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홍신 세계문학 5
허먼 멜빌 지음, 정광섭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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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수중 생물 중에 가장 거대한 동물인 백경(모비딕)을 쫓아 이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 작품은, 미국 소설가 허먼멜빌에 의해 19세기 중반에 발표되었지만 당시에는 소설의 형식과 내용이 낯설다는 이유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현대에 이르러서야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고전문학의 3대 비극 반열에 올라있으며,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문학으로 알려진 해양모험소설이기도하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설의 주 내용을 이루고 있는 고래사냥은 10세기경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당시에 고래잡이가 횡행했던 것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재료로 쓰이게 되는 고래로부터 얻는 기름 때문이었으며,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관계로 그 시대의 고래사냥은 선원들의 목숨을 걸어야 했을 만큼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었다. 이 작품은 포경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누비며 고래의 흔적을 쫓아 이를 포획하는 그 생생한 모험의 현장과, 육지를 벗어나 선박에서의 고독한 생활을 겪어야 하는 선원들의 애환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즐거움을 주기도 하는 반면에, 포경이라는 다소 낯선 소재에 맞춰 고래의 생태, 포경 기술, 그리고 장비 등 여러 전문적인 내용들까지 상세하게 다루어져 있어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부의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거대한 흰 고래에 맞서 목숨을 건 한판의 숭고한 대결 과정을 통해, 선과 악,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과 같은 철학적인 상상력을 일깨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 보면 좋을듯하다.

주인공 이스마엘은 현실에서의 우울하고 불만족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바다로 나가 선원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는 이곳저곳을 헤매며 방황하다가 어느 허름한 여인숙에서 포경선을 타고 작살 잡이 생활을 하고 있는, 미개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순박하고 믿음직한 퀴퀘그라는 친구와 하룻밤을 보내고 친해지면서 함께 같은 포경선을 타기로 약속한다. 여러 포경선을 물색하던 중, 그들은 에이허브 선장이 이끄는 피쿼드호를 타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마침내 첫 항해를 떠난다. 항해를 준비하고 승선도중에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에이허브 선장은 백경과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한때 백경을 잡으려다 실패한 후 그로인해 한쪽 다리를 잃고 이번 항해에서 오로지 백경을 잡기 위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노인이다. 이 배에는 그 외에도 침착하고 냉정한 성격의 일등항해사 스타벅과 위험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이등항해사 스터브 등 능력있고 전문적인 선원들이 고래를 잡기 위한 위험한 모험에 함께 동행 하고 있기도 하다. 피쿼드호는 인도양과 대서양 그리고 태평양을 지나는 무료한 항해 도중에도, 다른 여러 척의 포경선과 접촉을 시도하며 백경의 위치를 찾아 나서다가, 우연하게 백경을 발견하고 3일간의 목숨을 건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백경은 에이허브의 선장의 작살을 맞으면서도 반격을 통해 보트로 돌진하는 등의 이틀 동안의 숨바꼭질을 벌이다가, 3일째 되던 날 갑자기 난폭하게 변하면서 자신을 잡으려는 에이허브의 선장을 포함한 피쿼드호의 선원들을 공격하여, 이스마엘을 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결국 이 작품은 끝내 비극으로 종결 된다.

