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의 전환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로써 1995년부터 민영화를 포함한시장 자유화 정책들이 추진되었다. 이렇게 보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된 것은 1995년이라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에 부분적인 시장 자유화 정책이 시행되었기에 일부 학자들은 이때부터 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1980년대의 자유화 정책은 국가를 시장으로 대체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국가 개입의 새로운 형태일 뿐, 독점자본과 시장, 그리고노동에 대한 국가의 주도성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즉 1980년대 대내적 자유화 정책은 어디까지나 독점자본(재벌)의 합리화를위한 국가 주도의 정책이었다.‘ 2

경제 원론에 수확체감의 법칙‘이 있다. 생산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투입하는 요소에 비례하여 생산, 즉 수확이 증가하는 속도는점점 더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요소 투입의 효과가 시간이 지날수록처음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법칙을 경제 전체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 산업화 초기에는 조금만 투자를 해도 생산이급격하게 증가하지만, 경제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 초기 단계만큼의 투자 효과에는 미치지 못한다.

세 번째 이유는, 지난 30년간 한국을 둘러싼 세계경제가 개방체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개방경제체제 하에서는 각국의 경제는정부의 미시적인 시장 개입조차도 감시와 견제를 받는다. 각종 정부보조와 지원은 통합된 세계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훼손하는 요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며,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개방경제체제의 일원이 될 수가 없다. 더구나 수출로 먹고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개방체제에 역행하는 정책을 시행할 경우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의자들이 비판하는 독점자본인 재벌을 옹호한다는 점에서는 전혀상반된 입장이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자본과 노동의 갈등 구조에서 찾는 데 반하여, 일부 좌파는 민족적 관점에서 자본을 구분하고 국적을 문제 삼고 있다. 즉 재벌은 독점자본이기 이전에 민족자본이며, 재벌에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먹튀‘만을 일삼아 국부를 유출하는 외국 자본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이같이 진보 좌파는 자신의 이념과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수 우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입장 차이에서 한국의 시장경제를 달리 평가하고 있다. 진보 좌파와 보수 우파 사이의 극단에 있는 주장들은 한국의 시장경제를 보는 시각 차이가 너무도 커서 일반 국민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한다. 진보 좌파의 한쪽 극단에서는 한국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는 시장 근본주의적인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보수 우파의 다른 한쪽극단에서는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시장 개입으로 인해서 한국의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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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유랑의 후예로서 뼈아픈 학대를 무릅쓰고피어난 처절한 망국민의 애처로운 역사 《파친코》

이 작품에 보내진 권위있는 외국 매체와 평자들의 찬사

주도 디아스(퓰리처상 수상작가)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작품이다.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는 재일교포를 중심으로 한 이민자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훌륭한 책이다. 《파친코>는 뛰어난 소설가들 가운데서 화려하게 우뚝 선 이민진의 자리를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지육게리 쉬테인가트(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놀라운 작품이다. 디킨스와 톨스토이의 손길이 일본에서 살았던 20세기 한국인 가족에 스며들었다. 이민진의 《파친코>는 대부분의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가족과 사랑, 돈이라는 주제를모두 다루고 있다. 하지만 시기적절하게 지금까지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한 나라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단단하면서도 고통스럽고 친숙한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이러한 것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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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는 먹어야 한다는 저 발생학적인 욕구가우리의 적이 되어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한때 온갖 다이어트가 실패하는 이유가 고작 배고픔 때문이라는 사실이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허기를 느끼는 것이 인체의 발생학적 구조의일부라면 포만감 역시 생물학적 신호라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제는 배가 고프지 않아."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무엇일까? 틀림없이 음식일 것이다. 똑같이 먹고도 더 오랫동안 포만감을 줄 수 있는 음식이 존재한다면 정말 솔깃한이야기가 아닌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질병을 음식의 탓으로 돌릴수는 없다. 타고나는 유전자는 물론이고 흡연, 스트레스, 공해 역시 질병의 주요한 요인들이다. 그렇지만 지방과 당분은넘치고 섬유질은 부족한 서구식 식단이 심장병과 당뇨병, 암의 발병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연구결과가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알코올처럼 누구나 즐기는 기분 전환용 독소들을 과용하고 나서 느끼는 일시적인 불쾌감쯤은 미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정말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위험들도 존재한다. 현대 의학이 콜레라와 천연두 따위를 이미 정복해 버렸기 때문에 서구에서 가장 문제시되는것들은 심장병이나 암 같은 ‘만성 질병들이다. 과학자들은브로콜리에서 암을 예방해 주는 것으로 보이는 화학 물질을발견했다. 이 물질의 효과는 사람에 따라, 개개인의 유전적특성에 따라 제각각이다.

