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가운 밤 ㅣ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필히 지니게 되는 여러 정서들 중에서 서양과 동양의 분명한 가치관의 차이점을 보이는 것 중 하나는 아마 가족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가족을 이루는 형태에서부터 가족들 간에 형성되는 유대감과 역할 등 가정을 이룬다는 본질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이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시각들이 조금은 다른듯하다. 물론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우리가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판단 할 수는 없지만,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소통하고 융화하며 조화를 이루는데 있어 궁극적 목표인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방법론적인 것은 한번 깊이 생각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 책은 전쟁이라는 혼란스런 격변기속에 나타난 중국의 어느 한 지식인 부부의 평범한 가정사를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단어가 가진 그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하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이 소설은 가족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언제나 든든한 후원의 배경이 되는 긍정적인 구성체가 되기도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이것이 때로는 구속과 속박의 둘레가 될 수도 있음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가족을 구성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연 가족이란 무엇이며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놓고 여러 가지 의미심장한 내용을 전달 해주는듯해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일독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먼저 이 책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겪게 되는 가족의 문제와도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책의 제목에서도 그렇고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서도 마찬가지로 책 속에 흐르는 그 바탕의 분위기가 상당히 우울하고 암울하게 다가오는 이 작품은, 중일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0년대 후반 가난과 전쟁이라는 공포 속에 가난한 어느 가정의 이야기가 애잔하게 그려져 있다. 소설 속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하는데, 전쟁으로 인해 교육 사업에 대한 젊은 시절 자신이 간직해왔던 순수한 꿈을 잃어버리고 비록 나약하지만 긍정적이며 도덕적인 삶을 중시하며 살아가려는 한 남자와 그와 가족관계를 이루는 부인과 노모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그 구성원이 되어 함께 살아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행복한 가족의 삶과는 거리가 먼, 언제부턴가 불행하고 어두운 하루의 일상을 반복하며 살게 된다. 이 불행의 주요원인은 남자를 중심에 두고 노모와 부인 간에 벌어지는 고부간의 심각한 갈등인데, 대학교육을 받아 신세대적인 가치관을 지닌 며느리와 전통적인 관습과 체면을 중시하는 노모가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급기야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관계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마침내는 순탄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다. 더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알고도 이를 조정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처신하고 마는 남자의 소극적인 행동이다. 결국 더욱더 심해지는 고부간의 갈등을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자신의 남편을 설득하여 당분간 떨어져 있기를 원하게 되고 이를 기점으로 평범했던 한 가족이 철저하게 몰락하고 마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면서 최종적으로는 가정 파괴의 책임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책은 사회의 변화에 따른 세대 간의 가치관 정립에 대한 혼란과 당시 전쟁으로 인해 피폐된 민중들의 초라한 삶을 한 가족의 형태를 빌어 대입시켜 당시 일상생활의 사실적인 표현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저자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섬세한 심리적 묘사가 매우 뛰어나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자연스럽게 흡입하게 만드는 은근한 매력을 발산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굴절된 인생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일종의 사회적 고발적인 작품으로까지 보여 지는 이 소설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른 작위적인 인간 군상들의 여러 모습들을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과, 서로 대립될 수밖에 없는 이성과 감정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우리들의 삶을 가급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그 진정성을 깊이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이 어느덧 집안의 가장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쓴 채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날카로운 신경전에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하게 되는 거부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자신의 처지에 대해 결국 비굴한 삶을 선택해야만 했고, 그런 이유로 숙명적인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했던 한 인간의 고독한 발자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지 않나 싶다. 가족이라는 틀을 구성하여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인생이 반드시 행복해진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전에 전제 되어야 할 것은 이 책에서 드러난 것처럼 가족 구성원 간의 서로 깊은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포용과 관용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