이 작품은 백경과 관련하여 이를 추적하고 사투를 벌이는 과정의 줄거리는 사실상 간단하게 그려져 있다. 대신 작품 속 상당부분은 포경의 역사나 고래의 종류와 같은 포경과 연관한 여러 전문적인 내용들이 백과사전을 방불케 할 만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조금은 독특해 보이는 소설이다. 또한 주인공 이스마엘은 작품 속 화자로 등장하면서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중간 중간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과는 사뭇 다른 더러 독백, 방백과 같은 극의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내용에서는 나레이터가 되기도 하는 등의 복잡다단한 변화의 양상을 띠기도 해서, 독자의 입장에서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피쿼드호의 선장이 그토록 집착하고 광기를 보이며 잡으려고 백경은 두 가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 하나는 에이허브 선장의 외침 속에서 그러하듯 백경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악의 화신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많은 포경선들이 백경을 만나 사투를 벌이지만 모두 그 앞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는 것은 물론이고, 목숨을 잃은 등의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는데, 피쿼드호 역시 그 중 하나의 희생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를 크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당한 타협을 제시하거나 혹은 이를 회피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결국 백경은 악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인간의 영역 안에서는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다. 또 하나는 백경의 겉모습에 나타나는 흰색이 지니는 의미인데, 이는 인간의 손에 쉽게 잡힐 것 같이 보이면서도 결코 잡히지 않는 희망으로 보이는 허상과 존재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책 속에서 이스마엘은 백색은 여러 제국에서 즐겨 사용했던 제왕의 색이며, 최고의 명예와 위엄, 권위를 나타내고 신성한 빛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설명한다. 결국 신기루처럼 보이는 백경의 모습을 보고 이를 잡기 위해 불나방처럼 달려들지만, 결국 이런 행위는 애초부터 실현불가능 했던 무리한 행동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많은 독자들이 여러 가지 많은 볼거리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진지한 철학적 물음을 제공하고 있는, 웅장하고 대단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감에 있어 스스로를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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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의 배신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윤리적 판단을 실험하다
콰메 앤터니 애피아 지음, 이은주 옮김 / 바이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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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홀로 존재하며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가 바람직한 공동체를 이루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또한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과연 자신과 타인을 위한 최선적인 행동일지를 판단하여 살아가게 마련이다. 인간은 자신보다 우선하여 타인의 이목을 의식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합목적성에 맞게 자신을 조절해가거나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최선적인 행위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하는 점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이나 윤리학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가면서 아무 생각 없이 뱉어 버린 말이나 행동에 의해 때로 누군가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종종 남기곤 한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이를 스스로 자각 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인간은 오래전부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를 규정짓고, 그 기준이 되는 것을 도덕으로 삼았던 것이며,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고라는 큰 틀을 이루어 낸 것이 바로 윤리학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부터 민주화와 산업화에 힘입어 우리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화되기 시작했고,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은 인간 행동에 관한 실증적이고 다양한 연구를 통해 기존의 도덕철학이론으로 충분한 해결해주지 못하는 윤리적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통도덕철학이 차츰 축소되고 있는 오늘의 현상과 관련하여 앞으로의 철학적 윤리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사회과학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고, 보통 우리가 일반적으로 취하게 되는 행동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어서, 행위에 대한 윤리적 근거를 명확하게 추론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점이 있음을 토로한다. 그런 이유로 윤리학이 추구하는 것이 결국에는 인간에게 바람직하고 좋은 삶의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과 같이 개별적인 학문 분야의 연구에서 치중 할 것이 아닌, 이를 한데 모아 복합적인 방향에서 다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그동안 많은 윤리학자들은 인간의 성격은 특정한 가치관에 따라 지속적인 행동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자들은 여러 실험들을 통해 인간은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행동을 표현한다며 그 견해를 달리한다. 저자는 그 예로 다양한 실험 결과의 내용을 보여주면서, 어느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행동을 보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윤리적인 가치관에 의한 당연한 행동의 발로였기에 도와주었을 것이라고 단정해버리거나 혹은 확신할 수만은 없다는 심리학자들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면서 여러 실증적인 사실들을 근거로 인간의 모든 행위의 밑바탕에는 성격과 직관, 심리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들 대부분은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성격이 좋을 것이고,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나쁜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는 오류적인 사고를 범할 가능성이 많음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그는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 전통적인 도덕의 이론을 중시하는 윤리학자들이 대개 인성교육을 통해 같은 내향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그보다는 사회제도를 정비하여 인간이 나쁜 환경에 빠지지 않도록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길버트 하먼의 주장이 더욱 실현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보고 있기도 하다.

윤리학은 도덕적인 판단과 선택 그리고 그 기준에 관하여 탐구하고 분석하는 철학의 한 분야다. 우리가 윤리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생활을 통하여 지속적이고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고 이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전통적인 도덕철학은, 오늘날 다양하게 표출되는 인간의 행동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윤리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애매모호함을 주기도 해서 우리의 철학적 사고에 혼란을 주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이러한 원인에는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예전과 달리 오늘 우리의 사회가 점점 세분화되고 다양화 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에 따라 우리의 도덕적 가치관 역시도 조금은 바뀌어가는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따라서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한바와 같이 인간의 행동 패턴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어떤 특정 분야의 학문만으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에는 다소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하겠다. 철학을 포함한 우리의 정치, 문화, 사회의 어떤 분야의 것이든 그것의 궁극적인 최종의 목표는 인간의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하나의 도구로서 작용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윤리학이 여러 학문들과 연계한 새로운 관점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이 책 저자의 생각과 이를 위한 그의 노력들은, 독자의 입장에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로 받아 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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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 - 1659년 5월 4일의 비밀
오세영 지음 / 시아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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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의 사실들을 기록해놓은 단순한 것에 불과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향후 미래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조선 효종 때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던 북벌 정책의 일부 과정을 당시 실존 역사인물들을 등장시켜 사실적으로 재현해 낸 작품이다. 북벌론은 모두 알다시피 오랜 시간을 거쳐 치밀하게 계획되어 실행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런 효종의 죽음으로 그 힘을 잃고 중단되면서, 아직까지도 그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긴 하나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데 있어 가정을 생각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무의미하게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의 북벌 정책이 과연 실효 가능했던 것이었을까, 혹은 명분만을 취한 무리한 정책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효종과 함께 북벌 정책을 주장했던 당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던 서인세력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등 여러 가지 면을 깊이 생각해보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하는가에 따라 여러 견해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를 보아야하고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때야 비로소 왜곡되지 않은 객관적인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에서 펼쳐지는 당시 긴박하게 진행되었던 북벌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보다 폭넓고 균형적인 시각을 견지해 보았으면 싶다.

