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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평점 :
우리의 지난 역사 이야기 중에서 후대에 이르러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여 거의 침잠하다시피 한 각종 여러 사건이나 이에 얽힌 인물에 관한 내용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호기심은 물론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듯하다. 사실 역사 속에 나타난 많은 이야기들이 기록자에 의해 과연 객관적인 입장에서 썼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당시 상황들에 대한 구체적인 것이 그러한 자료이외에 이를 근거할만한 다른 여타의 대안이 없다고 보면, 이 책 저자의 말대로 있는 내용을 그대로를 받아들이되 문제의식을 가지고 단순하게 참과 거짓이라는 사실에만 그칠 것이 아닌 다양한 시각에서 이를 상세하게 살펴보고, 논리적으로 역사의 사실이 담고 있는 그 본질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역사를 배우는 우리의 진정한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에 관련한 책을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 동안 우리는 역사의 내용에 대해 너무 단편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마치 역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알고 있는 양 순진한 생각으로 지금까지 흘러 온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을 하게 될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역사의 내용 중 논의할 만한 그 일부를 따로 떼어내어 심층적으로 다룬 책이어서 선택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내게 있어서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폭넓게 만들어주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책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지나간 역사의 단순한 이야기로 치부해 간단하게 넘겨버릴 수도 있을 법하지만, 저자가 내세우고자 하는 강이천이라는 한 인물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다 보면, 이 내용이 과거 어느 한 시점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오늘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연속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생각해 볼만 한 의미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다.
중국 주자에 의해 집대성 된 성리학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통치의 주요 이데올로기였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성리학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각종 수양과 공부를 통해서 먼저 깨달음을 중시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에 실사구시의 정신이 약하고 배타적인 면도 적지 않다고 본다. 이 책은 강이천이라는 정조 때에 한 선비가 성리학을 버리고 당시 평민 지식인층에서 유행했던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에 심취하며 천주교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이상주의를 꿈꾸던 상황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는데 그 기세가 점차 확대되자 이에 위협을 느끼게 된 왕권을 포함한 기득권층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되는 내용을 상세하게 담고 있는데, 저자는 당시 진행되던 이러한 과정을 정조와 강이천 간의 문화적 지배 권력을 둘러싸고 벌인 하나의 문화투쟁으로, 당시 이와 관련한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시각에서 이를 파헤쳐 보며 그 의의를 되새기고자 했다. 대체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는 정조는 규장각의 설치와 더불어 문예부흥과 진보적인 개혁정치가로 이해하고 있지만, 저자는 정조를 도교나 불교는 물론이고 당시 새로 도입된 천주교에 대해서 이를 포용하지 못하고 상당히 적대적으로 대했으며, 더구나 문학에 있어서도 패관소품을 엄격히 금하는 정책을 시행해 사상적인 통제를 가하는 등 여러 부분에서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노론벽파라 불리는 양반 집단과 결탁해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가진 군주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조의 이러한 입장은 당시 여러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강이천의 입장에서 그는 성리학적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한 기존의 지배질서에 반감을 가진데다가 자신의 사상적 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정감록에 심취하며 천주교의 사상과 맞물린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결국 그는 기득권층으로부터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혹세무민 했다는 죄목으로 옥사를 당하게 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그가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에 일종의 희생양이 된 억울한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강이천이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정조가 벌인 문화투쟁의 내용은 결과적으로 보면 사회 안정이라는 명분은 얻었을지 몰라도 조선 후기의 지배체제가 더욱 보수화 되는 경향을 띠게 했고, 결국 사회개혁은 물론이고 개화의 흐름이 서서히 불기 시작했던 당시 시대의 상황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경직된 구조가 고착화 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세력들이 이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서 이후 밀려드는 외세의 세력과 사회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특히 저자는 당시 사회 상황이 오늘 우리의 현 시국과 너무 닮아 있다고 진단하며 만약 그렇다고 본다면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어쩌면 개혁을 위한 동력을 찾아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하는 상황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문득 생각났던 것은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오늘의 사회를 바라보고 인식하는데 있어 혹시 편협적인 시각에 사로잡혀 그 핵심을 제대로 보질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음을, 그리하여 안일하고 구태의연한 사고에 젖어 마침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사회개혁에 필요성까지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단편적으로만 알아왔던 역사의 일부분을 다양한 시각에서 들여다봄으로서 그 인식의 확대를 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내게는 여러 가지로 유익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