지방이 적은 살코기에 식물 위주였던 조상들의 식단에는 불포화 지방 또한 풍부했다. 불포화 지방은 정크푸드를 만드는 데 흔히 쓰이는포화 지방이나 ‘트랜스 지방‘ 보다 건강에 좋을뿐더러 풍부한 식물성 스테롤(말하자면 채소의 콜레스테롤)을 제공한다. 또 불포화 지방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준다고도 한다. 그리고 싱싱한 채소에는 체세포 내 손상을 줄여 주는, 항산화제라는 화학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섬유질은 두 유형으로 나뉜다. 물을 흡수하는 가용성 섬유질과 그렇지 않은 불용성 섬유질이다. 땅콩과 씨앗은 가용성 섬유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콩과 완두콩, 렌즈콩 역시마찬가지다. 불용성 섬유질은 주로 쌀, 당근,
오이 등에 들어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가용성 섬유질이 불용성 섬유질보다 발효되기 쉽다.
섬유질을 발효시키면 결장 벽을 통과해 나갈 수 있는 화학 물질이 만들어진다. 이 화학 물질은 물론 우리 몸에 이롭게 쓰이는데, 알고 보면 우리의 총 에너지 공급량의 10퍼센트가 거기서 나온다.

우리 몸은 알코올을 처리해 아세트알데히드라는 약한 독성 화학 물질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은 ‘숙취‘ 라고 일컬어지는 몇 가지 증세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 와중에 생성되는 다른 화학물질들은 간에서 포도당을 방출하는 속도를 떨어드린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저혈당 증세는으리를 어지럽고 나른하게 만들며 집중력을 잃게 한다. 영국에서는 흔히 "술은 뭘로 할래?"라고 듣는 대신 독약은 뭘로 할래?"라고 묻는데,
과연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양학적으로 보면 브로콜리를 따라을 가는아무도 없다. 브로콜리는 섬유길과 칼슘이 풍부한 반면 기방은 걱다. 브로콜리가 공급하는 풍부한 기반산과 비타민 C는 같이 들어 있는 컬분이 몸에 흡수되는 것을 도와준다. 알고 보면 익친 브로콜리 한 컵 분량에 든 칼슘 함량은 우유한 간과 맞먹는다. 또한 걸분은 하루 권장량의10퍼센트, 비타민 C는 하루 권장량이 고스란히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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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우리 삶에서 주어진 결과‘라는 말조차 무한 책임론에 일정한한게를 도덕적으로 부과한다. 주어진 결과 ( lot)‘라고 말할 때 그것은어떤 운명이나, 우연이나, 신의 섭리 등에 따라 정해져 주어진 것이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능력과 선택을 넘어서 행운 또는 은총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우리는 소득과 직업은 능력 문제가 아니라 신의 은총 문제라는 옛 논쟁을떠올린다. 그런 것들은 우리스스로 얻는 것들인가, 받는 것들인가?