북벌정책이 대두하게 되었던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임진란 이후 국력이 약해졌던 조선은 서인세력에 의해 인조반정 이후 명나라와의 명분을 중시해 친명배금이라는 외교정책을 유지해오다가, 청나라로부터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라는 양란을 거치면서 굴욕적인 군신관계를 맺게 되는데, 효종이 등극하면서 조정에서는 청을 배척하고 명나라의 복수를 외치는 척화론이 힘을 받아 서서히 싹트게 되면서부터다. 이 소설은 북벌 계획이 초기 단계를 거쳐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던 청의 요청아래 나선정벌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 된다. 나선에서의 성공적인 전쟁을 치른 후 조선의 내부에는 세 부류의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는데, 하나는 훈련대장 이완과 그의 수하 윤헌을 중심으로 한 북벌 단행 세력, 그리고 이에 맞서 북벌정책을 방해하는 중국의 거상으로 조선 내 친청세력을 이끄는 성명욱 일파, 나머지 하나는 겉으로는 청을 배격하고 북벌론에는 찬성하지만 실질적인 실행에는 반대하는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인 서인들이다. 나선 정벌에서의 승리와 그동안 군비확충에 만전을 기하며 북벌을 하루빨리 실행하고자 하는 이완과 그의 믿음직한 수하 윤헌은, 북벌 출병을 위한 조정의 명분을 얻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만, 성명욱 일파에 의해 매사 방해 공작에 휘말리게 되고, 한편 집권세력의 우두머리 송시열은 지금은 이런 저런 이유로 북벌을 반대하며 효종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의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인다. 하지만 남명의 공격을 받고 조선에 출병 도움을 청하기 위해 청나라가 보낸 칙사가 도착하면서부터 이들의 관계는 서서히 깨져가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 소설은 역사의 사실에 근거하여 실존했던 인물들과 가상의 인물들을 함께 배치하여, 허구와 실제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구성해놓았으며, 마치 영상으로 보는듯한 착각이 들게 할 만큼 리얼하게 그려내어 독자로 하여금 작품 속에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더불어 당시 진행되었던 북벌의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 다각적이고도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특히 많은 역사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 효종과 함께 북벌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작품 속에서 그는 오히려 효종의 북벌 실행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는데,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독자들이 이 소설의 이야기의 흐름에서 찾아보았으면 싶기도 하다. 작가는 책의 말미 후기에서 당시 대다수의 사대부들이 주장한대로 북벌 정책이 과연 자기 분수를 모르는 무리한 정책이었는지, 혹은 효종의 죽음으로 북벌이 무산되긴 했지만 그 자체로도 조선은 실리를 얻은 것은 아닌가 하는 다양한 논점들을 이야기 하면서, 많은 독자들이 역사 사료의 행간을 보았으면 하는 간접적인 피력을 나타내고 있어, 이 소설을 통해 북벌의 의미를 여러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실질적 의의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지난 역사의 사건을 오늘의 시각에서 재조명 해보는 것은, 그것이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 이를 통해 미래의 발전적인 모델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따라서 북벌 정책을 두고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려는 기득권세력과, 반면에 이를 시행하여 왕권강화를 위한 새로운 국면을 모색하려는 효종, 그리고 신흥국가로 부상하면서 실리적인 외교구축을 꾀하는 청나라 세력 간의, 흥미 있는 대결구도가 펼쳐져 있는 이 책의 이야기에 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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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역사 - 중세에서 현대까지 살인으로 본 유럽의 풍경
피테르 스피렌부르그 지음, 홍선영 옮김 / 개마고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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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아마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존중사상이 우리의 인식 속에 깊이 박혀 있음에도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살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생겨난다. 살인이란 개인이 행하게 되는 폭력의 행위 중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며, 이러한 살인의 종류는 개개인 간의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된 것에서부터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전쟁과 테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살인과 같은 상대방의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행위를 두고 이를 옹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살인의 흔적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며,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멈추지 않고 진행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인충동은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속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살인은 좀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인간에게 있어,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해당 관련자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줄만큼 상당한 파급적인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살인의 행위를 역사적인 큰 틀에서 살펴본다는 것은, 당시 사회문화의 위계구조는 물론 사회 전반적인 변화의 양상을 객관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지 않나 싶고, 한편으로 살인이라는 행위가 제도적 차원에서 인간들로 하여금 무엇을 어떻게 강제하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서, 오늘날 사회불안의 중요한 요인으로 재등장하게 된 극단적인 폭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독자 나름대로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에서도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이 책은 중세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같은 무력충돌과 같은 변화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 특정한 사고사를 제외한, 유럽전역의 여러 나라에서 그동안 발생했던 거의 모든 살인의 기록들을 조사 분석해 놓았다. 