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어떤지 몰라도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재밌게 술술 읽힌다. 이해하기에 어렵지도 않아 [차라투르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을 사람, 읽었다 실패한 사람이
읽으면 더 좋은 책이라고 본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 를 읽다보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하고 사랑을 하며 사
는 것이 능동적이고 행복하게 사는 삶이라고 한다.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도 이들과 맞닿아 있다. (시간적으로 보아
니체의 책이 프롬에게 영향을 준 걸 수도 있다]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이 다른 것은 '신은 죽었다' 라고 알려주러
왔단 것과 '위버멘쉬'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아를 임신할 수 있어야 된다 는 점이다. 철학 입문 시간에 '신은
죽었다'라는 발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얼핏 들었을 때는 그저 무신론자의 주장인가 햇다. 그런데 그 주장은
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사라져서 죽었고, 죽은 신을 살게 했던 신앙이 죽었기 때문에 신이 죽었고
그 시대가 죽었다는 뜻이었다. 니체는 무조건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한 게 아니라 그 존재와 가르침이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태를 비판한 것 같다. 신자들은 원죄를 지었단 이유로 이 땅에서의 삶을 참회해야 저쪽에서의
삶이 구원받는 다고 말한다. 그러고보니 오늘날 가장 흔하게 접하는 선교(?)는 "예수 믿으면 천국, 아님 지옥" 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예전에 했던 가르침을 못 깨달은 신자들은 아직도 저렇게 선교 아닌 선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다시 한번 "신은 죽었다" 고 말해줬음 좋겠다. 차라투스트라가 이해되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하나보다.
'위버멘쉬'(초인이라고 번역되는)는 책을 안 읽은 사람도 들어본 적이 있는 용어일 것이다. 나는 그저 정말로
슈퍼맨 같은 초인인 줄 알았는데, 그 개념이 아니었다. 니체는 살면서 숱하게 질병을 앓았다고 한다. 그리고
말년에는 정신분열증으로 판정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문장 자체는 이해가 되었지만
정말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보다 위대한 사람'이 '위버멘쉬'가 되려면 자아를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단순한 극복이 아니라, '변태'에 해당할 만한 변화 수준으로. 니체가 '바그너였던 니체' '차라투스트라를 쓴
니체' 등 자신을 가리키는 여러가지 말을 가진 것처럼. 이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위버멘쉬가 되려면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해서 새로운 자아를 잉태하고, 변모하면 되는 거지?" 말은 쉽다. 나도 이같은 생각을
안해 본 건 아니다. 지금의 내 자신이 아닌 다른 성격, 자아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생각해봤고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도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그건 그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니체가 진짜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은 배제하고 읽으려 했는데,
이래서 사람들이 그를 정신분열자라고 했구나. 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가 이 위버멘쉬가 되려면 '위대한 건강'을 가
져야 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래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중심을 잃고 사라져버릴 것 같다.(예상에)
진지한 것만 좋아할 것 같은 차라투스트라도 즐겁고, 유쾌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신들을 죽인 건
"너희는 신이 아니야. 내가 유일한 신이다!"라고 말해서 다른 신들을 배꼽잡고 웃다 죽게 만든 신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웃음, 춤, 즐거움의 힘이 크다고 본 것일거다. 이 부분에서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의 저자
김정운이 생각났다. 그도 또한 '놀라움, 즐거움'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요소라며 '재밌게' 살라고
소리치기 때문이다. 됐다. 다 이해 못하면 어떤가. 니체(차라투스트라?)도 자신의 책을 굳이 읽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 일을 잘 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을 위대하게 보았으니 그렇게만 살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