두 번째는 구원을 노력과 무관한 선물로 보며, 따라서 신의 전능성을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신이세상 모든 것의 주재자라면 악의 존재 역시 주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이 정의롭다면 그의 힘으로 방지할 수 있는 고통과 악이 왜 발생하도록 두는 것인가? 신이 전능함에도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가정의롭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학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견해가 병립하기란 (불가능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매우 어렵다. ‘신은 정의롭다.‘ ‘신은 전능하다. ‘악은 존재한다.
7

루터의 엄격한 은총론은 분명 반능력주의적이었다. 그것은 선행에따른 구원의 여지를 없애고,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인간의 자유를 일체부정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청교도들 그리고 미국의 청교도 후계자들에게 치열한 능력주의 윤리의식을 가져왔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막스 베버는 그렇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소명으로서 직업이라는 칼뱅주의적 관념이 청교도의 직업윤리에 녹아들면서, 그 능력주의적 함의는 더 이상 제어될 수 없었다. 다시 말해구원은 힘써 얻는 것이며, 직업은 그 수단이지 단순한 증표가 아니다.
베버는 이렇게 본다. "이는 실질적으로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는 뜻이다. 따라서 칼뱅주의자는 때때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 자라고표현하고, 더 정확하게는 자기 구원의 확신자라고 표현한다." 일부 루터파는 그런 견해가 "행함을 통한 구원이라는 교리로의 후퇴"를 의미하며 그 교리야말로 루터가 신의 은총에 대적하는 것으로 배척했노라고 비판했다.16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는 자본주의 정신의 배경이 되었을 뿐만이아니다. 자기 구제와 자기 운명에 대한 책임의 윤리,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 적합한 윤리의식의 기반이 되었다. 이런 윤리의식은 큰 부를 축적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책임과 함께, 자수성가의 어두운 면이라 볼수 있는 ‘불안하면서도 치열한 경쟁‘을 초래한다. 은총 앞에서 느끼는무력감이 주었던 겸손함. 그것은 이제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 데서나오는 오만으로 대체된다.

"운 좋은 사람은 운이 좋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다." 막스베버는 이렇게 보았다. "이를 넘어서, 그는 자신이 그런 행운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납득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그럴 만하다‘고, 그리고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에 비해 그럴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기를 바란다. 그는 또한 운이 나쁜 사람들도 자신의 당연한 업보일 뿐이라고 믿기를 바란다. 20

그러나 진보적 신학자들이 스스로를 구원할 인간 능력을 강조했을 때, 성공은 개인의 능력과 섭리적 계획의 일치를 나타내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의 검리론은 때로는 지지부진하고 때로는 멈추기도 하면서, 그렇지만 확실하게 경제적 현상 유지를 정신적으로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섭리는암암리에 부의 불평등을 지지했다.2

념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보험 요건을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시키는 보험회사의 시스템은 다만 비용-편익 분석상 타당할 뿐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정당하다. 몸이 아픈 사람에 대한 더 중대한 조망은 "선한 삶을 살았다면 건강하리라. 제대로 산 만큼 자기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리라. 그리고 정도만 걸어온 사람은 들어간 비용에 비해 믿을수 없을 만큼 큰 소득을 얻으리라"는 신념으로 잊혀진다. 4

둘째, 역사가 예측한 대로 흘러갈지라도 그것이 곧 도덕적 정당화의기반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옐친이 아닌 푸틴이 역사의 옳은 편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적어도 그가 러시아를 독재적으로 통치하면서 권력을 계속 유지했다는 점을 보자면 말이다. 시리아에서는 폭압적 통치자인 바샤르 알 아사드가 치열한 내전을 거치고도 건재했으며, 그런 점에서 역사의 옳은 편에 서 있던 셈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의정권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킹과 파커의 입을 통해 도덕 세계의 궤적이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는믿음은 부정의에 맞선 싸움을 위한 크고 예언자적인 외침이 되었다. 그러나 똑같은 섭리론 믿음이 약자들에게는 희망을, 강자들에게는 오만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자유주의의 감각 변화에서찾을 수 있다. 민권의 도덕적 긴급성에 대한 감각이 냉전 이후 자족적인 승리주의 감각으로 바뀌어 버렸다.