따라서 이를 통해 독자들은 살인을 위시한 그동안에 폭력의 과정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그러한 행위들이 인류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살인으로 인해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 간의 그 상관관계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인문교양도서로 생각된다. 저자는 책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인을 범죄의 범주에 넣고, 개인 간의 폭력과 국가의 폭력을 구별하게 된 것은 현대사회가 접어든 이후의 일이며, 폭력이 처음 성인 남성에 의해 독점되었다가, 중세 봉건시대를 거치면서 전사 엘리트 계층으로 옮겨갔으며, 결국에는 오늘날처럼 우리가 국가라 부르는 기관에 의해 최종적으로 안착되었음을, 폭력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독점화의 과정을 세 단계로 구별한 사회학자 요한 구즈볼륨의 말에 의거하여, 이를 하나의 틀로 삼아 살인의 역사 과정을 시대별 나라별로 구분하여 구체적인 자료와 함께 상세한 설명을 보충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저자가 제시한 역사의 사실 내용에 따르면 중세 초기의 살인의 대부분은 하류층이 아닌 상류층에서 많이 발생했으며, 개인적인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가 가문의 명예와 결부되면서, 이는 다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보복을 가하는 과정에서 기인해왔다는 점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사회 관습상 대다수 도시 귀족층들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를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점차적으로 결투와 같은 형식을 띠며 불법화적인 것으로 확대되면서 종래에는 하류층으로까지 번져 나갔던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당시 이런 행위가 일반화 되었다는 점에 미루어 보면, 그만큼 국가 권력과 사법제도가 상대적으로 부재했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살인 역사의 흐름은 18세기 들어서면서 상당히 감소하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즉 상류층과 중류층에서부터 결투를 비난하며 평화를 추구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 했으며, 비폭력적인 생활방식 전하고자 하는 문화의 움직임과 도시화와 중앙 집권화에 따른 국가의 형성과정도 여기에 한 몫을 하는 등의 다양하고 상호의존적인 발전 요소들에 의해 폭력의 움직임은 차츰 둔화되어 간 것이다. 이후 국가의 성장과 사회계층 간의 문화적인 경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폭력은 사적 영역이 아닌 공익차원에서 국가가 독점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살인율은 더욱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원인의 근거에 경찰제도의 쇄신과 수사방식의 개선으로 인한 폭력 예방효과와, 지속적인 문명화 운동이 시민사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유럽에서 발생했던 살인의 역사흐름을 상세히 다루면서, 살인의 다양한 형태와 특성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계층들 간의 인식의 변화과정을 제공하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안내해준다는 점에서 이채롭게 느껴진다. 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여성의 영아 살해와 같은 살인의 역사배경과, 정신 이상자들이 저지르게 된 살인을 두고 당시 사회인식들의 문제점 등은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로 기억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럽에서 행해졌던 살인의 역사의 과정을 나열하면서, 결론적으로 최근 들어 다시 살인율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새로운 분석을 통한 다소 수정이 필요로 하겠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발생했던 살인의 기록들을 놓고 볼 때,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 엘리아스가 주장한 문명화론과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확고하고도 조심스런 분석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말대로 그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문명화가 인간의 자연성을 억압함으로서 인간성을 왜곡한다는 비판의 제기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하더라도, 우리의 불안한 감정의 표출을 조절해 줌으로서 물리적 충돌을 억제하고 상호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우리에게 인간적 존엄을 가치를 더하여 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정인 차원에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주의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은, 저자가 이 책의 말미에서 우려한 바와 같이 문명화의 진행 과정에서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문명화를 거스르는 새로운 현상들과 연관하여 시대가 역행하지 않도록 하는, 우리의 세심한 노력들이 필요로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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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대통령인가 - 여자가 대권을 잡으면 과연 세상이 나아질까?
