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야메의사]를 보았다. 지금까지 보았던 연극은 모두 웃고 끝나는 것이어서 집에 오면 그만이었는데,
이 연극은 보는 동안에도 '저건 무슨 비유일까' '뭘 말하려는 걸까'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야메의사]에 대해 찾아봤다.
[야메의사]는 카프카의 아주 짧은 단편소설<시골의사>를 바탕으로 한 이미지극이라고 한다.
원작인 <시골의사>는 눈 내리는 한밤중의 시골의사가 호출에 의해 환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부조리하게 묘사하고 있다. 급한 환자를 찾아가기 위해 떠나려는데 마차의 말이 그 전날 과로로 죽어버린 탓에 말을 못 구해 안달이 난 상황에서 갑자기 자신의 마굿간에 난데없는 마부와 튼튼한 말이 불쑥 나타나 마부가 자신의 하녀를 차지하는 조건으로 말을 태워 쏜살같이 환자에게로 보내게 된다.
그런데 막상 찾아간 환자에게선 환부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깊은 상처가 있지만 치료하지 못하고 결국 두고 온 젊은 하녀가 걱정되어 돌아오려 하나 올 때와는 달리 말의 걸음은 더디기만 하고 외투는 벗은 채로 추위에 떨며 눈오는 추운 밤을 한없이 느린 속도로 정처없이 헤메이기만 한다. 비록 작품 내용에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결국 시골의사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눈오는 밤 산속에서 얼어죽는 것으로 보여지는 내용이다.
출처 카프카와 체홉이 2009년 서울을 찾았을 때 - 오마이뉴스
'야메의사'역할을 맡은 이준혁씨의 인터뷰 내용이다.
"소통부재, 출구부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처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방관하지 말고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배우로서 이 작품에 참여하면서 실천하고 있고요.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려서 스페인 내전을 이야기한 것처럼요."
아... 이제서야 왜 극 중간에 한 배우가 프란츠 카프카의 얼굴이 보이는 책을 들고 있었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제목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도.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 라고 하는 건가보다. 어쨌든. 기사를 검색해보니, 이 연극이 '무거운' 현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웃기다고 했는데 그렇진 않다. 난 이 연극을 보면서 3번 웃었나.
이 연극은 내가 지금까지 본 연극 중에 무대도 가장 많이 바뀌고(장면이 많이 바뀐다는 말), 등장 인물도 가장 많았다. 그리고 춤, 마임(?)으로 표현하는 것도 많았다. 이 연극을 이해하는데 어려웠던 점은 마임/ 춤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과, 각각의 인물들이 뜻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장면은 수없이 바뀌고, 관객은 야메의사를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장면마다 있는 비유와 풍자를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연극을 잘 본 것이다. 그래도 연극이 끝난 뒤, 답답하고 개운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본 연극 중에, 가장 관객 수가 적었던 극이다. 아마 정치 풍자극이라서 그럴 거라 생각한다. 난 2주 전에도 연극을 봤었는데, 그 연극은 계속 웃긴 거였다. 그리고 그 전에 본 연극도 웃기기만 한 연극이었다. 대개 내가 본 연극은 그냥 웃기고 말거나, 대체로 웃긴데 마지막에 가서 굳이/ 애써 교훈과 감동을 전해주려고 했었다. 나는 그런 가벼움에 좀 식상해져 있었다. 그런 시점에 이 [야메의사]를 보았다. 어떻게 보면 딱! 좋은 시점이지만, 나는 왜 사람들이 웃기기만 한 연극을 보는지 알겠다. 이런 연극은 갑갑한 현실을 되새겨주고, 현실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느낌을 주니까. 개운하지 않으니까.
연극을 보러 가기 전부터 비가 억수로 내려서 신발, 바지가 다 젖었었다. 연극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습기가 나를 누르는 기분이었다.
* 새로운 연극을 만난 건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나에게 이런 연극도 있구나- 라는 걸 알려주었으니까. 이 극단의 [안티고네]도 한번 보고 싶다.
출처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1118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