능력과 은총 사이의 균형은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청교도들에서부터 번영 복음 전도자들까지, 성취의 윤리학은 거의 저항할 수 없을 만클의 수확이었고 언제나 보다 겸손한 희망과 기도의 윤리학, 수혜와 감사의 윤리학을 압도했다. 능력주의는 우리의 은총을 추동하거나 그 자체의 이미지로 개조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은총을 받았다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은 많은 돈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내가 중국 방문때 만났던 학생들의 도덕적 직관, 또한 지난 십여 년간 다수의 중국 대학에서 배양된 도덕적 직관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문화적 차이에도불구하고 이 중국 대학생들은 우리 하버드대 학생들처럼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은 사람들이며, 그 경쟁의 배경에는 치열한 시장사회의 경쟁이 있다. 우리가 성공하는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에는 저항하는 한편, 우리는 스스로 성공했고 따라서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의 노력과 재능에 대해 사회체제가 부여하는보상이 아무리 크든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에는 환호하는 일은 놀랍지않다.

오바마의 사회적 상승 담론은 레이건과 클린턴의 주장을 되풀이하며능력주의를 지향했다. 비차별을 강조하고, 열심히 노력할 것을 주장하고, "개인이 각자 책임을 지라"고 시민들에게 훈계했다. 따라서 여기서사회적 상승 담론과 능력주의 윤리가 한 데 엮인다. 기회가 정말로 평등하다면 누구나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출세할 수있다. 그뿐이 아니다. 그들의 성공은 그들 자신이 일궈낸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정치인들이 제대로 먹히지도 않는 공허한 말을 지겹도록 반복할 때는, 그것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는 심증이 가게 마련이다. 바로 사회적 상승 담론이 여기에 들어맞는다. 불평등이 위험수위까지 올라왔을때 이러한 담론이 가장 구역질나게 들렸음은 우연이 아니다. 가장 부유한 1퍼센트가 전체 인구의 50퍼센트보다 더 많이 벌고 있으며, 중위소득이 40년 동안 줄곧 제자리걸음만 한 상황에서, ‘노력하고 열심히일하기만 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을 리 있겠는가.

이러한 빈말은 두 종류의 불만을 낳았다. 하나는 체제가 능력주의적약속을 충족하지 못함에 따라 나타나는 불만으로, 규칙을 지키며 열심히 일한 사람도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빚어졌다. 또 다른불만은 능력주의적 약속이 이미 지켜졌고, 자신들은 볼 장 다 봤다는절망에서 우러났다. 후자가 더욱 사기를 떨어트리는 불만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뒤처졌으며 그 잘못은 순전히 자신들에게 있음을 의미했기때문이다.

사회적 상승 담론이 야심적이며 아직 달성되지 못한 저 너머를 약속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이미 이루어진 현실만을 축복하게 된다.
"여기 미국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출세할 수 있습니다." 호소력강한 담론이 으레 그렇듯, 야심과 축복을 하나로 뒤섞는다. 희망은 긍정하되 현실에서 그 희망을 이룬 자들에게 한정된 축복을 보내는 것이다.
오바마의 언급은 그런 점에서 되새길 만하다. 2012년 라디오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어떻게 생긴 사람이든 어디서 온 사림이든 따지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재능이 허락하는 한도까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면 됩니다.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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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주택 전세금과 자동차 등을 단순히 수익을 생산할 수 없다는이유만으로 나쁜 자산으로 분류한 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이러한 자산은 편리성 등 다양한 삶의 가치를 생산하며, 이를 단순히 돈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전세로 거주한 경험이 있고,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 대해잘 알고 있다. 특히 나에게 자동차는 업무를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익을 생산하지 못하는 무無수익 자산이 많을수록, 그리고 자산의 무수익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산을 늘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나는 거주 목적의 주택 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만이 유일한 좋은 부채라고 생각한다. 집을 살 때 말고는 굳이 남의 돈을 빌려서까지 투자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부채 없이 집을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시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부동산의 투자 비중을 줄이고 금융자산의비중을 늘리라는 말은, 모든 돈을 부동산에만 투자한 경우 또는 부동산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경우에 투자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부동산 가격 폭락에 대비한 선택은 되지 못한다. 이에 대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에도 투자하지 않고 돈을현금으로만 보유하는 것이다. 더구나 집을 한 채만 보유한 대부분의중산층 서민들에게는 부동산의 비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란 현재의 집을 파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더더욱 적용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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