크리스틴 오크렌트 지음, 이희수 옮김 / 호미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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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면서 양성평등이라는 인식이 일반화 되면서 예전에 비해 여성들의 지위향상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러한 이유로 그 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커다란 장벽에 막혀 진입이 힘들었던 각 분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일부 영역에서는 여성들의 능력이 가히 작지 않음이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 세계 정치권에서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권력자로서 여성의 역할이다. 권력은 한때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었고 당연한 것처럼 받아 들여져 왔지만, 1970년대 이사벨 페론이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된 이후로 오늘날 세계 여러 국가에서 많은 여성들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현상들은 왜 나타나는 걸까. 개인적으로 정치력을 발휘하는데 있어 그 능력의 정도가 남성이나 여성과 같은 성별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이 여성들이 정치의 전면에 부각되어 나타나는 오늘의 정치 현실의 변화에 대해 우리는 한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세계적인 정치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프랑스 국영 TV 뉴스 앵커로도 활동하고 이 책의 저자는, 근대 이후 지금까지 여성으로서 최고의 정치 자리에 있었던 영국의 대처 수상이나 독일의 메르켈, 그리고 칠레의 바첼레트와 같은 여러 여성 대통령들의 행적을 집중으로 조사 분석하면서, 여성이 대권을 잡으면 과연 세상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 정치의 속성을 조망해 보고자 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치권에서 배제되어야 하고 혹은 권력을 쟁취하려는 행위를 두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일은 결코 올바른 시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여성의 정치 입문이 적은 나라들의 경우 대부분은 보수적인 사회문화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기를 권력은 더 이상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또한 남성에 의한 정치능력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일부 시각들에 우려감을 표하면서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그녀는 오히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여성 대통령이 선출되는 현상으로 볼 때, 이는 그동안 남성들이 지배해왔던 정치의 이면에 수많은 과오들과 결코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상적인 행동들에 대하여,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대중들이 그 대안으로 선택한 결과라고 보는듯하다. 그러면서 독일의 총리인 메르켈과 칠레의 바첼레트와 같은 현역 여성 정치인을 예로 들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힘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그녀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특별할 것은 없지만, 권력을 묘사하고 표현하는데 있어 남성의 경우와는 달리 상당한 차이점을 보인다고 말한다. 일례로 사회의 불균형한 발전으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남성보다 훨씬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이에 임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전에는 정치에 대해 야망을 가진 여성들이 이를 실현하는데 있어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해야했으며, 또한 야망을 품는 것이 남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실제 정치능력이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피력하면서 이러한 시각들은 분명 고쳐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권력을 잡은 여성이라고 해서 정치관행에 따른 어떤 유혹이나 혹은 독재나 과잉적인 폭력행사들에 대해 남성보다 더 자유롭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성별과는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며, 대중들은 선거의 과정을 통해 이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어느 국가든 정치의 최고 정점에 서있는 대통령이나 총리의 자리는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아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기에, 최고 권력자로서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하고 또한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그에 맞는 적합한 인물이 있다면 정당하고 타당한 이유 없이 어떤 성적차별이나 구분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그 자리에 올랐던 여러 여성 정치인들에 그간의 행적들을 볼 때, 그녀들의 정치적 능력이 남성들의 그것보다 현저히 뒤떨어진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일부 나라의 경우에는 국민들로부터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최근 여성정치인들의 예전에 비해 부쩍 늘어났고, 저마다 각 분야에서 책임 의식을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본다. 정치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국민들의 의견을 받아 들여 이를 수렴하여 공익적 차원에서 올바른 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이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어 가는 행위다. 그래서 지도자가 사회를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그 대상이 여성이 되어야 할지 혹은 남성이 되어야 할지를 논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납득하기 힘들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었든 정책입안자가 되었든 간에 그 선출에 있어 성별에 따른 어떤 편견이나 그릇된 인식에서가 아닌, 도덕성에 어긋나지 않는 개인적 역량이나 그 수행 방식 그리고 정치 철학과 신념과 같은 것이 얼마나 투철한지가 무엇보다 우선하여 중요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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