고보면 바흐뿐 아니라 종교 음악의 대부분이 자기연민과 거리가먼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 영화 시리즈가 끝난 후 일본 영화에 관한 세미나도 열렸다. 구좌익이고 ‘대중문화 연구자로 알려진 고령의 드와이트 맥도널드 Dwight Macdonals)가 뉴욕에서 날아와 참석했다. 자기가 구경한 몇 편의 일본 영화, 가령 「도쿄 이야기』 같은 것을 보며 제인 오스틴 소설을 상기했다고 그가 발언한 것이 기억에남아 있다. 나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문호인 나쓰메 소세키가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고 평가했다는 것도 수긍이 간다. 섬세한 심리 묘사 같은 것이 일본 소설에서도 빛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를 보면서 우리 영화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다시 했다. 이따금 케이블 방송을 통해 보게 되는 최근의 일본 영화는 많이 타락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옛날에 보았던 것이 엄선된 수작이었다는 것이 그러한 느낌을 촉발하는 면도 있을 것이요, 웬만해서는 감동받지 못하는 나이 탓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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